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지은이 | 아돌프 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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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출판사 | 종로서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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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20-01-02 15:55: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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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홀의 ‘소외된 사회의 예수’(종로서적, 1986년)를 읽고 우연히 지난 해 말에 서재에 꽂혀 있는 홀의 책을 집어 들었다. 지금의 인쇄 기술에 비하면 얼마나 조잡한 인쇄인지 실감이 나기도 하고, 글자 자체도 읽기가 피곤한 작은 글씨(지금 10point 보다는 작고 9point보다는 조금 큰)라서 읽는 내내 집중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1월 말에 어느 단체에 보내야 하는 원고 때문에 1986년 판 홀의 파격적인 예수에 대한 해석에 집중하며 밑줄 그었다. 내내 ‘역사적 예수’와 ‘신앙적 그리스도 예수’ 사이의 아주 묘한 긴장감을 준 저자 아돌프 홀은 비엔나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사제다. 그가 이 책에서 줄곧 강조하고 있는 예수를 혹자는 경우에 따라서 ‘역사적 예수’에 가깝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필자가 이 책을 여타 단체에 보내야 하는 원고를 위한 secondary source로 사용하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도리어 신앙적인 예수에 더 친근한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려는 주군을 그리려고 노력했다는 개인적인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86년 판이다. 33년 전, 그러니까 필자가 신학대학교 4학년 학부 시절에 구입한 책이다.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나 하자. 당시 필자가 공부한 신학교는 대놓고 마커스 보그 이야기를 할 수 없었고, 존 캅을 자신 있게 들먹일 수 없었으며, 구스따보 구띠에레스는 금기의 이름이었다. 이건 그렇다 치자. 정말로 지금 생각을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인데 당시 조직신학을 가르치던 선생님은 본회퍼마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위기였으니, 유구무언이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모교에서 공부를 하는 후배들은 나름 신학적 균형을 갖고 있는 지성적인 교수님들 밑에서 공부를 하고 있느니 혜택(?) 받은 사람들임에 틀임이 없다. 홀은 이 책에서 예수에 대한 기존 제도권에서 절대로 벗어나면 안 되는 ‘우상화 예수’에 대하여 경계한다. ‘우상화 예수’를 경계하고 ‘약한 자(소외된 자)와 함께 하셨던 예수’를 역설하기 위해 세 가지 역사적 사실을 아주 튼튼한 사회 신학적 관점에서 세 가지를 제시한다. (p,14) ① 죄인으로 처형당할 수밖에 없었던 예수 ② 혈통적인 가문에서의 독립했던 예수 ③ 하향적 경향으로 방향을 정한 예수 적어도 필자가 그 동안 공부해왔고, 접해 왔던 세 가지 예수에 대한 필연적 코스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친밀감이 답이었다. 헌데 저자는 이런 예상을 키에르케고르의 촌철살인을 소개함으로 판을 깬다. “신앙은 예수에 관하여 역사적으로 입증된 자료와는 상관이 없다. 즉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이 이 세상에 계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사실뿐이다.”(p,16) 몰트만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을 떠오르게 하는 그의 말이다. 다만 홀은 역사적 예수와 신앙적 그리스도 사이에서의 묘한 긴장감의 예수를 ‘사회의 국외자’로 봄으로 절충한 점이 필자에게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 논제로 다가왔다.(p,17) 저자는 예수를 당시 기존의 종교적 제도권에서 아주 불편한 존재로 낙인찍었다고 해석하면서 그를 범죄자로, 미친 자로,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기는 자로 몰아넣었다고 해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은 에른스트 블로호의 갈파를 인용함으로 제도권에서 불편한 자로 정의한 것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반론한다. “십자가 위에서 죽은 예수는 관습과 기존 권력에 대한 반항자였다.”