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내 개인의 영적 개혁의 내용 두 세 가지 말해보기. | 경배와 찬양 (WORSHOP)●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찬송가 585장) ● 어느 민족 누구게나 (찬송가 586장)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제목: 개혁, 개혁 하지 말라. ● 본문: 역대하 15:8-15 1) 아사의 제 1차 종교개혁과 제 2차 종교개혁의 성격을 분석해 보자. ⓵ 제 1차 종교개혁(대하 14:3-5): ⓶ 제 2차 종교개혁(대하 15:11-13): ⓷ 종교개혁의 결과로 얻어진 복(역대하 14:1, 19절 참고): |
2) 아사의 종교개혁을 오늘의 언어로 표현해 보자. ⓵ 테마 1: ⓶ 테마 2: ⓷ ⓵⓶를 연계하여 교훈을 말해보자. |
3) 적용하기 ⓵ 나는 예배를 드리는 자인가? 즐기는 자인가? ⓶ 나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보고, 만지고 있는가? ⓷ 나에게 진정한 영적인 예배 개혁이 있도록 합심하여 기도하자. | 사역하기 (WORK)● 셀 사역하기
① 가을 사역에 지체들을 독려하여 최선을 다해 참석하도록 독려하기 (스케줄 조정) ② 식탁공동체 기쁨으로 감당하도록 최선을 다하기 ③ 차량 연보를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당하도록 권면하기(11월 첫 주와 둘째 주에 진행) ④ 우리 교회 추수감사주일: 11월 26일 (넷 째주) | 설교요약 (SUMMARY)10월 29일 주일 낮 예배 설교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주일 설교) 제목: 개혁, 개혁 하지 말라 본문: 역대하 15:8-15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주일에 어떤 한 사람에게 집중하고 조명하려는 위험성을 배제하고 정말로 향후 500주년 종교개혁주일을 향하여 나아가는 우리의 영적인 몸가짐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봅시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역사상 4번에 걸쳐 이루어진 종교개혁 중에 그 첫 번째의 개혁 운동이었던 아사의 종교개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사의 종교개혁은 역대하 14장부터 진행됩니다. 14장의 글은 아사의 제 1차 종교개혁을 소개하고 있고 본문은 제 2차 종교개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남 유다는 솔로몬 사후 그의 아들인 르호보암을 왕으로 추대한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기초로 세워진 국가공동체입니다. 솔로몬 왕 치세 말년에 하나님의 통치와는 거리가 멀어진 이스라엘은 두 나라로 쪼개지는 비운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남 유다는 솔로몬의 부하였던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10개의 지파가 동맹하여 이룬 북쪽 이스라엘보다 상대적으로 국력이 극도로 약해져 있었기에 주변 국가들로부터 심각한 침략의 위기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솔로몬 시대부터 전 지역에 만연되어 있는 우상숭배의 잔재들은 남 유다의 치명적인 영적 아킬레스건이었습니다. 솔로몬 사후에 뒤를 이어 왕에 등극한 아비야는 이런 나라의 정황들을 올바르게 통치하지 못하고 3년이라는 짧은 재위 기간을 보낸 뒤 사망하자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아사가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아사의 종교개혁은 앞으로의 이스라엘 역사에서 계속 이어질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의 종교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아주 중요한 역사 기록입니다. 아사의 종교개혁의 핵심적 팩트는 조국을 두 나라로 양분시키는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한 근거이자 동시에 유다를 가장 약한 국가공동체로 전락시킨 원흉이었던 우상의 척결이었습니다. 제 1차 종교개혁이라고 볼 수 있는 역대하 14장에는 주로 외형적 우상들을 제거하는 쪽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남 유다인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기업으로 얻은 전 유다 땅에 세워져 있는 각종 우상의 흔적들을 제거하는 개혁을 진행한 것이 14장에 기록된 1차 아사의 종교개혁 모드였습니다.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역대하 14:3-5절). 하나님은 이런 아사의 노력에 주변 국가들의 서슬이 시퍼런 침략의 분위기 속에서도 10년 동안 태평성대가 지속되었음이 역사가에 의해 보고되고 있습니다(14:1절). 이에 반해 오늘 본문 15장은 아사의 제 2차 종교개혁을 알려주고 있는데 두 번째의 개혁 운동은 내부적, 영적 개혁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5장의 시작은 당시 아사에게 영적인 멘토의 역할을 감당한 오뎃의 아들 예언자 아사랴에게 임한 신탁을 소개하면서 진행됩니다. 아사랴에게 임한 신탁의 내용은 역대하 15:2절입니다. “그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어떤 의미로 보면 아브라함, 모세, 다윗의 계보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전 역사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언약 공동체로 인정하시고 맺은 계약의 본질적인 내용이 바로 아사랴를 통해 다시 재확인한 내용입니다. 너희가 나를 찾으면 나도 너희를 만나겠지만 너희가 나를 버리면 나도 너희를 버릴 것이라는 이 엄연한 계약에서 하나님의 분명한 의지가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명한 하나님의 의지를 알고 살아가야 하는 아사의 통치 이전의 유다의 영적 상황은 바닥 그 자체였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참 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은 지가 오래 되었으나”(대하 15:3). 아사의 통치 기간 이전에 유다는 참 신(하나님), 가르치는 제사장, 율법이 사라진지 오래였습니다. 아사랴의 선포는 탄식이었습니다. 영적인 참담함의 절규였습니다. 이 신탁을 받은 아사의 반응이 본문 8절입니다. “아사가 이 말 곧 선지자 오뎃의 예언을 듣고 마음을 강하게 하여 가증한 물건들을 유다와 베냐민 온 땅에서 없애고 또 에브라임 산지에서 빼앗은 성읍들에서도 없애고 또 여호와의 낭실 앞에 있는 여호와의 제단을 재건하고” 아사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가증한 물건들을 빼앗아 일소했습니다. 심지어 이 감격적인 우상 청소에는 열외가 없었음을 역사가는 분명히 밝힙니다. 아사의 모친인 마아가가 습관으로 갖고 있었던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마저도 빼앗아 가루로 만들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라 소각했음은 물론 국가적 개혁 운동의 반대편에 있었던 어머니를 폐위시키는 아픔도 감수했음을 역대하 15:16절은 숨김없이 보고합니다. 이제 이렇게 내부적, 심정적 우상 숭배를 단호하게 개혁한 아사의 제 2의 종교개혁이라는 엄청난 역사가 의미하는 교훈을 찾아내야 합니다.
