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 월요일 성서 일과 묵상 그러니까 말씀이지!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28편, 민수기 27:15-23, 디모데후서 2:8-13, 시편 7편, 에스라 2:1-18 꽃물 (말씀 새기기) 디모데후서 2:9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마중물 (말씀 묵상) 바울은 디모데에게 대단히 중요한 고언을 했다. 나는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히기를 수없이 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일이 있어서 옥에 갇히지 않는다. 바울의 메시지가 주는 울림은 대단히 크다. 하나님의 말씀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님을 선언한 것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를 믿는다. 사람의 의도에 따라 마음대로, 멋대로 해석되는 것은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권위가 있고 자유롭다. 그러므로 말씀의 권위를 망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목사의 의무요, 미션이다. 만에 하나, 말씀이 목사에 의해 난도질을 당하면 그건 그 사람의 말장난이지 레마가 아니다. 설교해야 하는 목사로서 가져야 할 책임 의식은 막중하다. 적어도 말씀 갖고 장난질 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목사에 의해서 매이지 않는다. 나는 아주 가끔은 혹자들에게 이런 공격을 받는다. “쉬운 설교 해라” 현장에서 35년이라는 목회를 한 목사가 왜 이런 유혹을 듣지 않았겠나. 하지만 내 개인적인 소회는 이렇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그러니 아무리 목사가 설교를 쉽게 한다고 해서 그것이 들리는 소리일까? 나는 회의적이다. 그러니 다만 목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설교적 포플리즘에 빠지지 않고 성경 텍스트를 위해 씨름할 때 성령이 주도권을 갖고 말씀하시려는 레마를 받아들이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기도하는 일이며, 이 과정에서 주군이 주신 말씀 자체를 전하는 것뿐이다. 결국 설교를 의도적으로 쉽게 하거나, 혹여 또 의도적으로 어렵게 하는 일체 시도와 투쟁하며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는 천박성과 싸우는 것이 설교자의 책무다. 설교자는 설교자이지 개그맨이 아니다. 이런 차원에서 바울이 오늘 양아들에게 권한 말씀은 내게 적잖은 위로가 된다.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디트리히 리츨이 말했던가! “말씀이 이해되지 않는 것보다는 오해(왜곡)되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하다.” (디트리히 리츨, 『설교 신학』, 대한기독교서회, p,204.)
두레박 (질문) 설교하는 사람으로 말씀을 갖고 장난질 치는 무례한 목사인지 날마다 묻는다. 손 우물 (한 줄 기도) 말씀으로 오신 주님, 사람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영원히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비물 (말씀의 실천) 말씀을 말씀으로 존중하자. 말씀은 말씀 그 자체다. 말씀 가지고 도리질 치지 말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언제나 아픈 자는 교회의 중심입니다. 이번 주간도 아픈 자와 함께 해주시고 동행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