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제목사명자반2024-06-10 15:43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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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지은이 이재철 목사
ㆍ출판사 홍성사
ㆍ작성일 2014-12-02 13:23:12

 

 

이재철 목사의 사명자반을 읽고 (홍성사, 2014)

 

 저자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이 책의 집필을 마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술회를 하고 있다이유는 체력적인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발병한 전립선 암 선고와 수술 때문임을 고백했다정말로 죽을힘을 다해 집필한 이 책 사명자반은 그래서 은혜의 결과임을 다시 한 번 진솔히 토로하는 대목에서 비장하기까지 함을 느낄 수 있었다그렇게 나온 사명자반은 새신자반과 성숙자반에 이어 완결 편에 가까운 결정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많은 사람들이 저자에 대하여 부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는다서평자가 만난 저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낸 사람들의 공통분모는 저자가 자기의(自己義)에 사로잡혀 있는 교만성을 지적한다그도 그럴 것이 그의 출간된 책들과 그의 설교를 빠짐없이 모니터링하고 있는 서평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그가 달려온 길들이 혹자들에 따라 그렇게 비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그가 목양의 현장에서 말이 아닌 삶으로 행해왔던 너무나 파격적인(?)인 행보들이 일반적인 길을 가고 있는 범인(凡人목회자들에게는 고운 시선으로 비칠 리 만무이기 때문이다다시 강조하지만 이론이나 말로 행하는 언론 플레이가 아니라 그의 목양의 현장에서 실천해왔던 일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처사로 비쳤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그는 지금 그의 출신 교단에서 파직 출교된 신분이다그가 가르쳤던 사도신경의 교리가 이단적인 요소가 농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를 그렇게 한 이유이다서평자는 이것에 대한 논거를 개인적으로 펼쳐보라면 하고 싶은 말이 태산이다그러나 이 지면은 그런 것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기에 피하고자 한다다만 저자가 말하고 있는 신앙인 즉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의 신앙적 삶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복음으로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입증해 주는 이 책을 통한 교훈들을 함께 추적해 보고자 한다.

저자는 믿음의 결정판인 이 책을 시작하면서 믿음의 재정립을 시도한다그는 믿음에 대한 정의를 다음의 8가지로 재정립한다.

⓵ 구도(求道):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쫓는 도인 즉 구도자가 되는 것.

⓶ 탈화(脫靴): 믿음은 멈춤에서 시작됨으로 자기 욕망을 쫓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서는 믿음의 삶을 시작할 수 없다.

⓷ 여백(餘白): 믿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역사하시도록 일평생을 주님께 여백으로 내어드리는 삶이다.

⓸ 안경(眼鏡): 믿음은 하나님의 영원을 보기 위한 안경이다.

⓹ 메움나의 인간적인 욕심으로 인해 난도질당한 성경의 비워진 부분을 말씀의 육화로 인해 삶을 통해 채워가고 메워가는 것이다.

⓺ 해석(解釋): 믿지 않는 사람들과 동일한 해석을 같이 하면 결국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나의 삶의 과정과 결과도 같기 때문에 믿음은 해석이다.

⓻ 위치(位置):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동시에 물질과의 관계에서 바른 위치를 점하는 것이다.

⓼ 공간(空間):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이 세상이라는 공간을 진리의 빛으로 채우는 것 즉 나의 삶의 공간을 사랑과 생명의 공간으로 채우는 것이 믿음이다.

이렇게 시작된 믿음의 정의는 곧바로 사명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갔던 성경 속의 인물들의 믿음의 삶을 조명함으로서 결국은 사명자는 위에서 열거한 8가지의 내용을 충실하게 수행하며 살았던 믿음의 선진들임을 저자는 보고한다저자는 제일 먼저 사명자라는 이름으로 사는 자들을 성경적인 잣대로 정의한다.

① 행함의 사람이다.

이 말에 대한 언급이 홍수를 이룬다이유는 간단한다행하지 않기 때문이다한국교회는 가르치는 사람은 너무 많은데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고 저자는 장탄식한다가르치려는 것으로는 바르게 행하지 못한다는 것은 필살이다해서는 그는 독일의 종교학자 요하힘 바흐가 설파한 신앙 체험의 4단계를 인용한다궁극성전체성강렬함행동이다행동은 사명자의 절정의 요소이다그러므로 행동이 따르지 않는 자는 처음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함을 서평자도 공감한다.

