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소 천을 걸으며 “보행은 공간의 표현이자 자유의 표현이다. 누군가가 어디를 걸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앎이 내 상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리베카 솔닛, “걷기의 인문학”, 반비,p,432.) 여류 예술 평론가로 잘 알려진 솔닛은 그래서 보행을 예술이라고까지 극찬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솔닛은 ‘세상으로부터 후퇴를 가능하게 하는 기계가 러닝머신에 대해 혹평했는데’(p,423) 펜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고 겨우내 날씨를 핑계 대며 후퇴하게 하는 기계에 의존하던 것을 박찼고 백신도 1차 접종도 마쳤기에, 걷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던 한 달 전 즈음부터 다시 만보 걷기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금상첨화로 교회에서 내려다보이는 하소 천이 얼마 전에 둘레 길로 정비되어 걷기가 너무 좋은 환경으로 바뀌어 아내와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은 보행 예술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의림지에서부터 발원되어 흘러내리는 물이 하천을 이루어 하소 천을 이루고 있는데 급속한 도시 개발로 오래 전, 아이들을 멱을 감고, 아낙들은 빨래까지 했던 깨끗한 물이 오염되어 버려졌다는 노 권사님의 전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유감스러웠던 하소 천이 이번에 정비 사업을 통해 시민들이 걷기에 너무 좋은 보행 천으로 탈바꿈되어 시민의 한 사람으로 관계자들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인공적인 것이라 아쉽기는 하지만 물 정화를 위해 깔아놓은 인공이끼들이 달갑지 않은 냄새의 원천을 제거해주고 있고, 지금은 어리지만 둘레 길 양 방향에 심어놓은 수목들이 자라나면 너무 쾌적한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여겨져 기대가 되기까지 합니다. 제천이라는 도시가 대도시처럼 동서남북 콘크리트 촌을 이루고 있는 회색도시와 같은 유령도시가 아니라 주변에 산이 가까이 보이는 자연친화적인 도시라서 도시 복판을 흐르고 있는 하천이지만 왠지 고즈넉함까지 선물하는 감동을 주고 있어 하소 천 근처에서 살고 있는 나로서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직은 부분 공사가 진행 중이라 제천의 자랑인 의림지까지 복원되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공사가 완공되면 왕복 11km를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보여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좋은 코스워크가 될 것으로 또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 (걷는 인간)라는 학술 명으로 조명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내가 걷는 이유는 사유함 때문입니다. 걷고 또 걸으면 떠오르는 감동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감동의 압권은 언제나 내가 참 작은 존재라는 각성입니다. 해서 저는 아브라함 조수아 헤셀이 갈파했던 이 문장에 100% 아멘 합니다. “인간됨은 존재의 인간화요, 의미 없이 주어진 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변질시킴이다.” (아브라함 조수아 헤셀, “누가 사람이냐?”, 한국기독교연구소, p,124.) 조금은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이니까, 고백해 봅니다. 나는 걸으면서 무심해서 무감각하게 지나칠 뻔 했던 의미 없다고 여겼던 것들을 의미 있는 것들로 재발견하는 소중한 기회로 삼습니다. 그래서 제게 걷기는 곧 신앙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