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지은이 | 마크 베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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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출판사 | 디모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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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15-09-22 17:38: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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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에 친구에게 책 한 권이 등기로 배달되었다. 항상 치열한 글 읽기로 목양의 현장을 윤택하게 하는 친구가 본인이 읽은 뒤, 은혜를 받은 부분이 많이 있다고 서평자에게 보내준 선물이다. 살다보면 지인들을 통해 경우에 따라 이런저런 선물들을 받을 때가 있다. 선물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해 준다는 데에서 참 좋은 연대를 이루게 해준다. 해서 가급적이면 나 또한 책을 선물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친구가 보내준 책이기에 항상 읽어야 한다는 나름의 부담감이 있었지만 개인적인 독서 스케줄을 맞추다보니 차일피일 미루다가 숙제를 완료하는 마음으로 책과 함께 했다. 마크 베일리는 신학교와 현장을 함께 뛰는 목회자이자 교수이다. 달라스 신학교에서 성경해석학을 가르치면서 FAITH BIBLE CHURCH 의 담임자로 사역하고 있는 현장 목회자이다. 그는 자신의 목양적인 현장에서 체험한 사역의 내용들을 소박하게 모아 독자들에게 오늘의 현대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 무늬만 크리스천이 아닌 시대에 걸 맞는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체크해야 할 7가지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소위 말하는 ‘7가지의 제자도’ 이다. 기실 이것은 베일리에 의해서 본서에서 집약되어 소개된 내용들이지만 이미 여러 차례 직간접적으로 믿음의 선배들과 동역자들에 의해 이미 강조되었던 내용이기도 하다. 이 말은 환언한다면 어떤 사역자이든 제자로서의 모습을 갖춘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서는 공히 함께 고민하고 성찰하고 사유하려는 공통분모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베일리는 제자도의 제일 핵심으로 ‘아주 특별한 사랑’을 말한다. 이 사랑은 물론 예수님을 향한 절대적인 사랑이다. 베일리는 이 사랑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아내 바비와 결혼을 하면서 해야 했던 본인의 삶의 변화로 비유한다. 아내를 선택하기에 앞서 그녀는 사랑할 때 눈이 멀었던 에피소드를 열거한다. 하지만 그의 열거가 결코 천박하지 않다. 아내가 옆에 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모든 것을 다 버려도 괜찮아진 나를 보면서 그것이 바로 제자도의 핵심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배타성이란 그런 것이다. 가족의 반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인 가치의 인식에 다르다고 할지라도, 심지어 핍박이 있다고 하더라도 비길 데 없는 사랑이 아내를 향한 사랑이라면 그 아내를 얻는 것이 최고임을 인정하고 그 사랑을 지켜가는 것이 제자도의 길을 나서는 자의 모습임을 애써 강조한 저자는 그 제자도의 핵심을 지켜가는 순간,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가족들마저도 하나님은 돕는 자로 응원자로 서게 해주심을 역설한다. 고등학교 시절, 같이 죽자하며 우정으로 뭉쳤던 세상 친구 8명이 있었다. 참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들이기에 서평자에게는 또 다른 인적 기반들이며, 자산들이 바로 그 친구들이었다. 허나 신학대학에 입학을 하면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이별 아닌 이별을 하게 되었다. 나눔이 다르고 비전이 다르고 공통분모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수순이라고 믿었기에 담대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지나오는 어간,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이 다시 다가왔다. 믿기지 않는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답은 간단했다. 친구들이 이제는 삶의 질문을 서평자에게 나눈다. 인생의 중년기에 접어든 친구들이 이제는 삶을 뒤돌아본다. 이제는 폴 틸리히의 신학을 알지도 모르는 그들이지만 궁극적 관심들을 이제는 묻는다. 마크 베일리의 선택이 나에게도 적용되는 것을 보며 제자의 길이 얼마나 오묘하고 세밀한가를 느낀다. 두 번째의 제자도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정기적 공부와 헌신이다. 저자는 이 두 번째의 지침을 영적 성숙의 바로미터를 높여주는 일로 소개한다. 영적 성숙의 길 중에 하나는 말씀 가운데 거하는 것인데 그러려면 ‘영적인 귀지가 쌓이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정기적인 공부와 헌신으로 가능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성경 공부는 트레이닝이다. 