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내가 본 사람 중에 참 인격적이라고 평가한 사람과 반대로 비인격적이라고 인식된 사람 나누어 보기. | 경배와 찬양 (WORSHOP)●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찬송가 452장) ●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복음성가)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제목 : 격(格) ● 본문 : 고린도전서 12:8-11 1) 본문 8-10절에 기록된 은사 앞에 지시 형용사와 지시 대명사가 첨가되어 있는 이유를 말해보자. ※ 설교 테마 1을 중심으로 설명해 보자. 요한복음 21장에 기록된 베드로와 요한의 일화를 예로 은사에 대입해 보자. |
2) 본문 8-10절에 기록된 은사 앞에 지시 형용사와 지시 대명사가 첨가되어 있는 이유를 말해보자. ※ 설교 테마 2를 중심으로 설명해 보자. 예수님의 육적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의 예를 근거로 은사에 대입해 보자. |
3) 적용하기 ⓵ 나는 은사를 인격적으로 활용하고 있는가? ⓶ 나는 나에게 주신 은사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가? ⓷ 우리 교회가 성령 하나님께서 인격적인 선물로 준 은사를 잘 활용하는 교회가 되도록 합심하여 기도하자. | 사역하기 (WORK)● 주간 중보 제목
1) 환우들을 위하여 2) 대학 진학을 앞 둔 수험생들을 위하여 (11월 16일) 3) 11월 목회를 위해 4) 차량 구입을 위해 5) 이 땅의 교회와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하여 6) 담임목사의 사역을 위하여
● 셀 사역하기
1) 해피엔딩 연속 기도회에 책임감은 물론 기쁨으로 감당하기 위하여 독려하기 2) 추수감사주일에 영혼을 하나님께 드려보기(11월 26일) 3) 차량 연보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당하도록 권면하기 11월 첫 주와 둘째 주에 진행
| 설교요약 (SUMMARY)11월 5일 주일 낮 예배 설교 (고린도전서 50번째 강해) 제목: 격(格) 본문: 고린도전서 12:8-11
한자 단어 중에 격(格)이라는 단어는 ‘바로잡는다.’ 는 뜻입니다. ‘인격’ 을 한자 단어 풀이에 의지하여 설명한다면 “인격이란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어야 하는 바름 혹은 똑바름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인간의 가치는 그 사람의 소유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격에 있다.”고 말한 것이 말입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인격적인 사람이 되고 그들보다 훨씬 수준 높은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까? 고린도전서 12장은 은사장이라고 정의할 만큼 성경에 기록된 여러 글들 중에 가장 은사에 대한 세밀한 부분을 담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읽은 본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령 하나님의 은혜로 받게 된 9개의 은사가 선명하게 소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을 끄는 대목입니다. 본문에 소개된 9가지의 은사는 ⓵ 지혜의 말씀 ⓶ 지식의 말씀 ⓷ 믿음 ⓸ 신유 ⓹ 능력 행함 ⓺ 예언함 ⓻ 영들 분별함 ⓼ 방언 말함 ⓽ 방언통역 등입니다. 이 은사에 대한 분명한 성경적인 이해는 물론 그 결과물로 얻어진 이해를 토대로 가장 신학적이고 성서적인 은사 이해에 도전함으로서 혹시 우리 교회에도 음으로 양으로 곡해되거나 오해하고 있는 잘못된 은사 이해에 대해 척결하는 기회를 삼고자 합니다. 그러나 먼저 바울이 9가지 은사들을 소개하면서 붙인 수식어에 대한 해석을 살펴야겠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본문 8-10절). 바울이 이 9가지의 은사를 소개하면서 붙인 수식어는 지시 대명사와 지시 형용사인 ‘어떤 사람에게는(호스, 알로스)’, ‘다른 사람에게는(헤테로스)’이라는 수식어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단어들이 9가지의 은사에 빠짐없이 붙어 있다는 점입니다. 바울이 각기 은사들에게 동일하게 붙인 수식어는 두 가지의 신학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1) 은사는 결코 비교 대상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 라는 지체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지혜의 말씀이 필요하다고 간주하셨다. 그래서 그에게 지혜의 은사를 주셨다. Ⓑ 라는 지체에게는 무엇보다도 믿음이라는 은사가 필요하여 이 은사를 주셨다. Ⓒ 라는 지체에게는 방언의 은사를 주면 그가 훨씬 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감할 수 있겠다 싶어 방언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각 자에게 성령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고 그것을 잘 사용하면 성령의 도구로 하나님 앞에서 선용할 수 있는 능력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사는 결코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성령님이 교회의 질서와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당신의 백성들에게 허락하시는 은사는 각기 그 은사를 받은 자들에게 최대 공약수를 뽑아내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지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뒤에 갈릴리 디베랴로 낙향하여 옛 직업으로 돌아가 고기를 잡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베드로에게 찾아가셔서 두 번째의 미션을 주시면서 그를 용서하시고 품어주셨습니다. 그런 뒤에 베드로에게 앞으로 그가 경험하게 될 사역의 내용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메시지를 전해 주셨습니다. 