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8일 목요일 성서 일과 묵상 사람은 입김이라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62:5-12, 예레미야 19:1-15, 요한계시록 18:11-20 꽃물 (말씀 새기기) 시편 62:8-9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마중물 (말씀 묵상) 오늘 서재에는 미샤 마이스키와 파벨 길릴로프가 연주하는 첼로 연주가 그윽하다. 성서를 폈다. 사람은 입김이라는 시인의 토로가 들어왔다. 인생이 얼마나 가볍고 쉬 사라지는 것이면 사람을 입김이라 표현했을까. 성서가 말하는 인생과 생명에 대한 메타포는 매우 다양하다. 나는 그 중에서 야고보서 기자가 언급한 상징어를 매우 의미 있게 받는 편이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야고보서 4:14) 실로 그렇다, 아침 안개와 같은 인생인데, 입김과 같은 인생인데 나도 너도 천만년 내 삶이 지속될 것처럼 의기양양한 게 인간이라는 점이 놀랍다. 시인의 토로를 오늘 아침 만나면서, 놀라운 성찰을 본다. 시인은 입김 같은 사람임을 알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아니, 감정이라기보다는 영성적 통찰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확할 것 같다. 시인의 영성이 놀랍다. 이렇게 ‘인생’을 슬프게 여기는 통찰은 영성이 있는 자만이 느끼는 것이기에 말이다. 제천에는 아름다운 청풍호가 있다. 어느날 청풍호에서 새벽 물안개를 만난 적이 있었다. 장관이었다. 사진에도 담을 정도로 아름답고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그런데 그 신비로운 광경은 일출과 함께 사라졌다. 정말 순식간에. 평생 헝가리에서 아름다운 선교사로 사역을 감당한 졸업 동기의 부고 소식을 접했다. 영혼 말고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던 예수 닮은 졸업 동기의 부고를 접하고 죽음을 생각해 보았다. 수없이 많은 장례 예배를 인도했다. 제천이 실버 도시이다보니, 동시에 제법 규모가 있는 교회에서 담임목회를 경험했기에 20년 사역 기간, 직접 장례 예배를 인도한 경우를 비롯하여 관계된 지체들까지 장례식을 인도한 것을 어림잡아 보니 400여명에 육박하는 이들을 하나님 나라에 파송한 듯 하다. 목사이기에 이렇게 수없이 많은 주검들을 보았기에 내내 죽음이라는 단어를 잊고 산 적이 없다. 이제 그 죽음의 소식이 나와 같은 연배와 동시대 인물들에게서 들려온다. 어느날은 내 부고도 또 다른 이들에게 들릴 것이다. 외면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생이 아침 안개니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 시인의 이 일성(一聲)을. 피난처이신 나의 주군을 의지하고 그의 앞에 내 마음을 토하는 삶! 이 삶을 살아야 소풍 마치는 날에 조금은 덜 섭섭할 것 같고, 덜 후회할 것 같다. 입김 같은 인생에 대해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주 나의 하나님께 천착하는 삶은 놓치지 않으리라. 오늘 성서일과를 통해 받은 내 미션이다. “오늘의 경작은 깊이 떠놓은 한 삽의 흙 속으로 들어가는 것”(『사라진 손바닥』, 25쪽)이라고 말한 나희덕의 시어처럼 그렇게 그 날이 오기 전까지 내 삶을 묵묵히 살아가련다. 첼로로 연주되는 ‘아베 마리아’의 선율이 서재를 뒤덮고 있는 은혜롭고 거룩한 아침이다. 두레박 (질문) 나는 쉬 사라질 것에 목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을 붙들게 하옵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내가 천착해야 할 것에 민감하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하나님, 세인 교회 공동체가 보이는 영원하지 않은 순간의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더 민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