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7일 수요일 성서 일과 묵상 아름다운 사람 오늘의 성서 일과 시편 102:12-28, 욥기 6:1-13, 마가복음 3:7-12 꽃물 (말씀 새기기) 욥기 6: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마중물 (말씀 묵상) 엘리바스의 공격을 받은 욥이 첫 번째로 반응하는 본문 성서일과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에 의해서 평가된 평가가 들을 가치나, 이해할만한 내용이 1도 없을 때에 밀려오는 분노와 자괴감은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아마도 욥기 6장에서의 욥의 상황이 이러리라 싶다. 엘리바스는 인과응보의 대가를 받고 있다고 욥을 공격하여 윽박한다. 하지만 욥은 전혀 동의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도리어 원인을 알 수 없고, 이해가 되지 않는 하나님이 쏘아대신 화살에 치명상을 입은 상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엘리바스의 독설은 가당치도 않다. 욥은 이중의 고통을 느낀다. 친구의 독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공격이다. 이 즈음이면 하나님을 향한 미움이 더하지 않겠나 싶다. 엘리바스는 인간이니, 기대조차 할 것이 없으니 차치하자. 하지만 하나님은 아니지 않은가! 욥이 하나님을 섬긴 과거를 뒤돌아볼 때 하나님은 지금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 대해 도무지 이해되는 구석이 없다. 하나님의 작품이기에 말이다. 사정이 이 정도라면 손절하는 게 맞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맞다. 이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욥이 신앙의 둥지를 떠나도 하나님은 할 말 없다. 그런데 욥의 선택이 무엇인가? 놀랍고 또 놀랍다.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욥 6:10) 세상에나! 이런 아름다운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이렇게 표현하는 것도 부족하다. 하지만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표현이 없어 그냥 이렇게 쓴다. 욥, 정말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욥의 고백을 통해 나를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부끄럽기 그지 없다. 두레박 (질문) 나는 욥에 대하 논할 자격이 있는가? 손 우물 (한 줄 기도) 욥을 보면서 아름다운 신앙인이 어떤 존재인가를 봅니다.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쪼록 욥의 영성을 닮게 하소서. 나비물 (말씀의 실천) 욥기 중반부에 등장하는 욥의 자화상이 많이 흔들린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욥의 갖고 있었던 하나님의 신앙에 대한 순결성이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점이다. 힘들겠지만 나도 따라가 보자. 하늘바라기 (중보기도) 주님, 끝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던 욥의 영성을 닮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