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7.11.12 지역 셀 사역2024-04-23 16:26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 말해 보기.  

 
경배와 찬양 (WORSHOP)
● 성령의 은사를 (찬송가 196장)
●  모든 민족에게 주 성령 (ccm)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은사는 참 좋은 것입니다 ①
● 본문: 고린도전서 12:8-11
1) 바울이 말한 ‘지혜의 말씀’을 솔로몬의 재판과 연관하여 설명해 보자.
※ 특히 ‘말씀의 지혜’가 아니라 ‘지혜의 말씀’이라는 표현에 주목하여 오늘날의 언어로 ‘지혜의 말씀’이라는 은사를 해석해 보자. (유진 피터슨 번역 참고)
  

2) ‘지식의 말씀’이라는 은사가 성서 해석이라는 신학적 접근과 다른 점을 담임목사의 설교를 중심으로
  

3) 적용하기
⓵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이라는 은사가 나와 관계없는 먼 은사라고 착각하지 말자. 
⓶ 이 두 은사는 여타 다른 은사를 받았어도 꼭 필요한 은사임을 인식하자. 
⓷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이라는 은사를 사모하며 합심하여 기도하자.  

 
사역하기 (WORK)
● 주간 중보 제목

1) 환우들을 위하여
(서정수, 문혜경, 김경옥, 이종구, 이상순 등등)
2) 대학 진학을 앞 둔 수험생들을 위하여 (11월 16일)
3) 해피 엔딩기도회를 통해 하나님 교회의 기도 사역이 응답받도록
4) 추수감사주일과 12월 31일 송구영신 주일 영혼 추수를 위하여
5) 이 땅의 교회와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하여
6) 제 10회 사무총회를 위하여 (2018년 1월 7일)
7) 담임목사의 사역을 위하여

● 셀 사역하기

1) 해피엔딩 기도회 실행 지침 점검
2) 수험생들 격려하고 응원하기
  

 
설교요약 (SUMMARY)
11월 12일 주일 낮 예배 설교 (고린도전서 51번째 강해)
제목: 은사는 참 좋은 것입니다.①
본문: 고린도전서 12:8-11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인간의 심리는 본능적입니다. 우리가 은사를 본능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은사는 좋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은사는 본능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것에 있으므로 본문에 소개된 9가지의 은사는 인간의 본능적인 차원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을 전제하기에 은사는 참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지혜의 말씀’ 이라는 은사입니다.

  오늘 본문 18절 전반절에 기록된 첫 번째 은사인 ‘지혜의 말씀’에서 ‘지혜’라는 단어는 고린도전서 1장에서 살폈던 ‘지혜’와 같은 단어인 ‘소피아’입니다. 고린도지역에 팽배했던 ‘지혜’는 바울이 고전 1:19-22절에서 무려 7번에 걸쳐 계속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는 지혜(소피아)를 헬라적인 철학과 문화가 절정을 이루었던 고린도지역에서 지식인들이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하나님’에 대한 카운터파트 였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식에 반대편이라는 대척점에 서 있는 세상식의 최고점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도식을 부끄러워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믿음의 대상과 견줄만한 또 다른 대상을 헬라인들이 구사해 놓은 것에 무척이나 자존심 상해했습니다. 그럴 수 없다는 바울의 신학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장에서 십자가의 도는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한다고 선언하였고,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한다고까지 극언을 서슴지 않은 것이었습니다(고전 1:18-24). 주목할 것은 이렇게 1장에서는 경계해야 할 대상 1호로 언급된 ‘지혜’가 오늘 본문 12장에서는 단어 하나가 첨가되어 조금은 긍정적인 의미로 ‘지혜의 말씀’으로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구절에서 우리들이 눈여겨보아야 하는 대목은 지혜라는 명사가 말씀이라는 단어의 소유격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헬라 철학에서 ‘지혜’ 즉 ‘소피아’는 십자가의 말씀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요지부동한 가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늘 은사 장에서 그 지혜가 말씀에 속해 있음을 피력한 것입니다.
‘말씀의 지혜’ 가 아니라 ‘지혜의 말씀’ 으로 은사를 정의했다는 것입니다. 즉 지혜는 말씀을 올바르게 적용하도록 돕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바울의 사상이 담겨 있다는 말입니다. 지혜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카운터 파트너가 아니라 돕는 도구라는 이해는 오늘 우리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강조점은 ‘지혜’가 아니라 ‘말씀’인 것입니다. 결국 성령께서 허락하시는 첫 번째 은사의 방점은 ‘지혜’가 아니라 ‘지혜의 말씀’이라는 데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의 말씀이라는 은사는 교회에 너무 필요한 것이며 이런 이유 때문에 9가지 은사의 열거 중에 제 1 순위로 자리를 잡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지혜의 은사를 적절하게 묘사한 부분이 바로 열왕기상 3:16절 이하에 나오는 솔로몬의 지혜로운 재판입니다. 서로 자기의 아들이라고 우기던 두 여인에게 솔로몬이 명했던 그 유명한 판결이 이렇습니다(열왕기상 3:24-25).  “또 이르되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칼을 왕 앞으로 가져온지라 왕이 이르되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
  이 구절을 그냥 앞뒤의 이해 없이 만나면 기막힌 지적 능력이 있는 왕의 판단정도로 간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판결의 내용이 삽입되어 있는 열왕기상 3장의 시작이 바로 기브온 산당에서의 일천번제를 소개하는 것임을 전제할 때 이 솔로몬의 이 판결은 바로 지혜의 결정체임을 역사가가 알려주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열왕기상 3:12절과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과 열왕기상 3:14절입니다.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아버지 다윗이 걸었던 법도와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이 이렇게 명 판결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신 지혜와 그 지혜를 통하여 역사하게 된 말씀의 능력 때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2) 지식의 말씀이라는 은사입니다.

