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지은이 | 장강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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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출판사 | 아시아 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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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19-01-29 15:2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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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팔과 다리의 가격’(아시아 간, 2018년)을 읽고 “그랬다. 난 소위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르는 북쪽 정권의 파시즘적인 독재 권력의 횡포가 시퍼럴 때, 소위 배를 두드리며 더 이상은 못 먹겠다고 남은 음식을 여지없이 버렸다. 그랬다. 불과 500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회령에서 굶어 죽고 있는 내 땅의 또 다른 ‘내’가 거기에 수없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것도 매몰차게. 그런데 장강명은 그런 나를 여지없이 ‘먹사’ 라고 공격하는 듯해 고개를 숙였다. 늦었지만 다시 옷깃을 여민다. 이제 그들을 보겠노라고. 왜? 거기에 또 다른 ‘내’가 있으니까.” (2019년, 1월 28일, 풍기에서)
지성호는 왼쪽 팔과 다리가 없다. 북녘의 지옥이었던 ‘고난의 행군’ 시절 탄광촌에서 기적소리를 내며 달리던 석탄 열차에서 몸을 실어 석탄을 훔쳐 기차에서 뛰어내리면서 전봇대에 부딪치는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그는 훗날 탈북에 성공하여 지금은 NAUH 즉 ‘북한이탈주민지원단체’의 대표가 되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생지옥을 경험하는 자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에게 이데올로기는 아예 관심 밖의 것이 되었다, 그는 한 가지 사람답게 사는 것 말고는 다른 것에는 관심을 들 여력이 없어 보인다. 철저한 감시체계의 병영국가인 북한에서 아들이 팔과 다리를 잃어버리고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을 때 나름 출신 성분이 괜찮은 지성호의 아버지가 이렇게 한바탕을 술을 마시고 독백한다. “개 같은 나라… 노동당이 내 아들을 이렇게….”(P,114) 국가는 ‘나’ 라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어야 하는데, 갖은 편법과 술수와 정치적 신념으로 ‘나’를 희생양 삼아 존재한다. 또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애국주의로 혹은 국가주의로 무장한 국가는 나에게 계속 굴종과 희생을 강요한다. 그런 삶이 위대한 삶이라고. 공산주의, 자본주의, 왕정주의 등등 이 땅에 존재하는 일체의 국가가 매일반이다. 태극기로, 촛불로 이념주의자를 양산하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하라고 몰아세운다. 그래서 난 장강명의 글을 읽는 내내 그가 내세운 질문에 답을 해보려고 천착했다. 국가가 요구했던 팔과 다리의 가격은 과연 얼마이지? 저자는 이렇게 그 답을 에둘렸다. “우리의 팔과 다리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쓰이기를 빌며” (P,135) 저자와 달리 필자는 이렇게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PRICELESS’ ‘계산할 수 없음’ 이 책 역시 2월 독서 스케줄에 담아 놓은 책이다. 사무총회를 마치고 전담 부교역자가 부임하고 이제는 조금 여유가 있어서 그런가. 조금 일찍 접할 수 있어 행복했다. 또 하나의 좋은 책과의 만남을 경험하고 나니 왠지 뿌듯하다. 사람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그래서 하나님도 사람을 창조하시고 이렇게 읊조리신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