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시간을 내서 서고를 정리하니 버릴 책들이 보여 과감하게 정리했습니다. 약 2년 한 번 정도 행하는 정기 행사입니다. 이번에 버릴 책들을 선별해 보니 약 100여권 정도였습니다. 정리 대상은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게 주어진 책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교회 소개를 위하여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무작위로 보내준 설교집, 교회 몇 년 편람, 성서 신학적인 바탕이 전혀 없는 성경공부 책자, 비 신학적 은사 관련 도서 등등을 이번에 정리했습니다. 단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들이 2년 만에 100여 권 정도가 되는 것을 보고 얼마나 우리가 쓸데없는 데에 정신줄을 놓고 있는지, 또한 무분별한 惡書들이 얼마나 많이 돌아다니는지 새삼 확인하며 놀랐습니다. 지금 서재에 약 3,000권 정도의 장서가 있습니다. 제 서고는 나름의 도서 진열의 법칙이 있습니다. 업무용 책상 위에는 지난 30년 동안 보았던 성경들이 꽂혀 있습니다. 성경의 겉표지를 보다 보니 색 바랜 성경들이 얼마나 많은지 야속하게도 세월이 참 빠르게 흘렀다는 생각에 멈칫하곤 합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언제나 제게 최고의 책입니다. 책상을 중심으로 가장 가까운 책장, 그리고 눈으로 볼 때 가시권 안에 들어오는 책장에 당연히 제가 빈번히 설교에 인용하고 준비를 위해 다시 들쳐보는 책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정면 서고에 마틴 부버의 책들이 있습니다. 그 옆에는 본회퍼와 CS 루이스, 엘리위젤의 책들이 나란히 열거되어 있습니다. 제게 목회자로 살아가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준 선배들입니다. 그 옆으로 김기석, 김영봉, 이재철 목사의 도서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순간순간 목사의 로브를 벗어야 하겠다고 결심 아닌 결기를 할 때마다 저를 타격해서 제가 목사로 지금까지 서게 해 준 참 고마운 목사 선배들입니다. 그 옆으로는 매년 제가 독서 여행을 떠나면서 랭킹 1-5위 안에 선정했던 책들이 모아져 있습니다. 참고하시라고 몇 권을 소개합니다. 랭던 킬키의 ‘산둥수용소’, 리 호이나키의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파커 파머의 ‘가르칠 수 있는 용기’,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 데이빗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 스탠리 존스의 ‘순례자의 노래’,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마이클 호튼의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모략’, 한강의 ‘소년이 온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등 외에 너무 많은 보물 같은 책들이 언제나 고개를 들면 보이는 서고에 꽂혀 있습니다. 언젠가 아내가 제게 투정을 부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결혼 대상자를 잘못 골랐다고, 책 하고 결혼해야 딱 맞는 사람이라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아내하고 함께 한 시간보다는 책하고 지낸 시간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으니 아내의 핀잔을 들을 만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요 근래, 제 마음이 더 급해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시력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매년 책 읽기가 많이 부담스럽게 시력의 저하가 느껴지고 있어 그렇습니다. 아직은 책과 씨름하는 것이 웬만하기에 이 여행을 더 분발하며 계속할 예정입니다. 불연 듯 이런 생각이 들어 불안해 졌습니다. 지금까지 졸저지만 3권의 책을 출간했는데, 혹자들이 내 책을 2년에 한 번 읽지도 않고 폐기처분한 대상으로 만들면 어떻게 하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는 책을 출간하지 말든지, 아니면 폐기처분되지 않을 질 좋은 책을 펴내든지. 아무래도 후자는 자신 없이 전자를 선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책을 정리하고 나니 몇 개월은 새 책장을 구비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재론의 여지없이 독서는 내 인생의 최고의 동반자이자, 하나님이 주신 가장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