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진 목사 개인적으로 운용하는 블로그가 있습니다. 블로그 활동을 시작한지가 10년 정도 밖에 안 되는 데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약 260,000명 정도가 다녀갔고, 팔로잉을 해주는 이웃들이 662명입니다. 중간 중간마다 팔로잉 요청을 해오는 분들 중에 상업적인 의도가 다분해 보이는 네티즌들을 거부하는 일도 일이다보니 이제는 나름 블로그가 좋은 글 나눔은 물론 제 목회의 철학을 이웃들과 함께 공유하는 도구로 자리 잡은 것 같아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지난 주간 블로그를 확인하는 중에 30년 전 농촌에서 막 단독목회를 시작할 즈음 만났던 만화가 부부의 딸로부터 블로그 방문을 받았습니다. 30년 전 기억이기에 이제는 희미해진 사역의 현장을 되새김질해주는 일이었습니다. 젊은 만화가 부부가 제가 섬기던 대곡 교회에 등록했습니다. 등록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농촌 교회 사역에서 새신자 등록은 기적 그 자체임을 재확인하고자 함입니다. 사정인 즉은 만화가 부부가 제가 사역하던 경남 밀양시 초동면 대곡리에 집을 짓고 작품 활동을 순수하게 하기 위해 정착한 것입니다. 그렇게 약 1년 정도 그 부부를 섬겼고 목사 안수를 받은 뒤에 아름다웠던 대곡교회를 뒤로 하고 저는 서울 서지방 소속 교회로 이임했습니다. 이후 그 부부는 막 사랑했던 담임목사 부부가 교회를 떠난 것 때문에 실망하여 많이 힘들어했다는 정도의 후담을 듣고 소식이 끊겼습니다. 지난 주간, 당시 그 만화가 부부의 어렸던 딸이 제 블로그에 남긴 대곡교회의 추억담 글을 발견하고 블로그에 방문하여 제게 댓글로 저임을 확인하고 반갑게 30년 만에 비록 사이버 상이기는 하지만 해후했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그 자매는 제 안부를 물으며 이제는 아련해진 30년 전 대곡교회의 정겹던 그 옛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행복해 했습니다. 듣고 보니 블로그에 댓글을 남겨놓은 자매의 부모님들에게 적지 않은 실망을 끼친 것 때문에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30년 전 만난 부부는 경상남도 깡촌 중에 깡촌인 밀양의 대곡리라는 시골 마을에 들어와 정착했는데 같은 표준말을 쓰는 젊은 전도사 부부가 반가웠을 것이고, 동시에 연배가 비슷한 전도사 부부와의 만남이 낯선 땅에서 적지 않은 위로였을 텐데 만난 지 1년 만에 서울로 가는 교역자에게 얼마나 큰 실망감이 있었을까 십분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딸과 글로 교제하면서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의미를 글로 읽고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조금만 더 대곡에서 사역을 연장했더라면 신앙의 성숙과 성장을 위해 작지만 도움을 주는 목회자로 기억에 있을 텐데 30년 전의 일을 반추하면서 나도 모르게 나는 빚진 목사라는 것을 다시금 추스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글 나눔에 제천에 조만간 내려와 인사를 하겠다는 자매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진 사랑의 빚을 갚도록 꼭 내려오세요.” 이래저래 목사는 사랑이라는 빚을 지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오늘을 사는 목사는 주어진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목회의 당위임에 틀림없습니다. 90-93년을 섬겼던 대곡교회는 제 목회 이력 중에 최고의 교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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