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제목일상의 순례자2024-06-10 17:08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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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지은이 김기석
ㆍ출판사 두란노
ㆍ작성일 2016-02-23 00:17:28

 

김기석의 일상의 순례자를 읽고 (두란노 간, 2014)

 

신학교에 입학을 한 뒤나름 신학생의 면모를 갖추겠다고 생각하여 늦깎이 초등학생의 심정을 갖고 읽었던 책들은 고전이었다아주 촌스럽게 고백하자면 그래도 신학생인데 하는 떠벌임을 섬기는 교회에서 자랑하고픈 마음으로 읽었던그래서 별로 선하지 않은 저의(底意)가 있었던 책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어마어마한 책들이었음에 개인적으로 참 감사하다.

토마스 아켐피스가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보여준 보물 같은 영성을 그렇게라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찌 오늘 주님과의 전인격적인 만남을 날마다 사모하려는 치열함을 배울 수 있었겠는가또한 교만한 마음을 갖고 읽었지만 그렇게라도 했기에 오늘타나 남아 검게 그을린 마른 장작 같은 서평자는 어거스틴의 참회록이라는 고전을 통해서 목회를 하는 목사로서 가장 큰 틀의 신학적 테두리를 나름 그림 그리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같은 맥락으로 헨리 센케비치의 쿼바디스를 읽었기에 왜 오늘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깊은 영적 수렁에 빠져 있는지에 대한 원인이 순교적 영성의 상실이라는 통찰도 갖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A.J 크로닌은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인생의 스승이나 다름이 없다격동의 80년대신학생으로 살아가며 나는 내 조국에서그리고 세속 정치의 무자비함을 보았다당연히 이 기막힌 정상의 비정상화를 보면서 교회가 예언자적인 사명을 발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기력하게 침몰했고 굴복했던 당시 선배들의 부끄러움들을 보면서망연자실해 하던 나를 다시 살려준 것이 바로 천국의 열쇠였다나는 프랜시스 치셤으로 살겠노라고어떤 일이 있어도 안셀름 밀리와 같은 목사가 되지 않겠다고 어줍게 다짐하게 만든 선생님이 바로 천국의 열쇠였다.

앞에 열거한 고전들은 지금은 서평자의 서재에 색 바랜 책들로 꽂혀 있다그러나 열거한 책들과 비교하여 전혀 손색이 없는 아니 오늘도 더 많이 손이 가는 책이 하나 있다존 번연의 역작인 천로역정이다아마도 개인적으로 설교의 원고에 단편으로는 가장 많은 인용문이 들어간 책그래서 성경 다음으로 서평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제 2의 성경과 같은 책이 천로역정이다.

이 책은 공교롭게 신학대학에 입학을 해서 읽은 책이 아니다신학생이 되기 이전에 만났던 책그래서 어렴풋이 목사의 일을 낭만적으로 보게 했던 책이 아닐까 싶다. 1970년 대 후반 나는 왜 그렇게 주인공 기독자에게 필을 꽂혔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이해 불가이다천성을 향해 가는 길목마다 그를 무너뜨리기위해 도사리고 있었던 수많은 방해들이 나는 당시 왜 도리어 기독자에게 축복의 도구라고 섣불리 생각했는지당시는 신학생도 아니었는데 어디에서 그런 배짱이 생겼는지 너무 생뚱맞고 기막히다목회를 하는 현장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에 기독자의 순례의 길을 너무 주관적으로 본 것은 아닌가 싶고그 때의 그 건방이 오늘 목사로서 사역하면서 흔히 세간에서 하는 말대로 말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그 원칙처럼 하나님께서 서평자에게 보란 듯이 떠넘기신 것 같아 웃프다.