그 내용은 네가 젊어서는 네 스스로 원하는 데로 행동하고 멋대로 살았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못할 것임을 예고한 것입니다(요 21:18-19). 많은 신약학자들은 이 대목을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를 당하게 될 것에 대한 고지라고 해석하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이 고지를 들은 베드로는 순간, 기분이 상했습니다. 해서 그가 주님에게 딴지를 건 것이 그 다음 구절에 등장합니다.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요 21:20-21) 항상 공생애 중에도 보이지 않는 경쟁관계를 유지하던 요한을 지명하면서 베드로가 이렇게 말 한 것입니다. “주님, 나는 그렇게 죽을 건데 그렇다면 이 요한은 어떻게 죽을 것입니까?” 항의조가 섞인 비교의식입니다. 이 말을 들은 주님은 베드로에게 아주 단호하게 쐐기를 박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요 21:22). 신앙생활에 있어서 비교의식은 어떤 면에서 볼 때 암적 요소입니다. 은사는 비교의 대상이 아닙니다. 은사는 개개인에게 성령 하나님이 허락하신 독특하고 유일한 사역의 도구입니다.
2) 인격적 성령 하나님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은사에 대한 적절성의 시비는 내 몫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령님이 나에게 그 어떤 은사를 주셨다면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인격적인 선택으로 그 은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내가 가지고 싶은 은사의 목록이 있다면 그건 순전히 내 의지입니다. 은사는 그렇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는 성령 하나님께서 가장 완벽하게 나를 판단하시고 나를 위해 주시는 인격적인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성령 하나님의 그 선택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 선택을 존중한다는 말은 내가 받은바 은사를 인격적으로 사용하고 은사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 이렇게 성령 하나님의 결정에 인격적으로 반응하고 존중하여 그 은사에 순종하며 살았던 한 사람을 소개하라면 주저 없이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입니다. 한 남자와 정혼하여 결혼을 앞두고 있었던 한 순결했던 처녀 마리아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성령 하나님의 고지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리아 개인에게는 무시무시한 아픔과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담보한 선언의 고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순종합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약혼자가 임신을 하게 되었다는 기막힌 고지였습니다. 그런데 자기 약혼녀의 임신은 간음을 통한 임신이 아니라 성령을 통한 임신이라는 고지였습니다. 우리는 수태고지라는 주님의 말씀에 등장하는 두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일하시는 그 일함을 인격적으로 순응한 두 사람의 대단한 믿음을 발견합니다. 먼저 요셉의 인격적 선택은 마태복음 1:24-25절입니다.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마리아의 인격적 선택은 누가복음 1:37-38절입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신앙이란 성령 하나님의 선택이 내 선택보다 완벽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마치 마리아와 요셉처럼 말입니다. 왜 하나님, 나에게 이런 은사를 주셨지요? 라고 대들지 않는 것입니다. 적어도 성령 하나님이 나에게 접근하셔서 일하신 그 사역이 인격적인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로이드 니브 박사가 쓴 ‘구약의 성령론’이라는 책에서 그는 모세 오경에 나타난 하나임의 영(루하흐)을 위시하여 계속해서 구약 전반에 흐르는 성령 사상의 특징이 일관성이 있게 기록되었다는 흥미진진한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구약에서 활동하신 성령 하나님의 아주 뚜렷한 특징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위격(hypostasis)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하나님을 향한 그의 태도를 결정하게 된다. 성령에 대한 불순종은 성령을 매우 슬프게 만들고, 성령이 떠나가게 만든다. 그 결과 신성한 삶의 흐름이 중단된다.”(p,233) 그렇다면 성령 하나님은 인간의 태도에 따라 당신의 사역을 결정하는 가장 인격적인 영이시라는 결론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오늘 우리는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에 대한 태도를 겸비할 교훈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의 위격을 존중하고 그 분의 사역을 인격적으로 받아들여 은사라는 선물을 비교하는 불신앙을 저지르지 말아야 하며, 동시에 성령 하나님이 나를 위해 택하신 선택이 언제나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분의 일하심을 존중해 순종하는 삶을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인은 인격적이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법이 인격적인 일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은사를 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더불어 그 성령의 은사를 교회의 질서와 유익을 위하여 인격적으로 사용하시는 격조 높은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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