  두 번째 은사는 ‘지식의 말씀’입니다. 두 번째 은사에 대한 해석으로 주목할 것은 ‘지식’이라는 단어의 이해입니다. 헬라어 ‘그노시스’는 ‘지식’으로 번역됩니다. 본문에 나오는 두 번째 단어도 매일반입니다. 유진 피터슨은 이 은사를 ‘명료한 이해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로마서 13:1-2절을 보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적용한다면 별로 예수 믿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는 치명상을 입습니다. 이 말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적용하면 나라를 찬탈하여 정권을 잡은 것도 하나님이 인정하신 일이니까 그의 대통령 찬탈을 수용하라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던 것도 하나님의 뜻이니 하이 히틀러를 외쳐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일성 3대 부자가 공포의 정치를 휘두르고 있는 것 역시 하나님의 뜻이니 인정하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지혜의 말씀이라는 은사를 주시는 성령님의 은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권연경 교수가 쓴 ‘로마서 13장 다시 읽기’에서 그는 로마서 13:1-2절을 이해하는 해제를 다음과 같이 내놓았습니다. “바울의 가르침을 오늘 우리의 상황에 적용하려고 할 때 국민이 주권자라는 신념은 매우 중요하다. 현대 정치 환경과 이념은 고대 사회와 다르다. 고대 사회를 염두에 두고 기록된 성경 본문을 억지로 끌고 와 오늘날의 통치 권력을 절대화하고 복종의 논리로 이념화하려는 것은 위험한 시대착오다. (중략) 고대의 왕들은 ‘왕건 신수설’이라는 이념을 내세워 국민들을 억압하고 자신의 사적 욕망을 추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하나님의 주권은 더 이상 왕 개인에게 위임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은 한 나라 국민 모두에게 동일하게 위임된다. 그리고 시민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그 권리를 소수의 통치자에게 다시 위임한다.”(pp,56-57) 권 교수가 말한 ‘위에 있는 권세’는 국가 권력이 아니라 도리어 ‘국민’이라는 말입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이것은 지혜의 은사를 성령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신학적 주석이나 공부를 통해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주목할 것은 성령님이 주시는 ‘지식의 말씀’은 성경을 이렇게 해석하여 적용하게 하는 은사라는 점입니다. ‘위에 있는 권세’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비정상적인 권세와 정치권력이 아니라 ‘국민’ 이라는 해석을 이해하도록 돕는 은사입니다.
  ‘지혜의 말씀’이라는 은사와 더불어 바울의 은사 목록 중에 두 번째로 소개하고 있는 ‘지식의 말씀’이라는 은사 역시 우리 세인 교회의 지체들 중에 많은 교우들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더욱 영적으로 윤택하게 하는 귀한 은혜가 충만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좋아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본능적 운명입니다. 은사는 그 본능적인 운명을 뛰어넘게 해주는 성령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은사는 참 좋은 것입니다. 세인 지체들에게 지혜의 말씀들이, 그리고 지식의 말씀들이 충만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