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

제목요게벳의 믿음2024-03-07 16:55
작성자 Level 10

2022 9 18일 주일 오전 예배 설교 (히브리서 강해 44)

 

본문히브리서 11:23

제목요게벳의 믿음

 

서론)

 

지난 주간에 읽은 글 말 하나 소개하며 설교를 시작합니다.

돌아가신 어머니처럼 아흔 둘 나이가 되어도 어머니가 그리워” (시바타 도요, “약해지지마”, 지식여행, 14.)

102세의 나이로 타계한 할머니 시인으로 유명한 시바타 도요가 약해지지 마에서 토해낸 읊조림입니다.

시인은 90세부터 시를 썼다고 하니까 정말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92세에 이르러 심장 깊은 곳에서 토해낸 이 시구가 가볍게 보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머니”, “엄마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영원성 때문일 것입니다.

영원한 소녀적인 감성을 갖고 있는 수녀 시인인 이해인 수녀가 암 수술을 받고 불렀던 엄마라는 사모곡 시집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해인, “엄마”, 샘터, 153)

엄마난 엄마가 내 앞에 계셔도 엄마가 보고 싶어요.”

동그랗게 웃음 짓는 동그란 아이를 끌어안는 동그란 그리움 속의 엄마.

그래나도 네가 내 앞에 있어도 네가 보고 싶단다.”

대만 출신의 신학자인 송천성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어머니는 하나님의 공동 창조자(co-Creator of God).” (김기석, “흔들리며 걷는 길”, 비아토르, 29)

어머니에 대한 극찬입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존경받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분명 어머니라는 존재일 것입니다.

성경도 이를 부인하지 않고 지지합니다.

오늘 본문은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본론)

 

오늘 주일은 본문을 단 1절만 택했습니다.

본문을 읽어보십시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모세가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모세의 탄생을 기록했는데 한 가지 수식어를 첨부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모세의 탄생을 왜 믿음의 탄생이라고 묘사했을까?

히브리서 저자는 이 당위성에 대해 이렇게 부연합니다.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이 후반절 구절을 보면 모세의 부모 이름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세가 등장하는 출처인 출애굽기에서 모세의 부모들이 어떤 사람들이었고또 그들의 정체성이 어떤 자들이었는지를 알려주는 소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먼저 출애굽기 6:20절을 봅니다.

아므람은 그들의 아버지의 누이 요게벳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그는 아론과 모세를 낳았으며 아므람의 나이는 백삼십칠 세였으며

모세의 아버지 이름은 아므람입니다.

어머니의 이름은 요게벳입니다.

주목할 것은 아므람이 아내로 맞이한 요게벳은 아므람의 고모였다는 점입니다.

근친결혼이 허락되던 당시 문화였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또 하나의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출애굽기 2:1절을 읽겠습니다.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

이 구절을 인용한다면 모세의 부모들의 출신성분은 레위 지파였다는 점입니다.

이상을 종합한다면 왜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저자가 이 표현을 썼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레위 지파의 혈통이 흐르는 부모들이 모세를 믿음으로 낳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역사적 배경을 잠시 설명 드리겠습니다.

요셉은 가나안의 기근이 들어 도무지 살 수 없었던 상태임을 알고 미리 7년 흉년을 대비해 양식을 준비해 두었고자신이 국무총리의 일을 하고 있는 이집트로 가족들을 집단 이주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이 때 이집트를 다스리던 왕국은 힉소스 왕국인데 이들은 셈족이었고 약 150년 간 이집트를 통치하였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차준희 교수는 이렇게 진단합니다.

요셉이 총리가 된 시기는 대략 18-16세기로 추정되는 데바로 그때가 이집트를 약 150년 간 지배했던 민족이 힉소스 족속이었다힉소스 민족은 이집트 사람들이 아니라 셈족 계통의 아시아인들이었고요셉 역시 셈족이었기에 힉소스 족속의 이집트 바로가 요셉을 총리로 발탁하는 일이 가능했다.”(차준희, “모세오경 다시 보기”, 성서유니온, 80)

하지만 힉소스 왕가는 나일강 원주민들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멸망하고 이집트는 원래 토착 이집트인들에 의해 지배를 당하게 되었고 힉소스 왕가 시절에 주류였던 요셉의 이스라엘은 졸지에 노예로 전락하는 비운을 겪게 됩니다.

