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7.12.17 지역 셀 사역2024-04-23 16:27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나도 모르게 내가 갖게 된 획일화 성향의 고집이 있다면 고백해 보고 내려놓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주 예수 넓은 사랑 (찬송가 497장)
●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 (복음성가)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 획일화와 다양화
● 본문 : 고린도전서 12:12-20
1) 바울이 오늘 12절에서 교회의 머리를 왜 예수라고 표현하지 않고 그리스도라고 표현했는가?
① 12절: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② 고린도교회 지체들의 다양성과 연관하여 설명해 보자.  

2) 14-20절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했던 신학은 무엇이었는가?
① 김판임 교수의 주석을 참고하자.
  

3) 적용하기
① 나는 상대방의 은사를 존중하고 있는가?
② 내 은사의 우월의식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③ 솔직하게 성찰하고 뒤돌아보기  

 
사역하기 (WORK)
● 주간 중보 제목

1) 환우들을 위하여(서정수, 김경옥, 이종구, 이상순 등등)
2) 시험 성적으로 토대로 수험생들의 진학에 대한 지혜를 위하여
3) 해피 엔딩기도회를 통해 하나님 교회의 기도
사역이 응답받도록
4) 성탄 행사 (축하의 밤, 새벽송, 성탄절 예배)
5) 12월 31일 송구영신 주일 영혼 추수를 위하여
6) 제 10회 사무총회를 위하여 (2018년 1월 7일)
7) 담임목사의 사역을 위하여
  

 
설교요약 (SUMMARY)
12월 17일 주일 낮 예배 설교 (고린도전서 55번째 강해)
제목: 획일화와 다양화
본문: 고린도전서 12:12-20

