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마치 폭발 직전의 폭주 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삶에는 간이역 같은 휴게소가 필요합니다.” (한동일, “라틴어수업”, 흐름 출판, p,259.)
지난 주간, 우연히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한 때 청년 사역으로 유명했던 교회에 관련한 영상물이었습니다. 내용인 즉은 지금 그 교회가 완전히 좌파 목사에게 장악되어 교회가 절단 나고 있다는 폭로성 영상이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선 지식으로는 지금 그 교회를 시무하는 담임자는 기독교계 내에서 대단히 보수적이고, 복음적이며 말씀 중심적인 사역을 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알고 있는데 그를 좌파로 몰아 마치 마녀사냥 식으로 몰고 가는 듯한 인상이 있어 관심을 갖고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내레이션을 맡은 이, 그러니까 이 영상을 제작한 당사자의 멘트에 살기(殺氣)가 느껴져 듣기에 거북했지만, 끝까지 집중해서 들었던 이유는 그가 생각하고 있는 다른 생각에 대해 고민해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가 청년 목회의 구심점이었던 교회의 담임목사를 좌파 목사로 찍어 공격한 이유는 그가 시무하는 교회에 강사로 초청한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김기석, 김근주, 손봉호 등등의 외부 강사를 초청해서 교회 강단을 더럽힌 죄 때문에 좌파 목사임에 틀림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제작자를 생각하다가 두 가지의 소회가 밀려왔습니다.
① 생각의 다름이 낭만적이지 않다. ② 사고의 마비는 재앙이다.
한동일 교수의 지론대로 내레이터는 마치 폭발직전의 기관차였습니다. 그가 거룩한 교회 강단을 빨갱이들로 넘쳐나게 한 모처 교회의 담임목사를 용서할 수 없다고 갈라치기하며 독설을 퍼붓는 영상을 보다가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지, 도대체 무엇이 이런 폐쇄성을 낳았지! 라는 소회에 도달하다보니 참담하기까지 했습니다. 기독교 근본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로 경계해야 하며, 두려워해야 하는 사상입니다.
“미래의 가장 위험한 충돌은 서구의 오만함, 이슬람의 편협함, 중화의 자존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할 것이다.”(새뮤얼 헌팅톤, “문명의 충돌”, 김영사,p,299.)
새뮤얼 헌팅톤이 진단한 예감은 무섭고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소름끼쳐 하는 것은 오만함과 편협함이 도진개진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헌팅톤이 지적한 세 가지는 분명히 단어는 다르지만 같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오싹하게 합니다.
바로 근본주의(fundamentalism)입니다.
어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정당에 20대 대통령 후보자 선정이 끝났습니다. 작위적인 구도로 이루어진 것 같은 유감천만의 대통령 후보자들의 면면을 보면서 또 한 동안 근본주의적인 폐쇄성을 갖고 폭주하는 기관차들처럼 여겨지는 저들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은 제게는 지옥 그 자체입니다. 어떤 사회학자가 상투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생각이 다른 것이 다른 것이지 나쁜 것이 아니다.”
백번 천 번 맞는 말이지만 대한민국은 생각이 다르면 혐오의 대상입니다. 교회는 간이역이 되어야 하는데 교회 안의 근본주의자들은 더 혹독합니다. 그들은 대화 자체가 안 되는 재앙 그 자체인 게 더 아픕니다. 생각이 다르면 매장시키는 이 시대에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지….
나는 오늘도 김기석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 행복하기 그지없는데 어쩌죠? 난 빨갱이가 아닌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