② 바른 말씀의 사람이다.

바른 말씀의 사람은 종교적 열심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자기만족을 위한 열심은 말씀에 대하는 것에 대한 잘못된 접근으로 기인한다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지 못함으로 긍정의 힘적극적 사고방식인본주의적인 상담 등이 말씀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을 용인한다말씀외의 그 어떤 것도 수용하는 것을 경계해야함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또 다른 교훈을 준다.

③ 자기부인이다.

저자는 베드로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있었던 사도행전 기사를 소개한다사람 취급을 하지 않던 무두장이의 집에 거하던 베드로 그 자체는 철저한 자기부인이었다고통스러운 자기 질병의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사역을 할 수 있었던 버가와 같은 대도시를 마다하고 타우르스 산맥을 넘어 비시디아 안디옥까지 생명을 걸고 찾아간 이유는 그곳에서 바울을 기다라고 있는 수많은 이방인들의 영혼을 목적했기 때문이었음을 저자는 철저한 바울의 자기부인으로 해석했다.

필자가 멘토인 저자를 존경하는 이유는 이 대목이다그는 사명자의 성경적인 잣대를 소개하는 장면의 마지막 부분에서 포도원 농장에 일군을 고용하는 주인의 비유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 비유를 인용한 저자는 사명자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렇게 진단한다.사명자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한 후에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누군가를 위해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사람이다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P.77)라고 1,000% 공감한다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온 사람 중에 5시에 온 사람의 수고를 인정하고 보듬는 그 사람은 한국교회에 몇이나 있을까?

저자는 사명자의 조건도 여지없이 다룬다그가 말하는 사명자의 성경적 조건은 무엇일까첫째 새로운 가치관 정립이다내가 구원을 받은 것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총이자 은혜임을 직시하고 내 삶의 동기가 하나님께서 설정되는 가치관을 조건으로 내세웠다둘째는 혼자만의 독립과 앞서감이 아니라 사명자는 부부의 함께 감을 또 하나의 조건으로 제시한다베드로가 가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족 돌봄이 아닌 제자 사역의 올인할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 아내의 지지와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이것은 부부가 동일한 가치관을 공유했기 때문임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셋째 가능한 빠른 시기에 사명자로 부름을 받는 것도 의미 있는 조건으로 동의했다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시신을 들고 나갔던 초대 교회의 지체는 젊은이들이었다사명자는 주님을 향한 삶에 대한 인식이 빠르면 빠를수록 유익하다는 지적은 오늘의 한국교회가 노쇠한 상태에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무겁게 다가온다넷째 보편적인 그리스도인이다교회라는 공동체의 구조는 보편적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편향적인 사고나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는 자는 보편적인 교회 공동체를 이끌어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다섯째 예언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미래 희망적인 사람이어야 한다바벨론은 영원한 거주지가 아니었다나그네가 잠시 머무는 처소와 같은 곳이다바벨론 영속주의나 안주성 믿음을 갖고서는 사명자가 될 수 없다다시 예루살렘의 희망과 회복과 귀환을 꿈꾸는 남은 자들이 사명자들이다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확실성을 믿는 자가 사명자임을 저자는 역설한다하나님의 셈하심과 하나님의 상 주심을 믿는 자이다근래 들어 이 땅에서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강조가 그 동안 교회가 강조하지 않은 한 부분임을 인식하고 공격적인 이 땅에서의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경향이 보인다고무적이기는 하지만 한 편 염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다하나님의 셈하심과 상 주심이라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가 변질될까봐건강한 하나님 나라의 신학적 균형이 이루어져 있는 자가 사명자임에 틀림이 없다저자는 사명자들이었다는 대표성을 갖고 있는 성경의 위대했던 믿음의 선배들을 소개한다인생에 있어서 실패했던 노아였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었던 노아절대적인 주군이신 하나님을 주어로 삼고 본인은 철저한 동사로 살았던 모세수없이 넘어지고 쓰러지고 자빠졌지만 예수님의 철저한 주권적인 은혜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베드로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요 신분이셨지만 철저히 자기를 비우고 비하하셔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셨던 주님겟세마네에서 목숨을 건 기도를 드렸건만 무응답을 응답이라는 은혜를 승화시키신 예수님이야 말로 최고의 사명자였다고 저자는 역설한다이렇게 살았던 믿음의 선지이요 사명자들은 복음이라는 하나님의 무기를 연결고리로 삼아 세상을 섬기며 승리했던 주인공들이었다책의 내내 연결고리로 살았던 사명자들의 눈물겨운 행전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사명자반은 이론서가 아니다실천신학적인 삶의 행전이다필자는 저자의 멘티이다그래서 그의 글 하나하나를 놓칠 수가 없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은 수도원이 아니다우리의 삶의 현장은 욕망의 논리가 인간을 압도하는 욕망의 바다 한 가운데이다그 욕망의 바다 한 가운데에서 욕망의 논리에 사로잡히지 않고 도리어 욕망의 논리를 거슬러 복음을 쫓는 사람만 자기 삶의 현장을 복음과 사명자 행전으로 연결시키는 사명자로 살아갈 수 있다.” (p.124)

