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8일 월요일 성서 일과 묵상 묵상이 참 좋다. 힘이 된다.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69:1-36, 창세기 17:1-13, 로마서 4:1-12 꽃물 (말씀 새기기) 시편 69:4, 32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 (4) 곤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 (32) 마중물 (말씀 묵상) 2024년 1월 8일에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렇게 정의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오늘도 당하는 순교다. 80년 초에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때는 신학교 전성기였다. 입학 동기가 100여명에 육박했으니 이렇게 정의해도 괜찮을 것 같다. 기억으로 목사라는 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신랑감으로 3위에 오른 것을 본 적이 있으니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랴! 말 그대로 목사는 세속적 가치로 볼 땨 잘 나가던 직(職)이었다. 그렇게 괜찮던 목사라는 직과 맞물려 기독교 신앙이라는 필드의 영광은 이제 사라진지 오래고, 가장 천대받고, 멸시당하고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이제, 교회는 무슨 아름다운 일을 해도, 거들떠도 보지 않는 흑암의 터널를 지나고 있다. 여기까지 말하면, 옛날 그 잘 나가던 그때를 그리원한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여전히 속물 근성이 남아 있는 목사라고 비아냥도 당할 것 같다. 오늘 성서일과를 묵상하면서 분명한 어조로 말하고 싶은 게 있다. 그때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2024년 1월 8일이라는 Status Quo가 그리스도인이나 목사가 정말 견디기 어렵고 힘든 참담한 상황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오늘이라는 신앙생활의 현주소가 genuine christian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사고한다. 시인은 성서일과 전편에서 하나님으로 인해 기막히고 억울하고 참담한 고통을 당한다고 탄원한다. 이 탄원의 내용은 눈물 겹다. 하지만, 시편 69권의 압권은 시인이 그렇게 당하는 고통을 탄원하지만, 13절 이하에서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간구와 그 고통을 당하게 만든 주체인 주군께 드리는 찬양이다. 드라마틱한 반전의 감동을 나는 32절에서 만났다. “곤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 정말로 힘든 신앙의 터널에 있다. 하지만 나 역시 시인이 마음을 갖고 하나님께 진실한 성도로 살고 싶다. 순교적 영성으로 2024년, 또 걸어가련다. 해서 주님께 엎드린다.
두레박 (질문) 2024년 1월 8일, 하나님은 나와 세인교회를 어떻게 보고 계실까?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정말 힘든 터널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렇지만 시인의 영성을 갖고 잘 이기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하게 할지어다” 나도 선포하는 삶을 살아보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은총의 하나님, 이번 주간 항암 치료를 마친 지체의 CT 결과가 나옵니다. 작은 손을 모읍니다. 지체의 결과가 기쁨과 감사가 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