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사이드(P. T. Forsythe)는 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십자가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대한 믿음을 제거해버리면 교회는 그만큼 생명력을 잃게 된다. 종국적으로 교회는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되며 그 호흡이 끊어지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다.”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에 대해서 감상적으로만 받아들이기에, 그 속에는 회개하는 심령이 없습니다. 언젠가 나는 병원 대기실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못 박힌 예수님의 모습이 새겨진 펜던트를 손에 쥐고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있던 어느 여성을 보았습니다. 나와 대화를 나누던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너무나 큰 고통을 당하셨어요. 정말 참혹해요.” 나는 그녀에게 예수님이 고난당하신 이유는 우리 죄 때문임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그래요, 하지만 왜 그렇게 심한 고초를 당하셨죠? 우리가 하는 사소한 거짓말과 몇 가지 잘못 때문에 그런 고통을 당하셨단 말이에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여성과 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녀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눈물을 흘렸지만 예수님을 그곳에 못 박게 한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무감각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십자가를 이해합니다. 아프리카의 한 오두막집에서 불이 나 순식간에 모든 것을 휩쓸어갔습니다. 그 안에 있던 온 가족이 목숨을 잃었는데, 단 한 아이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느 나그네가 목숨을 걸고 화염 속에 뛰어 들어가 그 아이를 구해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불꽃 가운데 있던 어린 소년을 안전하게 구출해내고는 곧 어둠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다음 날 그 소년의 거취를 결정하기 위해서 온 부족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 소년이 불 가운데서 살아남았기 때문에 어쩌면 그들은 그 아기가 특별한 아이임에 틀림없다는 미신적인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약삭빠른 어떤 사람은 자신이 그 아이를 양자 삼겠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어떤 부자는 부모로서 자신이 더 자격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토론이 계속되고 있을 때 한 낯선 젊은이가 모임 가운데로 똑바로 걸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그 아이에 대한 우선권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증거로써 전날 밤의 화재에서 화상을 입은 자기 손을 그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어젯밤 화재가 일어났을 때 그 아이를 구출한 사람이 데려가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상처 입으신 구세주 예수님은 바로 이와 같이 우리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안의 사랑이 흘러넘쳐서 사람의 물결로 품기를 소망합니다.. [07][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