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잊혀진 계절’은 제가 신학교에 편입을 한 1982년에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습니다. 이제 너무 오래 시간이 지나서 가뭇가뭇하기는 하지만 어렴풋한 기억으로 공영방송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이 노래가 흘러나왔던 것이 제 뇌리에 있는 걸 보면 분명 그렇습니다. 당시는 신군부 독재의 공포가 서늘했던 때라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던 우울한 시대였기에 상당수 많은 사람들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서정적인 노래에 위로를 받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잊혀진 계절’은 참 좋은 멜로디와 가사로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때를 잘 만난 노래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때가 때이니 수십 년이 지난 노래이지만 꼭 이 맘 때가 되면 다시 듣고 싶은 노래 등등의 타이틀로 ‘잊혀진 계절’이 부활(?)합니다. 금년에도 여전히. 지난 주간, 우연히 유튜브에서 첼로로 연주하는 이 곡을 듣게 되었습니다. 첼로의 선율로 연주되는 곡에서 젊은 시절의 추억도 있고 해서 아름다운 곡에 흠뻑 빠져 보았습니다. 하지만 곡과 더불어 제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어떤 이의 댓글이었습니다. “이제 몇 번의 10월의 마지막 밤이 남아있을까요? 열심히 살아가야겠습니다. 가을이 많이 깊어 갑니다.” 이 댓글은 또 읽는 이들의 댓글로 이어졌는데 또 하나의 글에 저 역시 멈췄습니다. “그러게요. 몇 번 남았을까요? 잊을 수 없는 10월의 마지막 밤이”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에 흠뻑 빠져보려고 들어간 유튜브 채널에서 갑자기 진지해진 저를 보았습니다. 금년에 환갑을 지내고 보니 이런 글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댓글러들이 말한 그대로 진짜로 시월의 마지막 밤이 내게 몇 번이나 남았다고 정확하게 예측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나 역시 할 수 있는 말의 최선은 나또한 이것뿐이겠지요.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지난주에 읽었던 글 하나 소개합니다.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이성선 시인의 ‘별을 보아’라는 시를 작가 한희철 목사가 본인의 책에서 이렇게 소개하며 패러디를 했네요. “내 너무 주님을 쳐다보아/ 주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주님의 이름을 불러/ 주님의 이름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한희철, “고운 눈 내려 고운 땅 되다”, 겨자나무,p,15) 한 목사의 영혼이 너무 예뻐서 여러분에게 자랑하고 싶어졌습니다. 적어도 이 정도의 순결한 아름다움으로 사는 ‘크리스티아노스’이어야 ‘나’는 시월의 마지막 밤이 몇 번 남았든 상관없이 잘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야 그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주님, 소풍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오늘이 내게 주어진 최고의 시월의 마지막 날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