히브리서 5:14절을 들추어 보자.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이 구절에 쓰인 연단을 받는다고 번역된 헬라어는 ‘짐나조’이다. 그렇다. 이 헬라어 단어에 어원을 둔 영어 단어 ‘GYMNASIUM’ 이다. 우리말로 체육관을 일컫는 단어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연단은 그래서 트레이닝이다. 연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무엇인가? 저자는 성숙함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나아간다. “연습은 완전함을 이룬다. 고기와 같이 단단한 식물은 성숙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성숙한 사람으로 영적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의 체육관에서 연습하는 헌신을 하자는 저자의 말은 그래서 믿음이 간다. 서평자가 시무하는 교회에는 여러 가지의 성경 공부 프로그램이 있다. 또한 양육과정이 있다. 이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주일은 물론 주중에도 지체들이 아주 많이 바쁘다. 어떤 측면으로 보면 현대적 감각으로는 빵점 목회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사역은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너무 바뿐 현대인들의 삶의 정황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자가 택하는 방법이 오히려 주님의 시각으로 볼 때는 더 귀하게 여기실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걸어 다녀서는 안 되고 뛰어다녀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갖는다. 주님을 위해 뛰어보지 또 언제 뛸 수 있겠는가? 성경 공부와 정기적은 헌신을 독려하는 것은 현대 크리스천들에게 넘지 못할 산이 아니라 그렇게 살도록 해야 전공필수과목이다. 부담감이 없는 안락함 신앙생활, 그리고 편안한 신앙생활을 함께 도모하는 목사로 살려면 목사의 로브를 벗는 것이 낫지 않을까? 세 번째의 제자도 지침은 우리 자신의 삶의 권위와 초점으로 삼는 것에 대한 포기라고 저자는 정의한다. 아마도 이 세 번째의 지침은 어떤 의미로 보면 목사로서 살아가는 현장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힘들고 무겁고 괴로운 일이라고 본다. 저자는 이 내용을 시작하는 어간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명제를 소개한다. ‘네 자신을 부인하라’ 주목할 것은 저자가 이 대목을 설명할 때 비장하다는 점이다.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교회의 영적 기상도는 이미 여기저기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이 보이는 저기압 골이다. 스티븐 퍼틱, 카일 아이들먼, 프란시스 첸, 매트 챈들러, 데이빗 플랫 등등의 몇 몇 급진적 제자도의 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젊은 목회자들이 근근이 미국교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튤리안 차비진 목사의 일탈에서 보듯이 그곳도 안전하지 않은 듯해서 씁쓸하다. 더군다나 로버트 슐러 이후, 십자가 없는 복음의 사도인 조엘 오스틴이 아직도 건재한 미국교회는 어떤 의미로 보면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위기감이 목회와 신학 전반에 팽배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 군사 대국의 자리에서 장기집권하고 있는 이런 미국의 한 복판에서 예수께서 선포하신 메시지가 무슨 의미를 줄 수 있을까? 는 미국 목사들 뿐 아니라 미국교회를 닮은꼴로 나아가고 있는 조국교회에서도 매일반이다. ‘네 자신을 부인하라.’ 이 메시지를 듣는 상당수의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 중에 아멘 하여 실천할 목사, 성도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우울하다. 서평자는 목회를 하면서 두 가지에 빠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지난 26년을 달려왔다. 첫째는 교회 재정장부에 관심이 없는 목사, 둘째 결코 교회 및 교단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 목사가 되자는 것 말이다. 말처럼 쉽지 않는 일이다. 특히 지천명을 넘긴 남자들은 명예욕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이 공식을 대입해 보면 서평자는 나름 선방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달려왔다. 목회 26년차 목사인데 나는 교회 재정장부를 한 번도 열람 한 적이 없다. 교우들 중에 십일조 신자가 누군지도 잘 모른다. 태생적으로 그런지 아니면 종의 기도를 하나님이 정확하게 들어주셔서 그런지 잘 구분은 안 되지만 교회 정치에는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질 정도로 무관심하다. 네 자신을 부인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목사는 이 두 가지 물질, 정치에 관해서 욕심을 내려놓으면 60점 커트라인을 넘는다고 서평자는 믿고 있다. 해서 저자의 일견에 서평자가 깊이 새겼던 내용은 ‘자기를 부인하라’는 주님의 명령이 불특정 다수에게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당시 제자군(弟子群)에게 일인칭으로 내려진 명령이었다는 해석이었다. 