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마지막 주일, 승리 반점 2층에서 40여 명의 교우들이 모여서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승리 반점은 제천에서 가장 유명한 중화요리점 이었기에 결혼식장이 변변치 않았던 아주 오래 전에는 2층을 결혼식장으로도 대여했던 장소였고 광야로 나온 개척 멤버들로서는 임시 예배 처소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습니다. 남편과 더불어 화교로 제천에 거주하며 일군 승리반점을 임시의 예배 처소로 기꺼이 내놓은 장계란 권사는 세인 교회 개척의 일등공신이었습니다. 이후 세인교회가 안정적인 궤도에 접어들 때까지 새벽의 기도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섬김의 자리에는 일등이었습니다. 언제나 부족한 종의 건강을 위해 중보자로 서 있어 주셨습니다. 종이 울면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 웃어주셨습니다. 그런 권사님의 귀한 동역이 있었기에 지금도 어설프지만 세인공동체를 섬기며 달려올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혼자 한국에서의 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안 자녀들이 거의 강제적으로 대만으로 모시게 되어 그토록 사랑했던 세인 지체들과는 가까운 곳에서 부대끼지 못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지만, 언제나 권사님의 마음은 이곳에 있었고 사이버 상의 세인우먼(women)으로 견고하게 붙들려 있기에 공간만 다를 뿐이지 더 깊은 연대감을 갖고 종과 영적으로 교제하고 있습니다. 한 달 여 전에 연로한 연세이기에 심장 판막에 구멍이 뚫려 있고 더불어 혈관도 많이 막혀 있어 수술을 해야 한다는 사정을 알렸고 그냥 놔두면 약 1년 정도의 시한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라 위험부담천만인 흉부외과적인 수술을 하게 된다는 기도 제목을 받고 세인 지체들이 함께 긴밀히 중보 했습니다. 결과 감사하게 외과적인 수술이 성공리에 마쳐져서 일반병동으로 이동했는데 고령의 나이이기에 수술 부위의 불안전성이 가세되어 다시 ICU에 입원하는 긴장의 시간이 있어 더 세밀히 기도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위급한 상황은 넘겼지만 아직은 중환자실에서 상태의 호전을 살펴야 하는 상태임을 보고 받아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새벽 큐티 시간에 줌 방에 권사님의 얼굴이 보여 화들짝 놀랐습니다. 왜? ICU에서 새벽예배를 드리는 초유의 일을 실시간 줌 방송으로 경험하게 되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ICU에서의 실시간 새벽예배 참여라니! 미증유의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주 가끔 목회의 의미에 대해 질문할 때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실망감을 경험하여 무저갱 속으로 끊임없이 추락하는 영적 침체를 경험하다가도 장계란 권사님과 같은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주는 지체들을 만나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종을 다시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면서 힘내라고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십니다. 펜데믹 2년으로 치닫고 있는 오늘, 더 계산적이며, 이기적인 종교 생활로 치닫고 있는 자들이 많은 정글 같은 목회 현장을 바라보면 아프기 그지없지만 브엘세바의 로뎀 나무 근처에서 깊은 침체에 빠져 있었던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통해 음식물을 공급하신 뒤에 세미한 음성 가운데 오셔서 그에게 두 번째 미션을 주시며 다시 일으켜 세워주셨던 그 하나님의 만지심을 지난주에는 종이 장계란 권사님을 통해 세밀하게 체휼하면서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 내년에는 자녀들하고 한국에 다시 나가서 꼭 세인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싶어요.” 권사님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저 역시 중보해 봅니다. 장계란 권사님이 만들어주신 자장면보다 더 맛있는 자장면은 이제까지 없었습니다. 그 자장면을 다시 먹을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어제가 권사님 생신이었는데 멀리서 생신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권사님, 생신 축하드리고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