기독자를 지금 추스르면 어떤 의미로 이 살벌한 세상에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오늘 나와 너는 아닐까너무 큰 비약인가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오늘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갖고 살아가야 길은 존 번연이 성찰한 천로역정의 녹록하지 않은 노정과 비교해볼 때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순례의 길임에 틀림없다허나 이 길을 가는 노정이 외롭지 않은 이유는 서평자가 지금부터 나누고 싶은 저자와 같이 날마다 일상의 순례를 떠난 동역자들의 흔적들이 고즈넉하게 또 이 길을 떠나는 자들에게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일상의 순례의 길을 떠나 그가 미리 경험한 알천들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그 선물이 오롯하다길을 떠나는 순례자는 외롭지 않음을 저자는 그 길에 예수께서 함께 동행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적시한다.

예수는 언제나 질문인 동시에 대답이다나는 묻고 그는 대답한다이때 나는 콘텍스트이고 그는 텍스트가 된다또한 그가 묻고 내가 대답한다이를 통해 신앙고백이 생활이 된다. (중략이제는 우리의 일상은 더 이상 적막강산이 아니다향방 없는 날뜀도 아니다가야할 길을 알고 걷는 이의 발걸음은 흔들림은 있을지언정 방향을 잃는 일은 없다예수를 길로 삼고 살아간다는 것그것은 마음의 든든한 지주를 세우는 일이다.”

바른 교회 아카데미라는 한국교회를 염려하는 리서치 모임이 있다. 10여 년 동안 한국교회를 위한 바른 길잡이의 역할을 잘 감당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서평자는 이 사역과 함께 길을 걸어왔다교인 수를 늘리는 세미나와 집회에는 수많은 목회자들이 몰리는 데에 반해교회의 바른 방향성을 제시하는 이 세미나에는 현장 목회자들이 상당수 외면을 하고 있다이유는 단순하다목회의 도움이 아니라 부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기실이런 실제들이 눈에 보인 것은 작금의 일이 아니라 이미 오랜 전부터 한국교회에 녹아든 현상이다어떤 의미로 보면 교회가 바르게 가야하는 길을 제시하는 것은 본()이고이런 길을 가는 교회가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것은 말()인데 오늘 교회는 이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 너무 강해 유감스럽다적어도 교회는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이 순서를 잊지 말아야 하는데 상당수 많은 부분에서 순서가 뒤죽박죽된 것처럼 여겨지는 일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 아프다같은 차원에서 예수라는 텍스트는 본이고그 길을 따라가야 하는 나는 콘텍스트인 말인데너무 쉽게 내가 텍스트가 되는 본으로 변질되고 예수께서 기분에 따라 말이 된 콘텍스트가 되는 일이 다반사로 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싶어 두려워진다해서 저자가 본을 향해 가는 순례자는 흔들림도 없고방향을 잃을 일도 없다고 말한 대목에서 마음이 뜨거워진다순례의 길을 떠났다고 하면서도 그 순례를 마치 관광처럼 여기는 얍샵한 크리스천들이 너무 많아 흔들림은 기본이고방향성을 잃어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순례자가 된 저자는 봄의 사람을 기다린다.’라는 꼭지에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북부인 제발리아 난민촌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희생된 두 살배기 아기의 주검을 옮기는 사진이 책상 위에 있음을 적시하고 폭력을 성토한다그런 뒤그는 이렇게 글로 그 폭력에 대하여 반항하는 사람들이 일어서기를 기원한다.

폭력과 테러가 일상화된 세상은 새로운 사람을 기다린다힘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은 사람힘을 가진 자들의 전횡에 동의하지 않은 검질긴 사람들 말이다.”

서평자는 년 초에, IJM(International Justice Mission)이라는 글로번 인권단체 설립자인 게리A, 하우젠이 쓴 폭력국가를 만났다하우젠은 보고서에서 전 세계의 선진국은 물론 개도국에서 공히 발생하는 각종 폭력이 경제적으로 극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계층에게 자행되고 있다는 점을 고발한다이어 그는 그 배후에 국가 권력이라는 거대한 담이 돈으로 방어막을 구축하고 있는 폭력 가해자들을 방어해주는 합법적 시녀와도 같은 또 다른 폭력의 주범임을 여지없이 성토한다글을 읽으며 이런 상황이 아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IJM과 같이 봄의 전령과도 같은 주체들이 있기에 그나마 피해자들이 숨을 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감회에 젖은 적이 있었다.

