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지은이 | 사이토 다카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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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출판사 | 걷는 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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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15-08-13 11:1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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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근래에 학창 시절 때 소홀히 여겼던 고전들을 다시 들추어 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서재에는 아들의 국어와 논술 향상을 위해 사주었던 우리나라와 외국의 유명한 고전 전집이 있기 때문이다. 영문학을 전공하던 일반대학 시절, 1학년 담임으로 계셨던 영어 강독 교수님은 아주 강하게 공부를 시키셨다. 그 중에 하나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원전으로 강독시키시는 것이었다. 당시 학점을 따기 위해서 읽었던 햄릿, 맥베드, 리어왕, 오셀로와 같은 작품들은 어휘 공부와 독해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의 상황을 되새겨보면 셰익스피어의 세계 이해와 작품성 등을 별로 중요하게 인식하거나 관심을 갖고 공부하지 않은 탓에 어찌 보면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들 정도로 글 내용에 대하여는 빈약했다. 해서 너무 아쉬워 다시 책을 든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4대 비극을 접하면서 20대 읽었던 셰익스피어와 50대에 읽는 셰익스피어는 다른 사람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책은 애인처럼 혹은 평생의 반려자처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사이토 다카시의 말이 적확한 것처럼 보인다. 사이토 다카시는 현재 메이지 대학교 문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본 지식인들에게 독서하기 재 부흥을 역설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지난 이틀 동안 서평자는 그의 책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와 “독서력” 이라는 두 권의 책을 만났다. 읽기가 너무 쉬운 문어체로 쓴 글이기에 빠른 속도로 그의 글을 읽을 수 있는 장점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그의 글 매력은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의 질문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는 도전을 준다는 점이다. 저자는 전자의 책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갈문한다.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모습으로 살고 싶다면, 단단한 내공을 쌓아 삶의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열심히 산다고 해도 우리가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은 한정되어 있어서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생각과 행동에서 벗어나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한 사람이 깊은 내공을 쌓는 데 필요한 재료의 질과 양을 더하는 행위이다.” 나는 저자의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책 읽기의 가장 큰 매력은 나도 모르게 삶의 내공이 독서를 통해 차곡차곡 채워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책 읽기를 통해서 죽었던 자아를 찾고 새 생명의 삶을 살았던 자로 오프라 윈프리를 말하고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사장을 말한다. 그리고 저자 자신도 그 혜택을 받은 자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그는 책의 지천에서 강조하는 대목이 있다. “독서는 지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라고. 저자는 책 읽기를 거부하는 자들의 원인 분석을 책을 읽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그 한 복판에 텔레비전 문화와 인터넷 문화를 자리매김을 했다고 직시한다. 그러나 이들에게서 얻어지는 정보가 해롭다는 것은 흐르기에 스쳐 지나간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확언한다.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엄청난 양의 정보를 얻을 수 있기에 진지함이나 집중력을 잃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이 글을 읽자니 김영봉 목사가 ‘사귐의 기도’에서 말한 휴대폰 정의가 문득 스친다. “태블릿 pc, 스마트폰은 언제 어디서나 사이버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도구이다. 그러나 그 작은 모니터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통제를 당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들은 문명의 이기(利器)가 아니라 해기(害器)라고 해야 할 것이다.” 독서는 스쳐지나가는 정보가 아니다. 그와는 정 반대로 진지함과 집중력을 읽는 이에게 제공해 줌으로 해서 의식적인 공부를 하게 하는 것이며 눈으로 글자를 좇고, 머릿속으로 의미를 곱씹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지식이 체화되며 생각하는 힘과 응용력을 함께 길러준다. 해서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공부를 위한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한 것이라는 저자의 갈파에 나 또한 지지를 보낸다. 서평자는 저자의 글을 통해 또 하나 중요한 도전을 받았던 부분이 있다. 독서 목표의 대상을 주관화시켰던 고집을 객관화시켜 주었다는 점이었다. 내 생각과 비슷한 책만을 골라 읽지 말라는 권고 말이다. 내 생각과 일치하는 책만 읽게 되면 좁고 편협한 사상과 체계를 갖게 되어 잘못하면 나 스스로의 가치를 편협한 세계로 이끌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해 준다. 오히려 나와 정반대되는 글도 적절하게 접하면서 정반대 지점에 있는 자들의 생각들을 살펴봄으로서 지적 균형감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어떤 생각이든 절대적인 것은 없기에 가장 근접한 진리를 지향하는 것은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아주 매력적인 면인 것임에 틀림이 없다. 중진 교회에서 담임 사역을 할 때 필요 없는 모임과 가기 싫은 모임을 어쩔 수 없이 가야했던 일들이 다반사였다. 그것이 맡고 있는 자리 몫이기 때문이라고 자위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로 힘든 일이었고 자기 발전에는 독약을 마시는 일과 같은 것이었다. 개척 이후, 이 일들이 없어졌다. 남자의 나이가 지천명에 이르면 가장 증대되는 것이 명예욕과 권력욕이라고 한다. 일견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면도 있음을 서평자도 안다. 그러나 그것은 성향의 문제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서평자의 경우, 가고 싶지 않은 모임, 개인적 성장과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시간적인 소모함을 요구하는 일반적인 관례들과 태생적으로 친하지 않았기에 도리어 교회를 개척한 뒤에 주어진 가장 큰 유익함과 이점은 독서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소중한 시간의 회복이기도 했다.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꾸준히 책을 읽어라” 이렇게 말한 저자는 또 이렇게 부연한다. “독서가 인생을 변화시켰으며 그래서 후회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자들의 공통점은 꾸준히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름 그의 글에 박수와 지지를 보낸다. 그는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지금 서평을 쓰고 있는 본 책과 웅진 지식 하우스에서 번역 출간한 ‘독서력(2015년 쇄)’에서 공히 기막힌 통찰이 담긴 한 줄을 남기고 있다. 해서 서평자는 이 두 책의 독서 소회를 남긴 글에 똑같은 그의 사족을 남겨 놓았다. “책은 그 내용에 비해 값이 나무나 저렴하다.” 레토릭이 강한 그의 이 촌철살인이 가슴을 떨리게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 아내를 선택한 결과 가장 위대한 결정이었다고 자칭 감탄하는 것 중에 하나, 책을 구입하는 부분에 있어서 단 한 번도 NO를 한 적이 없다는 것도 내 인생의 최고의 복이 아닌가 싶다. 나는 오늘도 그래서 ON,OFF-LINE 상의 서점들을 들락날락하는 기쁨을 누리며 산다. 사이토 다카시, 나도 뼛속까지 한국인이라 일본 사람들에 대한 감정이 별로 호의적이지는 않지만 우찌무라 간조, 엔도 슈사쿠와 더불어 앞으로 더 친해지고 싶은 친구 목록에 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