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오랜 시간 치매로 고생하시던 이동우 집사님을 주님의 나라로 첫 번째 파송했습니다. 회심 이후, 단 한 번의 새벽예배를 빠지지 않고 은혜를 사모하셨던 집사님, 군인 출신이셨기에 치매를 앓으셨지만 잠재의식에 남이 있는 습관 때문이었는지 제가 심방을 가면 언제나 거수경례로 인사하셨던 집사님, 그 경례 다시 한 번 받고 싶을 만큼 집사님이 보고 싶습니다. 유영남 권사님을 두 번째로 모셨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권사님의 부음은 제게 한 동안 아무 것도 하기 싫도록 만든 원인이었습니다. 급작스런 뇌출혈도 층격이었는데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악화의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어 쓰러지신지 불과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며 내 곁을 떠나셨던 권사님, 지금도 교회 차량을 운행하면서 권사님이 거주하셨던 아파트 쪽으로 갈 요량이면 너무나 권사님이 그리워집니다. 권사님, 유치하지만 하나 일러바칠 게요. 홍굴 매장에 가면 볶음밥 싫어하는 담임목사를 잊어버리고 딸은 공깃밥을 잘 안줘요. 나쁘죠. 권사님 같으면 일순위로 공깃밥 갖고 왔을 텐데. 하지만 지체들은 권사님이 볶아 주던 볶음밥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누가 해도 그 맛이 안 난다고 하네요. 강영자 권사님을 세 번째로 모셨습니다. 너무 길고 긴 시간, 요양원에 계셨기에 언젠가 심방을 갔다가 나오면서 힘들어하시는 권사님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강 권사님을 불러주세요. 너무 보기에 힘이 듭니다. 소천(召天)의 복을 주세요. 이제 그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수의 복을 받으셨지만 말년 노환으로 야위어 가시는 권사님을 보면서 담임목사는 이렇게 매정하게 기도를 했지 뭡니까? 당신이 살아계실 때, 종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으셔서 자식들이 용돈으로 쓰라고 주셨던 쌈짓돈을 모아 몸보신하라고 사주셨던 보신탕은 정말로 제 기력을 돋게 해준 보약이었습니다. 아무리 연세가 들어도 여성은 여성이기에, 담임목사가 심방을 간다는 기별을 받으시면 언제나 머리를 단장하셨던 단아한 권사님의 그 아름다움도 여전히 농익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치매로 인해 요양병원에서 요양하실 때, 타인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쇠함을 경험하면서도 제 얼굴을 보시면, 목사님이이임! 하고 길게 운을 떼시던 그 모습을 이제는 주님의 나라에서나 뵈올 것 같아 속상합니다. 지난 주간, 네 번째 장례를 집례 했습니다. 사랑했던 황홍일 집사님의 부고가 당도했기 때문입니다. 원주에서 우연히 만난 집사님, 이후 직장 관계로 서울로 이사하시면서 좋은 교회를 정하라는 몇 번의 청을 거절하고, 온라인 세인교우로 교회를 섬기겠다고 고집했던 집사님, 퇴직 후에 수빈이가 대학에 들어가면 제천으로 귀향해서 세인교회 성도가 될 꿈을 꾸셨던 집사님을 59세라는 너무 야속한 나이에 황망하게 잃게 되어 아프고 또 아픕니다. 에모리 대학 켄들러신학대학원의 토마스 롱 교수가 그랬다지요? 하나님 나라에 가면 제일 먼저 하나님 서재에 암 덩어리를 들고 가서 ‘하나님, 이게 도대체 뭐였습니까?’라고 항의조로 따질 거라고. 저 역시 그러고 싶은 마음 백입니다. 집사님, 안식하십시오. 홀로 남은 김성숙 집사와 수빈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섬기고 돌보겠습니다. 사무총회를 준비하면서 권사님, 집사님들의 명단을 정회원 명부에서 빼야하는 담임목사는 아픔이 절절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제가 사역의 은퇴를 하는 시간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파송할 지체들이 세인 공동체에 또 있을 것 같아 내심 겁이 납니다. 간절한 희망사항인데 남아 있는 지체들은 제 2대 담임목사가 모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펜데믹이라 그런가요? 2021년 한해는 교회를 개척한 이래, 가장 많은 장례를 집례 한 아픔이 배어 있는 해가 되었습니다. 빨리 이 해가 저물기를 고대합니다. 2021년이여, 빨리 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