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4일 수요일 성서 일과 묵상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111편, 신명기 3:23-29, 로마서 9:6-18 꽃물 (말씀 새기기) 신명기 3:25-27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마중물 (말씀 묵상) 공지영 작가의 산문 글을 읽고 있다. 요르단과 이스라엘 성지순례이기도 한 그녀의 글을 읽다보니 오늘 성서일과가 제시한 대목을 인용하며 느보산에 있는 모세 기념 성당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작가의 글감을 이렇게 소개했다. “너는 저리로 건너가지 못한다’는 말의 뜻을 달리 말하면 이집트에서 노예살이 하던 구세대는 거기에 들어가지 말라는 말이다.”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71쪽) 작가는 작가가 겪어온 사상적 기초에서 잘못된 삶을 반성하며 이 글을 썼다. 해서 작가의 글이 이해되었다. 하지만 목사로 산 나는 느낌이 조금 다르다. 모세는 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을까? 므리바의 집단적 범죄의 공범자였기에 그랬을까? 어떤 이는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기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확신하며 핏대를 세운 대화불능의 목사도 본 적이 있다. 설교자 혹은 목사는 해석자이니까 해석은 자유이지만, 너무 상식적이지 않은 해석은 유감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비판의 대상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이 모세를 너무 사랑하셨기에 그의 가나안 입성을 막았다고 믿는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이스라엘 신앙공동체가 모세를 어떻게 대우했을지 불을 보듯 뻔하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아닌, 보이는 모세를 숭상했을 가능성 100%다. 그렇게 될 경우, 모세는 재앙의 당사자가 된다. 하나님이 이 일을 근원적으로 봉쇄하신 것이 오늘 성서일과에 대한 내 해석이다. 하나님이 모세를 사랑하신 방법도 참 엄청난 방법이다. 두레박 (질문) 하나님께서 당신의 방법으로 당신의 사람들을 보호하고 계심을 믿고 있는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내 주군이신 하나님, 나도 모세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습니다. 이 거룩한 욕심을 끝까지 갖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하나님의 진의를 깨닫는 영적 민감성을 갖도록 최선을 다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세인 교회 공동체에 속한 젊은이들이 일어서게 하옵소서. 새벽 이슬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