  ‘획일화’라는 단어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익숙한 단어입니다. 우리나라에 행한 일제의 만행은 황국 식민화라는 가장 비인간적인 획일화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군사 독재 정권의 만행 역시 획일화였습니다. 조지오웰의 걸작인 ‘1984’ 역시 인간의 가장 인간다워짐을 용납하지 않은 획일화된 인간이었습니다. 이렇게 획일화는 사회과학적인 통념에서는 긍정의 단어가 아닙니다. 정말로 경계해야 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획일화’는 신앙적인 차원에서도 결코 수용해서는 안 되는 부정의 단어라는 면에서 외연을 확장해 봅시다.
  전술했듯이 획일화라는 단어는 전제주의나 공산주의에서 통용되는 단어입니다. 철저한 통제사회에서나 오고갈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획일화라는 단어가 교회에서 아주 교묘하게 악용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들이 살펴보는 고린도교회 공동체에서 은사를 받은 자들 사이에서 은사 우월주의라는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자행되었습니다.
  고전 12:4-7절에서 바울은 은사에 대하여 강력하게 역설했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이 이렇게 강한 어조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외쳤던 것은 이미 각종 은사를 받은 자들이 그 은사에 대한 다양성과 동등함을 인정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받은 은사의 우월함을 자랑하려는 바르지 못한 영적 태도들로 인하여 교회공동체가 무질서한 공동체로 전락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런 오용되고 잘못 인식된 은사 우월주의자들을 향하여 몸의 비유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은사 우월주의 혹은 은사 독점주의를 보란 듯이 경고하고 질타하려는 바울의 의도가 엿보입니다. 본문 12-13절의 여러 번역을 살펴 봅시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한글 개역개정 역).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기는 하지만 모두가 한 몸이듯 메시야도 그렇습니다. 유대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우리는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우리는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톰 라이트 역)
  “여러분 자신의 몸을 보면 이런 성령의 선물들이 어떻게 역사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여러 지체-팔과 다리, 여러 기관,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지체가 있지만ㅡ여러분의 몸은 여전히 하나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유진 피터슨 역)
  성경 본문과 두 학자들의 현대적인 번역으로 본문 12-13절을 이해한 뒤에 오는 선명한 교훈은 ※ 성령의 선물로 주신 은사의 다양성을 은사 우월주의로 획일화시켜 옥죄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바울은 이 경고를 인간의 몸을 예로 설명한 것입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지체는 여럿이라는 말은 너무 상식적인 우리들의 육체를 보더라도 확연합니다. 본문 14-20절 역시 같습니다.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세종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이자 신약학자인 김판임 교수는 이 구절들을 다음과 같이 주석했습니다. “바울은 상이한 은사를 가진 교인들로 이루어진 교회를 ‘여러 지체를 가진 몸’에 유비하여, 각 지체들마다 우위를 다룰 수 없는 모두 중요한 것처럼 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하는 것은 어떤 특정한 은사를 높이 평가하는 고린도교인들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바울과 고린도교회’, p,224.)
  그렇다면 본문에서 바울이 은사에 대한 이야기 끝에 몸의 비유를 한 것은 다분히 고린도교회 공동체 안에서 본인이 받은 은사 우월주의로 무장한 자들이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는 것이 설득력이 있는 바울의 목회 신학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14장에서 고린도교회 안에는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은사우월주의에 빠져 교회를 어렵게 했다는 증거들이 많이 나오는데 바로 그래서 바울은 9가지의 은사들을 열거하면서 다분히 의도적으로 방언의 은사를 8번째로, 방언 통역의 은사를 9번째 순위에 놓음으로 그들의 교만과 은사우월주의를 경고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꾸로 성령의 은사는 유기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자 다양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팔이 팔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지혜의 말씀이라는 은사는 교회 공동체에서 지혜의 말씀이라는 은사를 받은 자로 하여금 교회의 유익을 위해 섬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이가 받은 신유는 은사를 받은 자가 그 은사의 유익을 교회 공동체에 펼침으로 아프고 고통 받고 있는 교회 안의 다른 지체에게 도움을 주는 선한 도구로 쓰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군가에 방언의 은사를 주셨다면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당신이 원하시는 기도를 듣고 싶어 하시는 기대 때문에 그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공통점은 모두가 성령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의 다양성 때문에 발생한 특별한 은혜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은사를 갖고 장난질치지 말아야 합니다. 은사를 가지고 서열화 시키는 천박한 종교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은사는 하나님이 직접 주신 것이기 때문에 네 은사는 나보다 열등하다고 판단하는 영적 건방짐을 떨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2절을 조금 더 세밀하게 살펴 보면,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의 다른 편지에서 교회의 머리를 정의할 때 반드시 썼던 단어가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정의입니다. 에베소서 1:22-23, 에베소서 1:17, 골로새서 1:18-19절을 보면 모두가 그렇습니다. 바울의 문체와 표현은 교회의 머리는 예수라는 것에서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은사에 대한 교훈을 주는 고린도전서 본문에는 예수라는 단어가 쓰이지 않고 그리스도라는 단어로 대체했습니다.
  바울은 은사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고린도라는 이방 공동체 교회의 지체들을 위한 배려 때문에 ‘예수’라는 단어를 절제하고 ‘그리스도’, 즉 ‘메시아’라는 보편적인 예수를 의미하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13절 전반절에서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바울은 고린도교회 공동체의 다양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고정화되고 거의 획일화되어 버린 단어인 ‘예수’ 보다는 보편타당한 예수의 의미를 잘 담고 있는 그리스도 즉 ‘메시아’라는 단어로 교회의 머리를 설명함으로 다양성이 있는 교회 공동체를 배려한 것이며 결국 바로 이런 다양함에 대한 인정은 은사에 대해서도 동일하다는 것을 에둘러 강조한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3:1절은 이방적 그리스도인들이 세운 롤 모델 교회인 수리아 안디옥교회 구성원인 5명의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① 바나바: 키프로스 출신, 레위 족속, 유대적인 출신의 사람, 원래의 이름이 요셉인데 워낙 온유한 사람이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주어 만나는 사람마다 주의 감동으로 권면을 잘 하는 은사가 눈에 띄어 사람들로 하여금 ‘바나바’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의 Peacemaker 이었습니다.
  ② ‘니게르’(시므온):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개종한 사람.
  ③ 구레네 사람 루기오: 로마의 문화권에서 공부를 했거나 로마의 영향권에 있던 사람
  ④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최고의 권력을 갖고 있는 자의 동생으로 세례요한을 죽인 헤롯과 함께 유모에게서 젖을 먹고 자란 사람으로 권력을 맛 본 사람. 최고의 권력 상부에 있었던 그가 당시의 소외받던 소수자들이었던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아주 주목할 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⑤ 사울: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요 바리새파라는 당시의 지성인 출신
  안디옥 교회는 담이 없었고, 누구나의 교회였으며 유대인도, 이방인도, 권력이 높은 자도, 낮은 자도, 지식층도, 비 지식층도, 흑인도, 백인도 함께 하는 문턱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교회 구성의 특징은 다양성입니다.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성령 하나님의 선물인 은사도 그러므로 다양한 것입니다. 특정 은사의 획일화와 서열 매김은 전혀 성서적인 것이 아닙니다. 은사는 다양한 것이 정답이고 모든 은사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임을 다시 한 번 재 각인하는 우리 교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인간을 획일화시키거나 고착화시키는 장소가 아닙니다. 만에 하나 성령이 주신 선물인 은사를 서열화 시키고 내가 받은 은사만이 최고의 은사라고 주장하는 교회와 그런 자들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교회를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만드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선언을 다시 한 번 곱씹읍시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 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