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니허니맘’이라는 닉네임을 ID로 하는 블로거 친구가 있습니다. 제가 많이 방문하는 블로그입니다. 어제 올린 그녀의 독서 제목은 스테프 차가 지은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황금가지 간, 2021년)였는데 부제가 2022년 독서한 43번째 책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미친 독서 편력입니다. 정말로 존경하는 글벗입니다. 생면부지의 블로거 친구인데 그녀의 글을 볼 때마다 머리가 숙여집니다.
‘쭈니허니맘’님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어제 3월 독서 숙제가 도착했습니다. 저의 이번 숙제는 17-24번 숙제입니다. 여기 이렇게 숫자를 남겨놓는 이유는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더 더욱 교만함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 참 많이 어수룩하지만 저와 함께 하는 글벗들이 조금 더 많아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 교계에 큰 지성이었던 어른 한 분이 유명을 달리 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입니다. 저는 목사이다 보니 선생님을 조금 더 주목하며 보게 된 동기가 분명 딸인 이민아 목사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세밀하게 고백하자면 선생님에게 관심을 갖게 된 시작을 추적해 보면 영문학을 공부할 때였습니다. 전공 필수 과목으로 문학개론을 수강했는데 당시 담당교수께서 선생님의 걸작인 ‘흙속에 저 바람 속에’를 독서 과제로 내준 것이 기회가 되어 첫 만남을 경험하면서였으니까요. 이후 ‘축소 지향의 일본인’을 접했을 때 그분의 탁월한 통찰과 혜안에 멍 때렸던 그런 자국들이 제게 남아 있는 선생님에 대한 조그마한 흔적들입니다. 선생님의 영적회심을 진심으로 기뻐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제가 목사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 여 년 전, 양화진 문화원에서 진행되었던 선생님과 이재철 목사께서 나누었던 지성과 영성의 만남은 ‘지성적 영성’이 제 목회의 방향성으로 고정될 수 있게 만들어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3월 고인을 추모하겠다는 마음이 일어 아직 접하지 못한 선생님의 유작들과 제자들이 엮은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려 합니다. 또 다른 지성적 영성의 은혜가 기다리고 있음을 저는 압니다. 보너스는 김남주 시인의 뒤안길을 따라가는 것이고, ‘팔레스타인의 비극사’라는 대단히 중요한 이스라엘에 대한 날카로운 역사를 비평했던 알란 파페 이후 유대인의 피가 흐르면서도 유대인에 대하여 대단히 비평적 통찰을 주저하지 않은 슐로모 산드의 ‘만들어진 유대인’ 과 행복한 여행을 할 생각을 하니까 적지 않은 흥분까지 일어납니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천박함과 무지함이 참담할 지경에 이르러 질식 직전인데 3월 한 달, 그래도 공부하고 생각하는 자들이 정직한 역사를 이루어 간다는 소망을 갖고 주어진 숙제에 최선을 다해 보려 합니다. 나날이 글자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복병이 괴롭히고 있지만, 다초점 렌즈에 힘을 빌려 3월을 살아보렵니다.
故 이어령 선생님의 하나님 나라 입성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민아 목사님 만나셔서 행복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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