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성경 안에 있는 인물 중에 내가 참 닮고 싶어 하는 인물이 있으면 이유와 함께 말해보기. | 경배와 찬양 (WORSHOP)●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찬송가 455장) ● 오늘 우리 눈물로 (ccm)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제목: 왜 바울, 바울 하는가? ● 본문: 고린도전서 9:13-19 1)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신자들에 대하여 아쉬움과 유감을 느꼈던 이유를 구제헌금과 관련하여 말해보자. ① 빌립보 교회의 구제헌금: ② 고린도교회의 구제 헌금: |
2) 바울이 진짜로 받고 싶어 했던 사례비는 어떤 것이었는가? *고린도후서 12:14-15절과 테제와 연관하여 말해보자. ⓵ 12:14-15절- ⓶ 테제와 관련하여- |
3) 적용하기 ① 예수께서 나를 구원하신 것과 그 예수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② 나의 PRIORITY(우선순위)는 과연 무엇인가? 진솔하게 고백하자. ③ 당신에게 200 데나리온이 부족한가? 예수가 부족한가? | 사역하기 (WORK)1) 방학 중 셀 사역 지침 실천하기 - 휴가처에서 언제나 늘 항상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하고 보내기. - 방학 동안 영적으로 흐트러지지 않도록 개인 영성 생활에 최선을 다하기 (새벽기도, 성경읽기. 공 예배 참석하기 등등) - 여름행사 지원하기
2) 헌금 3) 광고 4) 폐회: 주기도 | 설교요약 (SUMMARY)7월 16일 주일 낮 예배 설교 (고린도전서 37번째 강해) 제목: 왜 바울, 바울 하는가? 본문: 고린도전서 9:13-19
바울 사도는 마땅히 받아야 하는 사도로서의 권위에 대한 대우를 포기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비열하고 치사한 고린도교회의 일부 신자들의 사도권 거부에 대한 억울함도 오직 복음을 위해서 참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갖고 있었던 사도권에 대한 조금 더 세밀하고 구체적인 변호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본문 13절). 문자적으로 이해한다면 성전에서 업으로 일하는 자(레위 지파)는 당연히 성전에서 나오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드렸던 종교세를 통하여 생활을 하는 것이 맞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이렇게 하도록 도와야 하고, 또 레위 지파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방법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침일 것입니다. 바울이 성경적인 내증을 든 근거는 민수기 18장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직무에 관한 말씀입니다. 민수기 18:1-7절에서 아론을 부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론의 아들들과 그의 계보들이 앞으로 성전에서 해야 할 직무들을 맡기시며 고지하시는 장면이 민수기 18:4-5절에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직의 직을 맡은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한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성직의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생활비는 이스라엘 다른 지파 공동체가 드리는 헌물로 충당하게 해 주신다는 선언이셨습니다. 바울이 인용한 것은 민수기 18:8-20절에 기록된 제물의 몫을 할당하여 주신다는 구절이고, 21절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주시겠다는 약속이셨습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사역을 맡은 자들이 성전 관리와 하나님의 성직 사역을 감당하는 데에 있어서 물질적인 곤란함이 없이 오로지 사역에만 집중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신경 쓰심이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14절에서 구약 성경에서 약속하신 이 하나님의 선언하심을 붙들고 담대히 고린도교회 신자들이 마땅히 본인의 사역을 위해 생활비를 비롯한 물질적인 지원을 해야 함의 타당성을 우격다짐이 아닌 성경적인 증언을 제시함으로 역설한 것입니다. 이렇게 다시 한 번 성경의 내증을 바울이 강조한 것은 고린도교회가 바울의 사역에 대하여 물질적으로 몰라라함에 대한 섭섭함의 반향이고, 그것은 곧 하나님의 뜻에 대한 거역함이라는 표현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또 다른 시각에서 볼 때 고린도교회는 당시 바울이 개척한 소아시아 교회 중에 가장 부유한 교회였기에 바울의 생활비를 책임지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도 바울을 섭섭하게 한 또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사정이 이 정도라면 바울은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향하여 비난함이 마땅해 보입니다. 그리고 나를 책임지라고 압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5절에 기록된 바울의 행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개역개정판) 이 본문을 개역판 성경과 비교하여 보면 중요한 표시가 삭제되어 있습니다. 차이점은 개역판 성경에는… (줄임표)가 들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세종대학교 김판임 교수는 이 줄임표에 대한 해석을 이렇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돈과 관련된 일을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언급할 때 대단히 자존심이 상했고, 급기야 그것은 ‘차라리 내가 죽을지언정 너희가 주는 것으로 먹고 살지 않겠다는 각오어린 발언이 나온 것 중에 앞부분(차라리 죽겠다.)만 하고 끊게 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고린도교회와 바울, p,144.) 