S.G 워너비 멤버였던 가수 김진호가 부른 노래 중에 가족사진이라는 곡에 이런 가사가 있다.

내 젊은 어느새 기울어 갈 때 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들이 가족사진 속에 미소 띤 젊은 아가씨에 꽃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 꽃 피우길

엄마의 젊음은 자식이라는 존재의 꽃피움을 위해 거름과 그을린 시간들로 지나가 버렸지만 엄마의 유일한 소망은 분신인 자식이 꽃피우는 것이 소망이었기에 그 버거운 일들을 기쁨으로 감내했던 것처럼 엄마의 모성적 마음으로 이렇게 봄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그 봄의 노래를 부르게 해주는 사람이야 말로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 위에 서 있으면서 본말이 전도되지 않도록 그리스도와 한 발을 같이 묶고 걷는 순례자이지 않을까 싶다그 순례자가 나와 너이기를 소망하면 사치일까?

저자는 두 번째 꼭지 땅의 열기를 느끼며에서 또 다른 여행을 떠난다제일 먼저는 깊은 샘에 천착한다물론 그 샘물의 원천은 큰 정신의 원천인 예수임을 분명히 한다이렇게 시작한 그의 여행은 침묵의 영성을 통해 만나는 예수를 전한다서평자는 저자의 이러한 접근에 대하여 격하게 동의한다마틴 하이데거가 말한 타락한 현대인의 요소가 호기심쓸데없는 말평균적 일상성에의 집착임을 저자는 인용하는데 일련의 이런 것들이 던지는 추파는 말할 것도 없이 침묵하게 하지 못함이다아내와 연애하던 신학생 시절참 많이 글로 나누었던 것 중에 하나가 이해인 수녀의 시어들이었다연애편지를 쓰는데 아주 적절한 글감들이 들어 있어 적극 추천한다그러나 진정성을 갖고 서평자가 이해인 수녀의 시어들을 좋아했던 이유는 침묵의 영성을 그녀에게서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기억에 세뇌돼 있는 것 하나털어 놓는다.

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 들려옵니다나의 자그마한 안뜰에 남 몰래 돋아나는 향기로운 풀잎당신의 말씀-그 말씀 아니시면 어떻게 이 먼 바다를 저어갈 수 있겠습니까아무리 둘러보아도 아직은 메마른 나무의 둘레꽃도 피지 않고 뜨거울 줄 모르는 미지근한 체온비록 긴 시간이 걸려도 꽃은 피워야겠습니다비온 뒤의 햇살같이 안으로 스며드는 당신의 음성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 가까이 들려옵니다.”

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 가까이 들려옵니다.’라고 노래하는 수녀 시인의 영혼이 너무 깨끗하고 아름답다.

어느 날기독교 텔레비전을 우연히 틀었다가 서울의 한 대형교회 목사의 설교를 본 경험이 있다물론 본인이 시무하는 교회의 주일 예배 실황을 가감 없이 보여준 기독교 계통의 방송국 용기가 가상하고 그 설교자는 자기가 섬기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평상시에 하는 설교라 너무 자연스러웠는지 모르지만 현장 목회자로 개인적으로 설교를 하는 서평자는 순간 소름이 끼치는 충격을 받았다이유는 간단하다설교자의 겁박 수준의 호통과 더불어 큰 소리로 아멘 하는 회중들을 본 까닭이었다마치 중세 가톨릭교회에서 면죄부의 판매를 위해 지옥을 도구 삼았던 그 암울한 그림자가 다시 스쳐지나가는 악몽 같은 방송이었다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다는 목회자의 설교 폭력(?)을 들으면서 개인적으로 유대인 신명기 사가가 호렙 산에 들어가 칩거하며 심각한 영적 침체에 빠져 있는 엘리야를 부를 때 바람지진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세미한 음성 속에 계셨는지를 기록했는지를 실감하는 좋은 경험을 했다.