(p,33) 어디 이뿐이랴! “누에고치처럼 자기 자신의 몸을 안으로 숨기는 자기중심적인 인간들이 예수시대 이래 오히려 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아래로 향한 운동을 통해 세세한 방향 전환을 성취하려는 그의 시도는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그가 조제한 약이 아직도 사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p,115) “예수를 연구하는 자들을 위함 또 하나의 훈련은 그들이 사회적으로 지향하는 것을 바꾸는 훈련이다. 우리의 항해 목적지는 아래이지 저 위에 있는 곳이 아니다.”(p,165) 전형적인 예수의 하향적 경향을 나타내는 저자의 갈파다. 주목할 것은 이 점 역시, 해방신학이나 민중 신학의 카테고리 안에서 예수를 이데올로기화하기 위한 해석이 아니라는 점에서 필자는 신선했다. 도리어 홀은 예수의 이런 삶이 바로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다리던 주군으로서의 감동을 줄 수 있던 동력으로 해석했다. “교회들이 제시한 공식적인 예수상에 의하면 예수는 독특한 인생관과 세계관을 지녔던 것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가르침은 마치 삶의 모든 방면의 문제들을 분명히 밝혀주는 질서정연한 체계를 지닌 것처럼, 모든 질문에 옳고 거침없는 답변을 하였던 것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예수상이 발견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의 삶과 그가 행한 일을 공식적으로 해석함에 있어서 교권적인 요소의 잘못 때문만이 아니라 질서를 확립하고자 한, 예수를 어느 한 계층 속에서 분류하여 자리를 정해 주고자 한 열망의 결과 때문이기도 하다.” (pp,161-162) 필자는 홀의 이 갈파가 어느 한 쪽으로 지나치게 기운 편향적 예수 이해가 아닌 예수의 삶에 대한 가치를 높임으로서 주군에 대한 이해를 좌우가 아닌 균형적으로 접근해 준 대단히 중요한 갈파라고 평가하고 싶다. 노파심으로 홀이 책의 말미에 기록한 내용을 필자의 신학적 전망으로 부연함으로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예수는 약자 편에 선다. 그는 분노하는 자들과 함께 더불어 있다고 느낀다. 그는 창립총회 같은 데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그는 교회들 속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그가 없더라도 그에 대한 예배가 행해지기 때문이다. 그는 남루한 옷을 입으며 결코 어떤 제복도 입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어디에서나 장기간 머무르지 않는다.”(p,170) 민감한 독자는 눈치를 챘을까! 이 정도면 예수는 혁명자였고, 요즈음 흔하게 사용되는 좌빨(?)이었고, 그래서 그는 역사적 예수로 살았던 피스메이커가 아니고 트러블 메이커라고. 뭐 그렇게 해석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필자는 그들의 생각과 같이 할 수 없다. 왜? 말하기가 어렵지 않다. 도리어 쉽다. 예수가 전술한 삶을 살았던 이유는 적어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필자는 신앙을 이렇게 정의한다. “신앙이란 손이 내 심장 안으로 오그라들어 있는 불신앙의 모습을 버리고 내 심장으로 그 오그라든 손을 타자를 향하여 펴내미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가 약자 편에 선 것도, 힘 있는 자들에게 억눌려 핍박을 받아 분노하고 있는 자들과 함께 한 것도, 어떠한 제목도 입지 않으신 것도 주군이신 예수는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에 붙들려서도 아니요, 가시적, 제도적 교회만을 위한 만들어진 우상화된 예수가 아니라 그것이 주군이시자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마땅히 보이셔야 했던 상식이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해석한다. 칼 바르트가 이렇게 적시했다고 프랑크 엘레는 말했다. “신적인 것이 정치화되어서는 안 되며, 인간적인 것이 신학화 되어서도 안 된다.” (프랑크 엘레, “편안한 침묵보다는 불편한 외침을” 새물결플러스,p,74,2016년.) 바르트의 주장이 어떻든 필자는 그가 말한 전자는 동의하지만 후자는 정중히 사양한다. 왜? 인간의 이해를 전제하지 않는 신학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어서다. 필자는 언제나 이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성경의 해석은 성경적으로 해석하지만 그 적용은 상황적이어야 한다.” 목양의 현장에서 목사가 견지해야 하는 것은 균형이다. 물론 안다. 필자의 신학적 성향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할 수 없다. 난 나다. 그냥 난 이렇게 내 신앙적 성향대로 나아가련다. 그래서 그런지 아돌프 홀이 말한 ‘소외된 사회의 예수’ 역시 너무나 당연하게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수용한다. 정치적 사상이 아닌 신앙의 상식이 그렇기에. 금년 들어 첫 번째 서평을 썼다. 금년에 보낸 지인들을 향한 안부에 다음과 같이 썼다.
“2020년에는 나와 너만 웃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웃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사는 일이 버거워 우는 이들이 많지 않기를 두 손 모아 봅니다. 주군이신 예수님이 응원해 주시기를 소망하며 그 분이 하고 싶어 하시는 일을 함께 동역해 나아가는 귀한 모두의 해가 되기를 기도한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