바울이 이렇게 흥분한 까닭은 아마도 고린도교회 신자들의 치사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역자의 사역을 사역으로 보지 않고 교회의 유-불리를 따지며 바울의 선한 복음 증거의 사역을 돈으로 저울질하려는 악한 짓에 대한 분노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고린도교회만이 갖고 있었던 부자 교회의 질 나쁜 행태였습니다. 여기에 따른 성경적인 근거가 빌립소서 4:14-16절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소 아시아에 있는 교회 중에 구제헌금을 해 준 교회가 빌립보 교회가 유일하다는 보고입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 그래서 바울은 후에 고린도교회에게도 구제 사역을 독려하는 글인 고린도후서 8:1-3절에서 마게도냐 교회 중에 빌립보 교회의 충성스러운 사역을 소개합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빌립보 교회와 여타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그런데 바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구제헌금 사역의 협조를 구할 때 마음을 상하게 한 교회가 등장합니다. 바로 바울에게 이렇게 인색하게 했던 고린도 교회입니다. 고린도교회의 일부 신자들이 바울에게 헌금을 강요하여 우리들에게 짐을 지운다고 시비를 겁니다. 심지어 우리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바울이 속인 것이라고 압박합니다.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고린도후서 12:16절). 이 기막힌 일을 목도한 바울이 가슴을 칩니다. 그리고 얼마나 비통하면 고린도후서 12:14-1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이렇게 바울을 힘들게 한 교회가 부자 교회였던 고린도교회였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영적 상태가 이 모양이었기에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줄임표를 동원하면서 내가 너희들에게 돈을 받는 구걸을 하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절치부심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위대함은 이런 감정선에서 끊나지 않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본문 15절 하반절부터 18절). 이것이 바울이 소유한 영성입니다. 바울의 이 선언은 고린도교회의 신자들이 보인 소위 악한 행위들, 질 나쁜 행위들 때문에 속이 상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에 연연해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허물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정말로 소중한 것을 망각하게 하려는 사탄의 시도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자랑은 복음을 전하는 것, 그게 무슨 자랑이냐는 것입니다. 그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에 자랑거리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나에게 영적인 무너짐이라는 화가 임할 것이기에 당연히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동시에 복음을 전하는 결과, 궁극적으로 나는 상을 받게 될 것인데 그게 무슨 자랑거리가 되겠냐고 역설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정말로 자랑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본문 14-15절).
바울이 정말로 자랑하고 싶어 했던 사례비는 따로 있었습니다. 김판임 교수는 바울이 정말로 받고 싶어 했던 사례비를 19절을 주석하면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바울이 사도로서의 활동에 대한 삯을 생각했다면, 그것은 교인들이 주는 생활비가 아니라 그들 자신(고린도교회 신자들) 즉 그들의 그리스도인 됨이라” (김판임, p, 145)
★ 바울의 궁극적인 목회의 목적은 흔들림 없는 신자의 그리스도인 됨이었습니다.
바울이 진짜로 자랑하고 싶어 했던 것, 바울이 진짜로 받고 싶어 했던 사례비가 물질이 아니라 고린도교회 신자들의 그리스도인 됨이었다는 역설입니다. 열왕기하 5:13절을 보면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아람의 군대 장관인 나아만이 도단에 도착했는데 자기를 대우하지 않는다고 엘리사의 명령을 거절하고 아람으로 돌아가 요단강처럼 더러운 똥물에 몸을 담그느니 차라리 내 고향에 있는 아바나와 바르빌에 있는 더 깨끗한 물에 몸을 담그겠다고 혈기를 부릴 때 도단에 함께 왔던 종들이 목숨 걸고 나아만에게 직고한 말입니다. 종들의 말은 엘리사가 명령한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지금 목숨이 촌각에 달려 있기에 목숨을 얻게 위해서는 더 큰 일도 하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역설로 조금은 폼 나는 일을 시켰으면 분명히 하지 않았겠느냐는 반문입니다. 밑져야 본전인데 왜 그것을 모양새 때문에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느냐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 정말로 필요한 자들은 나아만이 아니라 종들입니다. 결국 나아만의 질병을 고침 받게 한 주인공들은 나아만 개인이 아니라 종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종들을 만드는 것을 갈망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 종들이 만들어지는 것, 이것이 바로 바울이 자기 스스로 본인이 누릴 수 있는 사도권의 권리를 포기한 이유였고, 그가 정말로 받고 싶어 했던 사례비였습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도 “You are my Lord, Jesus Christ.”라고 고백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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