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내가 제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신념이나 가치는? | 경배와 찬양 (WORSHOP)● 복음성가: 내가 너희를 ● 찬송가 585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본문 : 스가랴 3:1-5 ● 제목 : 가장 중요한 것 1) 하늘 법정이 무대인 본문에서 사탄이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정죄한 근거와 하나님이 변호한 근거는? ① 사탄의 정죄 내용 - ② 하나님의 변호 내용 - |
2) 하늘 법정에서 벌어진 여호수아에 대한 재판 결과와 판결문 내용은? 3) 3) 적용하기 ① 오늘을 사는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믿음은 무엇인가? ② 판결문에 따른 성도의 신앙적 삶의 태도는? ③ 위의 내용들을 점검하고 주군이 원하는 가치를 위해 합심하여 기도하자. | 사역하기 (WORK)교회 주간 중보기도 제목
1) 김경옥 권사의 수술을 비롯하여 육체적인 나약함이 있는 교우들의 치유를 위해. 2)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는 수험생들을 위해 (장종호, 장종훈, 홍수민, 서동혁) 3) 11월 18일 추수감사주일에 실시될 2018년 영혼 추수 축제에 각 지역 셀에서 섬기고 있는 태신자들의 영혼 추수를 위해 4) 하나님이 예비하신 신실한 부교역자 청빙을 위해 5) 가나안 성도들을 위하여, 이타적 사역을 위해서 6) 담임목사의 건강과 사역을 위해
주중 사역
1) 영혼 추수 축제 두 번째 주간 사역 인지하고 최선을 다하기. Ⓐ 21일 주간: 태신자 모두를 정리하여 기도 리스트에 올려 파악하여 기도하기 Ⓑ 28일 주간: 정해진 태신자들과 따뜻한 식사하기 Ⓒ 11월 4일 주간: 정해진 태신자들에게 사랑의 품앗이하기 Ⓓ 11월 11일 주간: 정해진 태신자들에게 복음의 메시지 전하기 Ⓔ 11월 18일 : 교회 예배 동행하기 2) 피선교지를 위해 중보하기 3) 공 예배 빠지지 않기 | 설교요약 (SUMMARY)설교 요약
본문: 스가랴 3:1-5 제목: 진짜로 중요한 것
오늘 우리 교우들과 읽은 스가랴 3장은 스가랴가 본 8가지의 환상 중에 네 번째에 해당 되는 환상을 기록한 기사입니다. 기사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스가랴가 보고 있는 4번째 환상의 배경은 하늘 법정입니다. 그 하늘 법정에서 재판이 열리고 있습니다. 피고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입니다. 변호사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검사는 사탄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건일지는 이렇습니다. 대제사장의 역할을 하였던 본문 3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아 구절에서 '더러운' 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쪼’입니다. '쪼' 라는 이 히브리어는 원래 '오물' 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이 의미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하여는 많은 구약학자들의 이견이 팽배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주류를 이루고 있는 주장 두 가지만 소개를 합니다. ① 대제사장으로 있었던 여호수아의 개별적인 죄를 상징한다는 주장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사장으로 있었던 여호수아가 가지고 있었던 윤리적이나 혹은 개인적인 범죄를 나타나는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② 여호수아 개인의 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 조상들의 죄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다시 말해서 열조가 지은 죄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1:6절을 보면 느헤미야의 간절한 회개 기도가 있습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 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 하여" 바로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를 한 것 같은 열조의 죄를 상징적으로 말한다는 성경해석입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슬픈 노래인 애가 서에서 남 왕국 유다의 멸망 원인을 이렇게 눈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 4:11-13절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분을 내시며 그의 맹렬한 진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지르사 그 터를 사르셨도다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이렇게 예언자와 느헤미야가 말했던 열조의 죄를 짊어지고 있는 상징으로 여호수아는 지금 더러운 옷을 입은 자가 되어 지금 하늘 법정에서 심문을 받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후자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지금 하늘 법정에서 서슬이 시퍼런 재판이 열리고 있습니다. 피고 여호수아는 죄인의 상징으로 더러운 옷을 입고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검사의 역할을 하는 사탄은 물러서지 않습니다. 사탄의 의지는 매우 강력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1절을 다시 봅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원래 하나님의 우편 보좌인 오른 쪽은 주님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사탄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주님이 힘이 없이 그 자리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사탄이 여호수아를 정죄하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원래 힐난하는 대명사인 사탄, 참소하는 자의 상징인 사탄이 얼마나 여호수아를 공격했을지는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눈 여겨 보아야 할 대목은 재판관이신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미리 말씀을 드리지만 감동 그 자체입니다. 2절을 곱씹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여호와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공격하고 있는 사탄에게 어떻게 반응하고 계십니까? 제일 먼저 하신 것이 사탄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런 뒤에 여호수아를 이렇게 부르십니다.