1) 예배의 자리로 옮겨 타는 회복입니다. 14장에 보면 아사는 에티오피아의 세라가 이끄는 백만 대군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중과부적이었지만 드라마틱한 승리를 거두었음을 보고하고 있습니다(역대하 14:9-15). 이 전투에서 승리한 아사는 획득하고 노획한 탈취물들 중에 소 칠백 마리와 양 칠천 마리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본문11절). 에티오피아 세라의 군대는 백만 대군이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그들은 철 병거(오늘날로 표현하면 기갑부대에 무장된 탱크) 300대로 완전무장한 최 정예화 부대였습니다. 이 말은 세속적 가치로 표현한다면 넘을 수 없는 난공불락의 바벨리즘의 극치였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대치할 수 있는 최고의 하나님과 같은 가치였다는 말입니다. 결코 이길 수 없는 이 싸움에서 아사의 군대가 승리했습니다(대하 14:11). 아사의 이 신앙이 이길 수 없는 전투를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습니다. 도무지 상대하기 어려운 21세기의 세속적 가치의 최고봉을 주님의 가치로 승리한 하나님의 사람이 그 세속의 가치를 제물 삼아 하나님께 승리의 보고를 드린 사건의 현대적 정의입니다. 아사 시대 전까지 단절되었던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회복되었다는 교훈입니다. “그 날에 노략하여 온 물건 중에서 소 칠백 마리와 양 칠천 마리로 여호와께 제사를 지내고”(대하 15:11). ‘개혁’이라는 표현의 ‘REFORMATIOM’ 은 직역하자면 ‘흐트러진 어떤 형태의 형상을 재조각하여 원래의 형태로 맞추는 행위’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혁, 개혁하는 모토의 진의와 실천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이 원하시는 원래의 의지로 다시 형태를 갖추는 작업이 바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다시 꿰맞추어야 하는 영적 REFORMATION 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오늘 2017년의 진정한 ‘REFOMATION’은 세속적 가치를 끊임없이 추구하게 만드는 세속을 향한 예배를 일소하고 그 가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진리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회복이야말로 세인 공동체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2) 예배 자리로 옮겨 탄 뒤에 잊어버린 하나님을 그 예배에서 다시 찾는 원상회복입니다. 본문 12-15절에 걸쳐 무려 3번이나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문구가 있습니다(12, 13, 15절). ‘찾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다라쉬’는 특히 히브리 공동체에서 ‘예배하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때문에 예배를 정의한다면 ‘여호와를 찾는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찾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즐기는 자들의 특징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배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의 헛헛한 토로들이 난무합니다. 지금 내가 드리는 예배에서 하나님을 찾을 때 가슴을 강타하는 천둥과 번개가 치는 강력한 성령의 은혜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습니까? 이 시간 드려지고 있는 설교와 예배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보고 만지고 듣고 체휼하고 있습니까? 여호수아 5:12절 말씀을 보면 만나가 내린 기간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까지입니다. 끝없이 만나가 내린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 그 땅의 소산을 먹은 날부터는 만나가 그쳤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성령을 보내심으로 주실 수 있는 은혜를 맛보게 하셨습니다. 문제는 보내신 성령님의 민감한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이제 내가 찾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 은혜가 지속되는 것이 예배이고 예배의 회복은 여호와를 찾는 투쟁이자 지난한 고투의 과정입니다. 예배조차 3인칭 복수화를 시키고 철저히 주관화를 시키는 자들에게 종교개혁의 슬로건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개혁, 개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로 돌아와 REFORMATION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예배의 자리로의 회복, 그리고 그 예배를 즐기는 것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회복이야 말로 종교개혁 500주년에 오늘 우리 세인 교회 공동체에 주시는 하나님의 긴박한 메시지입니다. 예배를 1인칭 단수화 및 철저한 객관화된 자아의 모습으로 드립시다. 예배가 끝나면 모든 성도들이 피와 땀과 눈물이라는 하나님의 흔적으로 일주일 동안 삶에 현장에서 밑줄 그으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군대인 마하나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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