종려주일의 담론
2021년에도 어김없이 종려주일이 돌아왔습니다. 단독목회를 90년부터 시작했으니까 올해가 31년이 되는 해입니다. 담임목사가 된 후, 종려주일을 맞이했던 매 해마다의 의미가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이렇게 말하면 적합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 것도 모르던 젊은 목사 시절, 무식했지만 뒤돌아보면 열정이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종려주일을 맞이한 주일부터 금식을 선포해서 섬기던 교회의 지체들과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려고 했던 그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 한 끼든 매 끼든 곡기를 줄임으로 정성스레 모은 금식의 연보들을 이웃들과 함께 나누려고 했던 소박함도 있었습니다. 또 어느 해는 사순절부터 고난주간 토요일까지 40일 특별 새벽기도회를 열어 지칠 줄 모르는 기도의 불을 지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목회의 사진첩 속에 남아 있는 것은 고난주간에는 거의 대부분 말씀사경회, 특별새벽기도회, 릴레이기도회 등등을 열어 의미 있는 사역을 했으면 했지, 그냥 지나친 해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몇 년도 인지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한 해는 헌혈을 통해 이웃사랑을 나누었던 기억도 있고, 나눔의 집(후회막급이지만)에 기부하는 행사도 줄곧 해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고난주간만큼이라도 일체의 SNS 금지, 휴대폰 사용 절제, 텔레비전 시청 자제 등등의 조금은 현대적 의미에서의 기기 금식도 실시한 바 있습니다. 오늘은 2021년 종려주일입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어김없이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금년 고난주간에는 행사를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특새도, 사경회도, 릴레이 금식도 선포하거나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특별 연보를 통해 기부하는 행사도 실시하지 않습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펜데믹 후유증인 듯합니다. 대면 예배에 대한 시행 자체가 온전하지 않게 달려온 지난 14개월의 데미지가 현재진행형이고, 이와 맞물려 교우들 역시 어떤 사역을 계획하면 귀찮아하거나 적지 않은 부담을 호소하는 것도 한 몫 한 게 분명합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주군께 송구하기 그지없습니다. 해서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을 맞이하는 오늘 하나님께는 제대로 얼굴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지만 또 상황화하여 이렇게 다잡이를 해보려합니다. 거리를 다니다보면 어느새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문장하나를 패러디하면서 말입니다. “고난주간 행사의 거리는 2m, 그러나 고난주간의 주님과 함께 하려는 마음은 0m 되게 더 가까이" 지난 주간 날씨가 너무 따뜻해 교회 정원에 나가보았습니다. 2년 전에 심어 놓은 포도나무의 줄기가 넝쿨을 만들기 위해 힘차게 뻗어 나오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몇 년 전 심은 장미의 뿌리로부터 솟은 줄기는 튼실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주차장 마당에 심은 벚꽃도 망울을 오늘 내일 터트릴 기세입니다. 여전히 자연의 숨결은 힘차게 박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신앙의 자리가 제자리이면 될까 싶어 조바심이 났습니다.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그 어느 주간보다도 이번 주간은 더 깊이 주님이 당하신 고난을 깊이 들여다보는 의미 있는 이번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강단에 설치되어 있는 고난주간 상징 조형물을 보노라니 갑자기 뜨거운 그 무언가가 울컥 솟아 눈시울이 빨개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