나일강 원주민들이 지배하는 이집트는 투탕카멘부터 시작하여람세스 1세티 1세 그의 아들 람세스 2세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이집트를 형성했는데 이때의 희생양이 바로 출애굽기 1-2장에 등장하는 노예로 전락된 히브리 백성 즉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조명할 때 힉소스 왕가로부터 정권을 빼앗은 원 이집트 왕국은 국가적으로나당시 인구분포도나 등등의 여러 정치역학적인 차원에서 카운터파트였던 히브리 백성들을 그대로 놔 둘리 없었습니다.

중노동에 시달리게 하여 민족 부흥의 동력을 싹부터 잘라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통치자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의 인구가 좀처럼 줄지 않자 물리력으로 이 일을 제거하기 시작했는데 고센에 거하는 히브리 백성들의 게토 지역을 특별 관리 지역으로 지정하여 히브리 가정에서 아들이 태어난 것을 알면 무조건 남자 아이를 죽이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이 참혹한 시기에 요게벳과 아므람 사이에서 모세라는 남자 아이가 탄생한 것입니다.

남자 아이였기에 그 아이의 운명은 마땅히 살해를 당해야 하는 대상이었습니다.

먼저는 아이의 부모들이 모세의 탄생을 숨겼음은 당연합니다.

문제는 태어난 지 3개월이 되었을 때더 이상 아이의 울음소리를 막을 길이 없어 운명적인 결단을 합니다.

아들을 테바(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 강으로 떠내려 보내기를 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2:2-4절은 이렇게 보고합니다.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우리들이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드라마틱한 일을 시행한 것입니다.

이 구절을 공동번역으로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레위 가문에 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같은 레위 가문의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아내가 아기를 배어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너무나도 잘생겨서 석 달 동안을 숨겨서 길렀다그러다가 더 숨겨둘 수 없게 되자 왕골상자를 얻어다가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그 속에 아기를 뉘어 강가 갈대 숲 속에 놓아두었다그리고 아기의 누이가 멀찍이 서서 형편을 살피고 있었다.”

이 구절을 읽노라면 심장이 멈칫하는 것을 느낍니다.

나일 강으로 테바를 만들어 그 안에 아들을 담아 강으로 떠내려 보내는 엄마의 심정을 엄마들이여모성애로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

제 삼자의 객관적인 시각으로 느끼지 말고내 아들을 악어들이 득실대는 나일 강으로 떠내려 보낸다는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면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요게벳은 이 일을 행했다고 성경이 증언합니다.

어떻게 이 무시무시한 일을 요게벳은 진행했을까요?

도대체 무슨 동력이 이 일을 가능하게 했을까요?

저는 유진 피터슨 목사가 번역한 메시지 출애굽기 2:2절을 관심 있게 읽었습니다.

그녀가 그 아이에게 특별한 것이 있음을 보고세 달 동안 아이를 숨겨서 길렀다.”

유진 피터슨이 선택한 단어가 눈에 띄었습니다.

특별한 것이 있음을 보고

히브리어 원어 성경을 보면 유진 피터슨이 특별한 것이라고 해석한 단어가 바로 토브입니다.

토브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단어입니다.

창세기 1:10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에서 좋았더라가 바로 토브입니다.

이렇게 접목해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모세의 탄생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특별하게 좋은 시나리오였다고.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아주 중요한 은혜를 나눌 수 있습니다.

 

※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특별하게 계획하신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요게벳은 아들을 테바에 담아 악어들이 득실거리고파도가 만만치 않은 나일 강에 떠내려 보냈습니다.

세속적인 시각으로 보면 요게벳이 3개월 밖에 안 된 아들을 나일 강으로 떠내려 보낸 것은 아들을 그냥 사지로 몰아넣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매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게벳의 행위는 결코 세속의 관점에서 이해해서는 안 되는 영적인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하게 태어나게 한 아들 모세를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이라는 전적인 믿음이 있을 때만 가능한 행위였습니다.

출애굽기 2:4절은 이렇게 보고합니다.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자신의 딸인 미리암을 테바가 떠내려가는 곳으로 함께 보냈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아들 모세에게 행하실 특별한 일을 믿었기에 그 일을 보게 하려는 시도였음을 출애굽기 기자가 강력하게 시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특별하게 무언가를 계획하시고 일하실 것을 믿는 믿음이 있는 자는 대단히 중요한 은혜를 경험합니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믿음의 사람은 바로의 권력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깁니다.

