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5주기에 어제가 어머님의 5주기 추도예배일이었습니다. 5인 이상 모임 금지라는 추상같은 명령 앞에 굴복(?)하고 4남매만 이천 호국원에 모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안식하시는 어머님을 추모했습니다. 지난 설 명절 전에 호국원을 방문하던 날, 아내가 뜬금없이 이렇게 한 말을 전했습니다. “어머님도, 엄마도 너무 잘 가셨어요. 만에 하나 지금까지 살아계셨더라면 창살 없는 감옥(요양병원)에서 얼마나 고생들 하셨겠어요.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또 마음고생 할 것이고, 이 꼴 저 꼴 보지 않고 하나님 품에 안기셨으니 정말 다행이에요.”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습니다. 지금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계신 교회 지체들 만해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당신들이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 가히 짐작이 갑니다. 동시에 자식 된 자들은 제대로 대면하여 부모님의 안부도 묻지 못하는 이 기막힌 상황으로 인해 또 얼마나 아픈 가슴앓이를 하고 있겠습니까? 이래저래 무언가 무거운 짐을 짊어진 느낌일 것이 분명합니다. 해서 어제 아버님과 어머님이 동시에 모셔져 있는 납골함을 열고 예배를 드리면서 이렇게 자위하며 자탄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코로나 없는 곳에 계셔서 너무 좋으시죠? 우리는 살아 있지만 죽을 맛이에요.” 형제들과 예배를 드리면서 디모데후서 4:7-8절을 전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형님들과 누님에게 이 구절을 읽고 ‘후회하지 않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며, 이 구절에 담긴 메시지가 얼마나 엄청난 바울의 신앙 간증인지에 대하여 전했습니다. 바울이 세속적 가치를 초개와 같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경험한 다메섹 사건 이후, 도리어 그의 인생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는지에 대해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신앙적 노정이 고통이었지만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해석할 수 없는 영적 감동의 삶이었음을 역량 다해 전했습니다, 그래서 신앙 간증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윽고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우리 형제들이 아버님과 어머님이 자리하고 있는 납골함의 주인공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녀들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 되어 추모할 때 부모인 우리들의 뒤안길을 반추할 텐데, 그때 우리 아버지, 어머니, 고모는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다가 가셨다고 말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막내이지만 목사로서 권위를 갖고 영적 교훈을 전했습니다. 추도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소회가 밀려왔습니다. 제천에서 17년을 살았는데, 내 인생의 가장 황금기를 보냈는데, 나는 제천에서의 삶이 후회하지 않는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나!를 말입니다. 예전 같으면 환갑은 삶을 정리하여야 하는 나이였기에…, 1시간여 걸리는 이천에서 제천까지의 이동 차안에서 나는 지금 바울의 심정으로 하루하루 내 삶의 씨줄과 날줄을 후회 없이 엮어가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긴장의 시간을 가져 보았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는지, 믿음을 잘 지키고 있는지, 그리고 달려가야 하는 목사의 길을 잘 달려가고 있는지 날마다 점검해보기로 말입니다. 날이 많이 풀렸습니다. 이대로 겨울이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해서 따뜻한 봄의 내음이 성큼 내 곁으로 다가왔으면 싶습니다. 금년 겨울은 몹시도 추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