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징고이즘(Jingoism)의 수단이 아니다.
교회 집합 금지 명령 살벌한 문구다. 인권과 자유와 평등을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의 기초에서 본다면 이 문구는 왠지 전체주의적인 느낌이 든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너무 나갔나 싶어 한 발 뒤로 물러설 수는 있지만 분명한 것은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자유의 움직임을 물리적인 힘을 가진 세력이 강제하는 것은 큰 그림에서 볼 때 폭력이다. 제천에 코로나 19가 맹폭한지 한 달이 지나간다. 관(官)에서 전혀 생각하지도, 상상하지도 않은 총체적 공포가 시 전체를 휘감은 것은 내가 제천시민으로 산지 17년 만에 처음이었다. 지난 13일부터 20일까지 한 주간 교회 집합 금지 명령이 떨어졌다. 1인 예배 외에 어떤 모임도 교회에서는 허락하지 않는다는 살벌한 공적 문서를 갖고 시청 공무원이 방문했다. 무려 5번이나. 우리 공동체의 지체들이 알다시피 세인교회는 제천 시내 소재한 교회 중에 지나간 신천지발 쇼크, 전광훈 발 쇼크에 선제적으로 대처하여 비대면 예배를 솔선수범한 관에서 볼 때는 대단히 모범적이고 우수한(?) 성적의 교회다. 그런데도 5번에 걸친 실사를 공무원들이 나왔다면 다른 교회의 사정이 어땠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그렇다. 우리 교회는 모범생이다. 적어도 국가에 말에 고분고분 순종한 교회니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아주 가끔 근래에, 국가가 내 사랑하는 교회를 향하여 다운 그레이드 되고 있는 힘없는 교회의 약점을 이용하여 교회를 ‘징고이즘’(공격적인 정책을 만들어 내는 극단적이고 맹목적이며 배타적인 애국주의 혹은 민족주의)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악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소름 끼칠 때가 있다. 아주 아이러니하게 난 ‘징고이짐(Jingoism)’이라는 단어를 사회학적인 책이 아니라 대단히 신앙적인 마틴 로이드 존스의 글에서 만났다. 이 다분히 정치역학적인 단어를 극히 복음주의적인 색깔을 갖고 있는 로이드 존스 목사가 끄집어낸 이유는 침략전쟁의 사탄성을 고발하기 위함이었다. 존스는 조국인 영국이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식민지화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지성적 반란이요 저항을 한 셈이다. 그는 어떤 경우에라도 물리적인 힘을 약한 자에게 사용하는 것을 반대한 것이기에 말이다. 우리 교회가 국가적인 시책에 동의하는 것은 바보라서가 아니다. 무지몽매해서는 더 더욱 아니다. 세인교회가 선제적으로 말도 안 되는 비대면 예배를 지속하는 이유는 보편적 선을 위해서다. 조금 더 기독교 신앙적으로 표현한다. 이것이 코로나 19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향하여 품으셨던 ‘스프랑클니조마이’ 즉 ‘불쌍히 여기신’ 주님의 마음에 합한 일임을 신학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국가가 교회를 업신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국가가 교회를 이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국가가 교회를 먹이 좋은 사냥감으로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아직도 상당히 상식적이고, 건강한 교회들은 국가의 위기를 아파하며 기도하는 이 땅의 유일한 공동체이기에 말이다. 무식한 목사라고 벌떼 같이 공격하겠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한다,
“교회가 그래도 기도하기에 대한민국은 이만하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