믿음의 사람은 나에게 임한 절벽 같은 환경에서 하나님이 나를 받쳐 주실 것을 믿고 뛰어 내리는 자입니다.

요게벳은 바로의 폭력과 탄압보다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일하심이 더 크다는 것을 인정했던 믿음의 사람입니다.

미국인 선교사 부부가 월드비전 국제 구호팀장으로 일했던 한비야씨에게 보내준 편지에 담긴 글입니다.

천길 벼랑 끝 100미터 전하느님이 날 밀어내신다나를 긴장시키려고 그러시나? 10미터 전계속 밀어내신다이제 곧 그만두시겠지. 1미터 전더 나아갈 데가 없는데 설마 더 미시진 않을 거야벼랑 끝아니야하느님이 날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리가 없어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너무나 잘 아실 테니까그러나 하느님은 벼랑 끝자락에 간신히 서 있는 나를 아래로 밀어내셨다그때야 알았다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 89.)

아십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붙여주신 날개가 있다는 것을.

그 날개가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느부갓네살은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바벨론에서 가장 두드러진 두라 평지에 그 신상을 세워 낙성식에서 왕의 칙령을 반포합니다.

그 칙령의 내용을 다니엘 3:5-7절이 이렇게 증언합니다.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려 절하니라

大勢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세는 거스르기 어려운 힘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신상에게 절하는 것은 바벨론 도의 대세였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세 친구는 왕의 도를 거스릅니다.

그들이 갖고 있었던 하나님을 향한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그 대가는 풀무 불에 던져지는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바벨론에서 국가적인 직위를 갖고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포로들이었지만 국가에 도움이 된다는 정치적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대세를 어긴 그들을 왕의 권위가 용서할 리 없습니다.

그들은 풀무 불에 던져졌습니다.

헌데 다니엘서 기자는 풀무 불에 던져진 이후의 상황을 이렇게 덤덤히 보고합니다.

다니엘 3:24-25절입니다.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다니엘의 세 친구가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보호받았다는 전통적인 은혜는 오늘 설교에서 배제하십시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은혜이니까요.

그러나 한 가지는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풀무에 던져진 사람은 세 사람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한 사람이 더 있는 것처럼 보고합니다.

다시 다니엘 3:25절을 복기하십시다.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넷째의 모양을 다니엘 기자는 신의 아들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느헤미야 신학원의 김근주 박사는 그의 다니엘 주석서에서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았다신들의 아들은 아람어 바르 엘라한인데 이와 비슷한 히브리말 표현은 하나님의 아들 즉 브네 엘로힘을 들 수 있다이 표현은 천상의 존재로서 하나님 앞에서 시립해 있는 천사들을 가리킨다고 여겨진다.” (김근주, “다니엘처럼” 대장간, 107)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 앞에 시립(서 있는)되어 있는 천사를 풀무 불 안으로 특별히 급파하셨습니다,

더불어 하나님의 신적 권위를 위임받은 천사는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그 어떤 위협이 임하지 않도록 불의 세력을 막고 보호하였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특별히 보호하시는 은혜가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저와 여러분의 녹록하지 않은 현장에서 여전히 임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렇게 일하시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100% 믿었던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었기에 그들은 바로느부갓네살로 대변되는 세속적 힘을 향하여 이렇게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 3:16-18절을 읽겠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결론)

 

저는 이제 설교를 맺으려고 합니다.

요게벳은 하나님이 내 아들에게 특별한 일을 계획하셨고그러기에 내 아들을 사용하실 것이라는 믿음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러기에 요게벳은 주어진 참혹한 환경을 이겼습니다.

오늘우리들에게 주어진 환경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 요게벳의 시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요게벳의 시대는 물리적 강요가 있었던 폭력적인 환경의 시대였습니다.

오늘은 이런 폭력은 없지만 어떤 의미로 보면 물리적 폭력의 시대보다도 더 무서운 무신론의 시대이며참담하기 그지없는 호모 데우스의 시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이 처한 환경은 요게벳의 시대보다 더 참담한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세인 지체 여러분!

이런 시대의 한 복판에서 바로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남겨두었을까요?

나를 통해 특별한 일을 하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특별한 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펴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며동시에 이 믿음을 가진 자는 시대의 암울함을 뛰어넘습니다.

바라기는 나는 세인 지체 중 단 한 사람의 예외 없이 하나님이 나를 통해 특별한 일을 계획하시고 일하심을 믿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요게벳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