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3일 화요일 성서 일과 묵상 가말리엘이 부럽다.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46편, 창세기 45:25-46:7, 사도행전 5:33-42 꽃물 (말씀 새기기) 사도행전 5:34-35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마중물 (말씀 묵상) 불교의 승려를 둘 나눈다. 불교의 영성을 살리며 부처의 가르침에 용맹정진하는 승려를 가리켜 이판승이라 하고, 불교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위해 불교의 영성과는 거리가 먼 불교 정치에 목을 건 자들을 일러 사판승이라 한다. 나는 아주 가끔 불교가 갖고 있는 뿌리 깊은 영성을 만날 때마다 부러워한다. 하안거, 동안거를 보내며 고독한 승려의 길을 가는 이판승들, 작은 암자에서 무소유를 실천하며 그들이 믿는 믿음의 대상인 부처의 삶을 닮아가는 이판승들을 보면 종교를 뛰어넘어 참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타종교의 성직자지만 고개를 숙일 때가 있다. 가말리엘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시기 즉 예수 그리스도와 동시대를 살았던 유대교 지도자였다. 그는 예수께서 지독하리라만큼 독설을 퍼부었던 위선적 종교의 한 복판에 있던 지도자였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비판 선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였다. 하지만 오늘 성서일과 안에 있는 가말리엘을 보면서 유대교만의 끈질긴 그 무언가의 권위가 있었음을 느끼게 된다. 베드로와 요한 및 여타 제자들이 예수 사후에 전하는 예수의 도 때문에 또 다시 유대교적인 위상이 흔들린다. 이것을 본 유대교인들이 제자들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을 때 바울이 수학했던 유대교 학파의 수장인 가말리엘이 제자들을 죽이려는 분위기를 제지하고 가라앉힌다. 그리고 그는 일설했다. 제자들이 전하는 예수의 도가 사람이 만든 도라면 자연적으로 소멸한 것이지만, 만에 하나 하나님께서 이 도의 주관자이시면 제자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이 하나님을 도리어 대적하는 일이 될 터이니 이 일을 행하지 말라는 권위적 가르침을 준다. 성서일과는 이렇게 보고한다.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행 5:40) 유대 공동체는 가말리엘의 권고에 순종했다. 유대인 무리들은 사도들이 눈엣가시였기에 반드시 없애야 하는 대적이었지만, 그들이 존경하는 어른 가말리엘의 한 마디의 행동을 멈췄다. 나는 가말리엘의 영적 권위를 본다. 그렇다. 종교적 공동체가 그 명맥을 이어가도록 견인하는 주체는 그 종교가 갖고 있는 영성을 추구하는 어른이다. 그런 존재가 있는 종교는 언제나 튼튼하다. 오늘 나는 내가 속해 있는 기독교에 가마리엘이 있는가를 질문해 본다. 질문을 던지고 보니 가슴이 쓰려온다. 두레박 (질문) 누가 기독교의 가말리엘일까?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내가 섬기는 공동체에 귀감이 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하나님이 허락하신 말씀의 본질에서 조금도 흔들리거나 타협하지 말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삶의 진창에서 분투하고 있는 교우들에게 힘을 허락하옵소서. 힘들지 않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