서평자가 어줍지 않게 목회를 하는 제천에는 베론이라는 가톨릭 성지가 있다사시사철의 절경 때문에 많이 찾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곳을 방문할 때는 고즈넉한 침묵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거하고 싶을 때이다성지 안에 있는 최양업 신부 기념 성당의 내부는 들어서면 고요하고 세미한 음성으로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건축되어 있는 거룩함에 압도당한다물론 인위적인 작품이기는 하지만 교회 안에서 분주함과 시끄러움에 공격을 받고 나면 부끄럽지만 서평자는 그곳에 방문하여 힐링하고 돌아오는 호사를 누린다참 아쉽지만 상당수 개신교회의 예배는 취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그러기에 저자가 이렇게 말한 것을 가슴에 깊이 담아본다.신앙은 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깨우게 하는 것이다.”

서평자가 시무하는 교회의 이름이 세인이다교회를 개척할 때 다음과 개척 마인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게 살려달라는 비극적인 교회가 아닌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고 살려달라는 교회

해서 세상이 인정하는 교회가 되자는 취지로 세인(世認)교회라 지었다저자의 글을 읽다가 서평자가 시무하는 교회 이름의 취지와는 어떤 의미로 보면 정 반대의 개념으로 하이데거가 말한 인용문이 삽입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일상성에 갇힌 채 자기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는 자들을 가리켜 '세인‘(DAS MANN)이라 불렀다그들의 존재 양식은 잡담과 호기심과 모호함이다세인들의 특징은 재미를 우선적으로 추구한다는 것이다그들에게 최대의 악덕은 재밋거리를 놓치는 것이다인터넷 포털 사이트는 그런 재밋거리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느라 분주하다.”

그렇다침묵은 재미와는 거리가 있는 개념이다침묵 자체는 고독하다그러나 침묵은 깊은 샘물을 기르게 해준다침묵은 분주하지 않기에 자아를 천박하게 하지 않는다침묵은 뭔가를 쥐어짜내게 하지 않는다그냥 침묵 자체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해 주는 귀한 엑기스를 추출하게 해준다이런 이유 때문에 침묵은 세인(世人)이 되는 것을 방어해 준다적어도 나는 내가 사랑하는 한국교회가 분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저자의 말대로 개그 콘서트를 교회가 닮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자가 소개한 시인 윤석산의 글을 읽다가 응답하라 1988’식의 촌스러움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확인한 것 같아 무지 기뻤다.논두렁길에서는 개구리가 뛰고오솔길에서는 산 꿩이 울고신작로에서는 자갈이 튀면서 먼지가 날리고 고속도로에서는 국민 여러분하는 연설이 흘러나온다.”

이상한 생각생뚱맞은 상상을 해본다한국교회가 세인(世人)에게 세인(世認)하는 교회가 되려면 혹시 논두렁길오솔길이라는 촌스러움으로 돌아갈 때가 아닌가 하는 촌스러운 생각 말이다서평자는 어쩔 수 없는 촌놈이다.

길 위에서 모자를 벗고의 세 번째 꼭지로 들어가 보자저자는 이 대목에서 유독이 강조하는 단어들이 보인다소통이요신뢰요사랑이다일례로 저자의 소통을 정의해 보자.

소통은 나의 생각과 견해를 타자에게 납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통의 바탕은 신뢰고신뢰의 밑절미는 곁에 있어줌이다.”라고 했다.

그리스도의 도의 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노정에서 모자를 벗는 일은 곁에 누군가가 있어주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있어주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시인이자 문학 비평가인 김응교는 자기의 산문집인 곁으로에서 본회퍼가 나를 따르라에서 선언했던 말과 동일한 고백을 했다.

고통 곁에서 떠나지 않는고통 곁으로 다가가는 삶은 값비싼 은혜’ 라고 부른다.”