왜? 제자들에게 내려진 이 명령의 방점을 물질과 명예욕을 비롯한 욕심을 부인하라는 말씀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부인하라’ 는 원어의 의미가 자신에게 ‘아니오.’ 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여 풀이한 본서 저자의 혜안을 서평자는 물질과 명예욕을 비롯한 육체의 정욕으로 수용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나는 베일리의 해석에 동의한다. 결론이 무엇인가?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진정성이 있게 내 자신의 삶의 권위와 초점으로 삼는 것에 대한 포기할 수 있으며 주님의 가치에 따라 살아가는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선언을 해 준 베일리의 공격적 선언에 박수를 보내고 또 보낸다. 저자가 인용한 무디 성격학교의 교장을 역임한 조셉 스토웰이 말한 촌철살인을 재인용해 본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화가 났을 때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을 진정으로 표현할 모든 적당한 동작과 단어를 잃어버린다는 의미이다.” 주님의 제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단다. 스토웰의 지론에 의하면. 네 번째 제자도의 핵심은 복종의 삶과 십자가에 대한 희생이라고 저자는 정의한다. 저자는 갈라디아서 2:20절에 담겨 있는 세 가지의 역설을 소개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① 우리는 죽었지만 그러나 살아있다. ② 우리는 더 이상 살지 않지만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산다. ③ 우리는 육체 안에서 살지만 믿음으로 산다. 바울의 이 금과옥조 같은 말씀을 저자처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정체성을 분별하는 시금석과도 같은 말씀이다. 이런 해석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느냐이다. 나는 십자가 설교를 하면 가끔 이런 공격을 받는다. 박물관에 소장되어야 할 목사, 혹은 천연기념물 목사라고. 그런데 그 공격이 나는 좋다. 왜냐하면 역으로 해석하면 그것이 내 색깔이라고 남들이 인정해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대한 희생은 죽기를 각오할 때만 내 것이 된다. 아니 오늘의 세상이 그렇게 만들어 주고 있다. 오늘날 많은 무늬만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은 이성으로 포장된 십자가 안지기이다. 어떻게 하든 십자가를 벗어 버리려고 한다. 이런 측면에서 불의 사자인 아이든 토저의 갈파는 기막힌 통찰이다. “현대 기독교에서 내가 발견한 나쁜 일 중에 하나는 십자가를 이용해서 십자가를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아이든 토저, ‘말씀이 힘이다.’ 에서) 토저의 기막힌 통찰이 가슴을 저민다. 고스란히 가슴에 담는다. 이 시대에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는 것은 오늘의 내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다. 나의 다양한 상황에 따라 십자가 신앙을 변질시키는 것이 아니라 혹은 그 상황에 따라 나에게 유리하게 변명하고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십자가에 그 상황이라는 것을 극복하는 못을 박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제자도의 핵심적 가치이다. 동의한다. 언젠가 미국 교회에 지대한 영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존 맥아더 목사는 이렇게 설파했다. “교회가 가장 약할 때 교회 안에 자유주의가 들끓었고, 신비주의가 판을 쳤으며, 심지어는 세상의 기업들이 동원한 마케팅을 도입했다. 그리하여 더 약해진 교회는 그 약함을 가리기 위해 심리학과 상담학까지 동원하여 고립무원에 빠졌다. 교회가 약해진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를 이런 삼류적인 아류들이 꿰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 그의 불의 소리가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만으로 충분하고 또 충분하다.” 서평의 촌스러움은 글이 길어지는 것이라고 한 문학비평가의 말이 갑작스럽게 생각이 나 글을 줄인다. 이후에 저자는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강력한 리더십에 충성하는 제자도, 내 소유물에 대한 진정한 소유권자가 하나님이심을 인식하는 제자도, 그리고 이기적인 삶이 아닌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제자도의 중요한 핵심적인 가치임을 내심 강조한다. 책을 마치는 저자는 이렇게 마지막으로 권면한다. “일곱 가지 특징은 모두를 목표로 동시에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제자가 보이지 않는 시대, 제자로 살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시대, 오늘 내가 사는 시대이다. 그래서 역발상인가? 이 책은 당신이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데에도 반드시 읽어보아야 하는 지침이라고. 이 책을 선물해 준 친구의 목양이 더욱 풍성하기를 빚진 마음으로 중보 한다. 2015년 7월 27일 오후 9시 40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