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이렇게 부르신 것은 정말로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여호수아가 정말로 그렇게 '쪼'를 입고 있는 오물덩어리의 존재라고 보시지 않고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은 존재라고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포로기 후기의 작품으로 보이는 스가랴 시대에 바벨론 포로 이후 바사에 의해 지속적으로 짓눌려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에도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을 잊지 않고 핍박과 고난을 겪어내 영적으로 살아남은 자들의 상징으로 여호수아를 인정하신다는 하나님의 신원보증 도장 찍기 선언이 바로 2절입니다. 사탄은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은 제사장이기에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심판과 징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반대로 여호수아를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인내해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인 쳐주시는 상반된 의미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인정하신 하나님께서는 다시 두 번째로 여호수아에게 반응을 하시는 장면이 본문 4-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① 여호수아가 입고 있는 더러운 옷을 벗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②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 입히셨습니다. ③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습니다. 졸지에 여호수아는 신분의 변화를 얻게 되었고 죄를 용서함 받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재판에서 이겼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가랴 예언서에 기록된 이상의 본문 줄거리를 통하여 어떤 감동을 찾아볼 수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이 중요한 것이냐? 의 문제입니다. ※ 주님의 옳으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제사장이면 입어야 하는 옷이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흉패가 새겨진 에봇을 입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냥 제사장이 아닌 대제사장의 신분을 갖고 있었던 여호수아는 오물찌꺼기로 뒤범벅인 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보더라도 여호수아는 죄인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러기에 사탄은 그를 힐난할 수 있는 분명한 명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탄에 의해서 심각한 심판의 판결을 받아도 어찌할 없는 연약한 상태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 그를 누가 건져주셨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사탄의 고소에서 건져주셨을 뿐만이 아니라 그에게 타나가 남은 검게 그을린 나무라고 인정해주셨습니다. 그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죄 때문이 아니라 시련을 견디다가 얻은 상처라고 위로를 해 주신 것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추한 옷을 입고 움츠려 있는 그에게 더러운 옷을 벗겨 주시고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 입히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는 왕만이 쓸 수 있는 정결한 관을 씌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당신이 인정한 새로운 제사장으로 인 치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비극이 무엇일까요? 주님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영적 결여 현상입니다. 해서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주님이 나를 아시는 것으로 도무지 성차지 않아 하는 허함의 상태가 오늘 세상의 사람들은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최고의 위기요, 비극입니다. 요한복음 6:7절을 읽겠습니다.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상황이 어떤 상황입니까? 벳세다에 모여 있는 약 20,000명 정도로 추산되는 무리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빌립이 반응한 반응입니다. 200 데나리온의 물질이 있어도 여기 있는 사람들의 허기를 채우지 못한다는 빌립의 객설이었습니다. 빌립의 계산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정답입니다. 그런데 틀렸습니다. 빌립은 200 데나리온의 정답을 알고 있었지만 예수라는 정답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든 200데나리온을 채우기 위해 목숨을 겁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예수님과 동행한다는 신앙인도 이 목숨 걸기에는 예외가 없다는 점입니다. 떡을 추구하는 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예수님을 추구하는 것에는 건성이라는 점입니다. 정말로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주님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옳으신 주님으로 우리들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힐난하는 사탄의 정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사탄의 방법은 그랬으니 말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중요했던 것은 주님이 여호수아를 옳다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옳다고 인정하셨다면 옳은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이 옳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너를 참소하는 사탄의 공격은 옳지 않고 내가 인정하는 옳음이 옳음이라는 것입니다. 말장난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본문을 통해 배우는 교훈은 주님의 옳으심을 인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옳다는 것을 인정하면 그리스도인은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사랑하는 세인지체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이 옳다는 것(진리라는 것)입니다. 이 명제가 우리 교우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복음의 정수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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