그의 글을 읽다가 내 사랑하는 한국교회를 뒤돌아보았다그리고 자문해 보았다한국교회는 값비싼 은혜를 누리고 있는가아니면 값싼 은혜에 내둘려 있는가무서운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으면 좋겠다자꾸만 내가 사랑하는 교회가 이웃의 고통과 함께 하지 않기 위해 멀리 떨어져 있는 후자의 교회인 것 같은 느낌말이다내 생각이 철이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힘없어돈 없어배경 없어 고통을 당하는 이웃들 곁에 있어주는 일을 교회가 하면 안 될까기독당 만든다고 핏대 올려 소리치지 말고기득권 정권의 나팔수가 되어 때때마다 시청 광장에 모이지 말고 그냥 아픈 자 곁에 교회가 있으면 안 될까?

정경일은 불안의 안개와 사회적 영성이라는 소논문에서 이렇게 진단한 적이 있다.무한소비의 탐욕을 자원으로 삼아 독점 거대종교로 성장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기존의 종교들을 자신의 하청 종파로 만드는 데 이르렀다.”

교회를 향해 벼락 치는 소리가 아닌가한국교회를 향하여 내리치는 죽비가 아닌가서평자의 자존심이라고 치부하면 할 말은 없지만 정녕 내가 사랑하는 교회가 하청업체 수준으로 전락한 것에 대하여 땅을 치고 싶은 심정이다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어서 그런지 저자의 일침이 내내 가슴에 남는다.

소통의 바탕은 신뢰고신뢰의 밑절미는 곁에 있어줌이다.” “주님 매를 들어서라도 이 땅의 교회가 빠져 있는 혼곤한 잠에서 깨워 주십시오,” 진심으로 아멘 했다.

마지막 꼭지를 나누어 보자. ‘다시 하늘을 보다’ 는 저자의 갈무리는 왠지 너무 외로워 보인다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다시 하늘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좁혀서 나에게넓혀서 그 리스도 예수의 도를 따른다고 고백하고 있는 일상의 순례자들에게 정녕 있겠는가의 자문에 대한 긍정의 답을 선뜻 내리지 못하는 멋쩍음 때문이다다시 하늘을 보려면 부르짖는 회개가 아닌 일상의 초점을 바로 잡는 회개가 전제되어 첫사랑을 회복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또 하나 귀를 기울여야 하는 촌철살인이 있다.

한국 기독교가 신앙적 주체로 서지 못하는 것은 믿음과 성찰을 떼어 놓았기 때문이다.”

역설하자면 지성적 성찰을 무시했던 지난 과오를 인정하고 한국교회가 편협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 된다절치부심해야 할 가치 있는 교훈이다감동이 없는 시대감동을 무시하는 시대에 한국교회 앞에서 사람들이 신발을 벗는 그런 믿음직한 대상이 내가 사랑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저자의 글 하나를 도전적으로 나누고 글을 맺으려고 한다시인 나희덕의 나의 어머니에 나오는 시어이다.

그 많은 자식들과 내가 형제처럼 사는 세상을 만드시려고 모두의 어머니가 되어 주신 우리 어머니

시인은 친어머니를 나의 어머니로 호칭하지 않고 우리 어머니로 불렀다서평자는 이 글을 쓰기 4일 전어머니를 하나님의 품으로 보내드렸다어머니의 입관 예배를 인도하던 친구 목사가 전했던 이런 이야기를 울면서 들었다엄마라는 단어는 자식이라는 단어의 일체의 모든 것을 사랑으로 쓸어 담는 블랙홀입니다.”

듣다가 이런 패러디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는 비그리스도인들이라는 단어의 일체의 모든 것을 사랑으로 쓸어 담는 블랙홀이 되어야 한다.”

이게 어디 쉬운가해서 이 어렵고 녹록하지 않은 이 길을 걷기 위해서는 주군이신 예수께서 걸어가셨던 흔적들을 날마다 지성과 감성과 의지로 새기며 균형 잡힌 모습으로 순례해야 하지 않겠는가?

저자와 함께 깊은 순례를 같이 했다그래서 그런지 안 아픈 곳이 없이 욱신거린다마치 한국교회가 지금 아픈 것처럼다만 그 아픔의 통증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지의 차이가 있겠지만키리에 엘레이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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