만일 그대가 누군가를 추종하고 있다면 그 경우에도 그대는 그를 따르는 이유가 무엇이며 그를 따라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반드시 주님 안에서 자문해야 한다.”(p.128.)

주일 예배가 끝나고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우리는 주님을 과거형으로 잊어버린다. (중략한국 그리스도인들이 간증을 좋아하면서도 삶이 성숙해지지 않는 것은 결국 주님을 과거형으로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p.131)

영성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영성은 언제나 내 삶의 현장에서 나와 함께하고 계시는 주님에 대한 통찰력그 주님에 대하여 깨어 있음이다.” (p.132)

지금 그대의 가슴에 손을 얹고 정직하게 대답해 보라그대가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주님인가디베랴의 이것들인가?” (p.186)

신성해야 할 교회가 거짓이나 헛소문의 진원지기 되는 이유는 교회를 이루고 있는 교인들이 주님에 의해 은혜의 자리로 옮겨 오기만 했을 뿐 의지를 다해 주님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p.202)

하나님의 은혜는 멀리 있지 않다그대가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그대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이미 현재형으로 그대에게 임해 계신다. (중략그대가 완전하기에 하나님이 사명자로 쓰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을 쓰시기에 그대는 완전한 사명자가 될 수 있다.” (p.227)

오늘날 교회가 크고 작든 간에 교회가 교회답지 않은 것은 교회의 주어와 동사의 위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그리스도인이 주어가 된다면 자기 교만에 빠지든가 반대로 자기 절망에 침몰될 수 있다그 어느 쪽이건 사명자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 수 밖에 없다그러나 주어이신 하나님의 동사로 살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사명자행전은 엮어지기 마련이다사명자행전의 주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pp.272-273)

 

금년 2월에 이 책을 읽었다아마도 서평자는 2014년 우리 교회 지체들과 함께 사명자반에서 내가 받은 은혜로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세인교회는 담임목사 셀이 있다담임목사 셀은 자의든 타의든 우리 교회 사역의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지체들로 묶여 있다그들은 새신자반성숙자반을 섭렵했다이제 사명자반을 앞두고 있다모름지기 필자는 섬기는 교회에서 제일 먼저 사명자들이 남은 자들로 배출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이 땅에 교회가 무너져가고 있는 지금사명자들이 배출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어느 책에서 본 통계이다한국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들 중에 제일 많이 쓰러져 사역을 접는 달이 통계가 12월이라고 한다조직구조자리에 목숨을 걸고 있는 이 땅 조국교회를 보면 눈물이 흐른다서평자 역시 그 쓰레기 냄새나는 것을 경험하며 목사의 로브를 벗을까 심각히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다그래서 사명자반을 읽는 내내 가슴으로 울었다서평을 마치며 필자가 말한 책의 말미에 있는 사족을 하나 소개함으로 펜을 놓고자 한다.

사명자로 살아가는 자의 인생은 영원하다모든 인간의 육체는 반드시 그날을 맞고 콧숨이 멎음과 동시에 죽는다여기까지는 모든 인생이 동일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동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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