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5일 금요일 성서 일과 묵상 나는 달려갈 뿐, 뒤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126편, 하박국 3:2-6, 빌립보서 3:12-16 꽃물 (말씀 새기기) 빌립보서 3:12-14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번역) 내가 이 모든 것을 다 얻었다거나 다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만, 놀랍게도 나를 붙드신 그리스도를 붙잡으려고 내 길을 갈 뿐입니다. 친구 여러분, 내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나는 결코 나 자신을 이 모든 일의 전문가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손짓하여 부르시는 그 목표, 곧 예수만을 바라볼 뿐입니다. 나는 달려갈 뿐, 되돌아가지 않겠습니다. 마중물 (말씀 묵상) 청년 시절, 고향교회에서 잘 부르던 복음 찬송가 중에 영어 가사가 이런 복음성가가 있었다. I have decided to follow Jesus. no turning back no turning back. 부흥회가 열리면 정말로 열심히 불렀던 찬송이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바울의 고백을 성서일과로 읽으면서 그때의 감동으로 회귀해 보았다. “나는 달려갈 뿐, 되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옥에 갇혀 있는 바울에게 왜 회한이 없었을까. 너무 장래가 촉망받던 유대 율법주의자 청년, 사울의 인생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순간 송두리째 엉망이 되었다. 이후 그에게 찾아온 것은 장밋빛 꿈이 이루어지는 시온의 대로가 아니라 처절한 고난과 환란이었다. 그에게 남아 있는 세속적 가치와 영광은 전혀 존재하지 않고 사라졌다. 그런 그가 빌립보 공동체에게 보내는 편지는 눈물나게 비장하다. “나는 달려갈 뿐, 뒤돌아가지 않겠습니다.” 목회 현장을 35년 달렸다. 전 생애를 달린 셈이다. 얼마나 체력적으로 버텨줄 지는 모르겠지만 은퇴도 서서히 생각해야 하는 시기다. 내 삶을 뒤돌아본다. 왜 나라고 회한이 없겠는가! 조금 더 큰 길로 가기 위해 얼마든지 타협할 수 있었다. 나 한 사람의 안위가 목사가 된 이유보다 더 크다고 한 번만 마음 먹었으면 나는 지금보다 물리적인 위상이 훨씬 더 그럴듯한 나로 지금 존재할 수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지극히 세속적 관점에서 본다면 왜 회한이 없겠고 후회가 없겠는가! 하지만 성경에 바울의 토로가 있는 한 나는 내 삶의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 또한 이렇게 선언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달려갈 뿐, 뒤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속해 있던 공룡같은 거대한 조직에서 그냥 목회에 충실하다는 이유로 심각한 핍박과 압박, 그리고 공격을 받았던 선배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모독과 인격적 살해를 당한 뒤에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던 울분을 직접 들었던 기억이 오롯하다. “내가 이러려고 목사가 된 것이 아닌데…” 하지만 그 선배는 끝까지 자신의 목양철학을 순수하게 지켰고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역하다가 거침없이 이제는 나를 잊으라고 고백한 뒤에 목회 일선에서 내려왔다. 적어도 상식적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수많은 후배 목사들에게 그 선배는 여전히 큰 기둥으로 지금도 남아 있다. 나는 선배가 걸었던 올곧은 길을 옆에서 응원하며 본받으려고 몸부림쳤다. 왜? 그것이 뒤돌아서지 않는 목사의 미션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마치 여름 장마처럼 내리는 겨울비가 당혹스럽기는 하지만 서재 창가에서 들리는 빗소리의 여운 속에서 나도 다시 한 번 바울처럼, 선배처럼 나를 다잡이 해본다. “나는 달려갈 뿐, 뒤돌아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두레박 (질문) 하나님,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올바른 길인가요?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잘 가고 걷고 있는거죠?
손 우물 (한 줄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잘 달려가게 하옵소서. 끝까지 잘 걷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뒤를 돌아보았던 롯의 처처럼 세속적 가치에 흔들리지 말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주님, 강추위가 예보되어 있습니다. 추위로 인하여 공동체 안에 연로한 교우들이 힘들지 않게 하시고, 없는 자들이 얼어죽거나 다치는 일이 없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