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설교를 준비하는 데 한나 아렌트의 걸작인 ‘악의 평범성’이 필요하여 서고에서 찾았는데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아들이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에는 유진 피터슨이 쓴 ‘메시지 예언서’가 필요해서 찾아보니 역시 제 서고에는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이 또한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아들 서재로 옮겨 갔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 서재의 구약학 서고에 근래 블랭크가 많이 보입니다. 아들이 구약을 전공하고 있는데 본인의 경제적인 형편에는 구입하기가 부담스러워 아버지 것을 슬쩍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기에 벌어진 현상입니다. 지난 설 명절에 내려온 아들이 이번에도 구약에 관련된 서적 한 묶음을 가지고 갔습니다. 참 이상한 것은 아들놈이 가져간 책들은 현장에서 꼭 필요한 도서들이기에 내 딴에는 속앓이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세기를 연속 강해하는 이번 주 수요일 설교에는 친구가 쓴 ‘구약이 이상해요!’ 안에 담지 되어 있는 파라오에 대한 역설적 의미를 담아내야 하는 대목이 있어 참고해야 하는 데 아들이 가져갔으니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제 취미 중에 하나가 북 리뷰를 작성입니다. 이 작업을 함에 있어서 적어도 제가 일등공신의 도우미는 오래 전 정용섭 목사가 쓴 설교 비평 시리즈입니다. 허나 이것도 어느 날 갑작스럽게 도적맞았습니다. 아직은 현장에서 사역을 해야 하는 목사다 보니 고민이 깊어갑니다. 다시 사야 하나 때문입니다. 북 리뷰어로 나선지가 이제 제법 시간이 되었습니다. 미미하지만 나름 제 글을 읽어주는 약간의 팬덤도 생겼습니다. 북 리뷰 팔로워가 생겼다는 것은 그만큼 제게는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지한 독서하기,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글쓰기가 이제 제 사역의 중요한 한 필드가 되어 버린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제게 책은 너무 중요한 친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동기 목사가 사역하고 있는 소수 그룹 목회자 컨설팅(인위적 교회 부흥 리서치 사역이 결코 아님)프로그램에 일 년에 한 두 번씩 강사로 나섭니다. 제가 맡은 사역은 목회자의 독서하기와 글쓰기입니다. 일련의 사역을 맡아 섬기면서 느낀 점은 제 한 마디가 지쳐 있는 동역자들에게 때론 적지 않은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또 용기를 주는 미션임을 자각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적어도 오전 시간에는 서재를 떠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새물결플러스 대표인 김요한 목사가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말한 문장들을 심비에 새기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목사가 공부가 부족하면 이성 대신 감정에 호소한다. 진리 대신 전통을 들먹인다. 대화와 토론 대신 명령과 통제를 선택한다. 사실과 논리에 기반을 둔 설득과 감화 대신 협박과 윽박지름으로 일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김요한, “상식이 통하는 목사”, 새물결플러스,p,70.) 이런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목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공부하는 삶이라는 것에 나 또한 동의하기에 적어도 한 주간, 치열하게 공부하려고 노력합니다. 아들이 가져간 책들이 때론 아쉽고 섭섭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짧지 않은 시간에 다 건너 갈 것임을 알기에 아들에게 책값 내라고 하지 않고 책값 대신 제가 요구한 것이 있습니다. 아들, 책값은 반드시 읽는 거다. 다시 재론하지만 이래저래 고민이 깊어 갑니다. 아들에게 빼앗긴 책들을 다시 사야하나 말아야 하나 싶어. 아뿔싸, 근데 책값은 왜 이렇게 비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