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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예수 그리스도는 비교대상이 아닙니다.2024-03-07 16:42
작성자 Level 10

2022 7 3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히브리서 강해 34)

 

본문히브리서 10:1-20

제목예수 그리스도는 비교대상이 아닙니다.

 

서론)

 

이번에 4번째 출간 예정인 책의 초고를 2번에 걸친 교정 끝에 완료했습니다.

제가 이번에 출간 예정인 책은 여러분과 2011년 7월 6일부터 2014년 12월 28일까지 공 예배 설교를 통하여 104회에 걸쳐 나눈 강해를 문어체로 바꾼 뒤원 포인트 주제를 설정하여 독자들이 읽기 쉽게 정리한 원고입니다.

이제 출판사 선정과 출간 계약 과정이 남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독서 서평이 아닌 제 글을 오롯이 담아 놓은 첫 번째 책이고 나름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기에 좋은 결과들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들어가는 말에 삽입한 한 대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필자는 구약학자가 아니라 현장 목회자다그러므로 마땅히 필자가 써내려간 신-사사시대에 읽어야 하는 사사기는 구약 성서 신학적인 작품이거나 구약 석의적인 작품이 아니다이 작업이야 학자들의 몫이고이런 부류의 책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기에 그쪽을 참조하는 것이 현명하다다만 이 책은 사사기 읽기를 통해 21세기적 한국교회의 민낯을 들춰내는 실천신학적 작업이다그러므로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목적이 아니라한국교회라는 현장과 그 안에 속해 있는 크리스티아노스(Cristianov")라는 콘텍스트를 적용의 대상으로 삼은 글이다사사기에서 보는 초기 가나안 공동체인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가 자행했던 오류들을 사랑하는 한국교회가 반면교사 삼아 주기를 바라는 희망서신과도 같은 글이다그러기에 이 글은 구약학자들에 의해 또 다른 비평적 산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하지만 겁먹지 않으려고 한다성서학자들이 일반 평범한 목회자가 겁도 없이 행한 구약 건드리기를 너그럽게 용인해 주기를 기대하지 않는다졸저의 역할은 운명적으로 구약신학자들이 어쩔 수 없이 범하는 건조함(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의 석의와는 달리 이 책은보킴에서 울었던 가나안 입성 초기 공동체의 울음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진심어린 울음을 함께 공유하는 토로가 담길 것이다재론하지만 한국교회는 작금치명적인 공격이 산재해 있던 치열한 정글에 있다또한 가공할만한 바이러스가 한국교회에 기반 자체를 통째로 흔드는 바람에 신-기브아 시대를 방불 하는 그로기 상태인 것이 사실이다이런 현실 안에서 필자는 사사기 기자가 주고 싶었던 메시지를 현장 목회신학자로서 21세기에 나누어야 할 현장 언어로 체화시키는 작업을 시도하려 한다졸저가 이 일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여러 독자들에게 기꺼이 야단맞을 각오가 되어 있다.” (이강덕, “-사사시대에 읽어야 하는 사사기”, 프롤로그 중에서)

프롤로그에 이 글을 담은 이유는 목회신학자라는 차별성 때문입니다,

성서 신학적 관점에서 읽고 보는 학문적인 사사기 연구서는 구약학자들에 의해 많이 서점에 나와 있습니다.

반면현직 목회자가 실천신학적 해석의 관점에서 본 사사기 연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사기 안에 담겨 있는 구약해석학적인 사사기 연구는 특정 대상자 즉 신학생목회자들을 위한 시도인데 비하여 일반 평신도를 위한 사사기 똑바로 보기는 그리 시중에 많이 등장해 있지 않아 일반 성도들이 읽기에 용이한 사사기 읽기를 출간하려고 한 것입니다.

구약학자가 본 사사기와 실천신학자가 본 사사기를 비교하는 것은 출발 자체가 틀린 발상입니다.

해석의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어떤 특정한 일을 비교하는 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며쉽게 저울질 할 일도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비교하는 것은 조심해야 하는 일입니다.

누군가와 비교 당한다는 말은 유쾌하지 않은 일이며비교하는 사람도 위험 요소가 있기 때문에 유의해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을 연구하는 것 역시 조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비교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을 비교 대상의 무대 위로 올린 것은 분명한 의미가 있어 보이기 때문에 용기를 냈습니다.

설교의 결론을 앞서 말하는 것이 조금 조심스럽지만 저는 이렇게 갈무리하고 싶습니다.

설교 제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비교 불가의 존재이시다.

 

본론)

 

히브리서의 총 주제는 그 어떤 피조물보다 우월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과는 그 어떤 존재도 비교할 수 없는 비교불가를 선언한 책입니다.

본문이 바로 이 점을 분명히 합니다.

먼저 1-4절을 보겠습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우리는 이 구절에 대한 선 이해를 이미 8-9장에서 소상히 살펴보았습니다.

8-9장에 대한 요약이 1-4절에 담겨 있기에 다시 한 번 옛 언약 제사에 대한 그 한계성을 집어주는 텍스트입니다.

히브리서 전문가인 김성목 박사는 1-4절에 대한 신학적 함의를 아주 명확하게 요점 정리를 해 놓았는데 명쾌했습니다.

김 박사는 1-4절을 옛 언약 제사의 무능성이라고 제목을 달고 4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김성목, “히브리서의 기독론”, CLC, 386-389.)

⓵ 반복적인 희생 제사다.

본문 1절 중반절입니다.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⓶ 온전함을 제공할 수 없는 희생제사다.

1절 하반절입니다.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⓷ 죄를 기억하게 하는 제사다.

3절입니다.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⓸ 진정한 속죄를 실현할 수 없는 희생동물을 소개한다.

본문 4절입니다.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아론의 레위 지파 제사장들이 드려오던 구약의 제사법이 이렇게 무능하고 완전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불완전한 제사법에 종지부를 찍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 결심의 결과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드리신 십자가의 희생 제사였습니다.

5-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이 구절은 구약성경 시편 40:6-8절 말씀의 인용입니다.

먼저 시편 시인의 고백을 참고해 보십시다.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시인이 먼저 고백한 이 구절을 왜 히브리서 저자가 인용했을까요?

8절에는 대단히 주목할 만한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시인은 주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 것을 즐긴다고 고백했습니다.

즐긴다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하페쯔는 원래의 의미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미 마음이 굳혀진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시편 시인이 고백한 하페쯔를 본문에서 히브리서 저자를 통해 이렇게 부연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는 십자가라는 희생을 짊어지는 것에 대해 이미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다는 해석입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는 완전한 희생 제사에 대해 쉽지는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아셨지만 흔쾌히 감당하셨다고 해석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왜 예수께서 희생제사의 제물이 되시는 것을 흔쾌히 감당하셨을까요?

김성목 박사가 지적한 4가지 옛 언약에 대한 그 반대의 의미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늘성소에 들어가셔서 당신의 몸을 드리신 십자가 사건의 의미는 옛 언약의 불완전성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습니다,

Ⓐ 반복적인 희생 제사가 아니라 주님이 몸을 드린 희생 제사는 단 한 번의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본문 10절은 이렇게 보고합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4절도 이를 증명합니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 온전함을 제공할 수 있는 희생제사가 바로 예수님의 몸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12-14절을 봅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게 하는 제사였습니다.

17-18절을 읽겠습니다.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⓸ 진정한 속죄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제물이 주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