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지은이 | 김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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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출판사 | 문학동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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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19-07-31 16:3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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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연필로 쓰기”를 읽고 “아, 잠간 멈춰라. 조선 왕이 절을 멈추었다. 칸이 휘장을 들치고 일산 밖으로 나갔다. 칸은 바지춤을 내리고 단 아래쪽으로 오줌을 갈겼다. 바람이 불어 오줌 줄기가 길게 날렸다. 칸이 오줌을 털고 바지를 여미었다. 칸은 다시 일산으로 들어와 상 앞에 앉았다. 칸이 셋째 잔을 내렸다. 조선 왕은 절을 계속했다.” (김훈, “남한산성”, 학고재 간, p,356)
치를 떨었다. 마치 삼전도에서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를 하는 자가 인조가 아니라 바로 나인 듯 착각했기 때문이다. 이 치욕을 안겨 준 장본인은 카도 아니요, 인조도 아니라 김훈이었다.
“하루하루가 무서웠다. 오는 적보다 가는 적이 더 무서웠다. 적은 철수함으로써 세상의 무의미를 내 눈 앞에서 완성해 보이려는 듯 했다.” (김훈, “칼의 노래”, 생각의 나무 간, p,361)
길고 긴 전란을 통해 모든 인간성은 무너지고, 조국의 산천은 갈기갈기 찢어졌건만 전쟁이라는 괴물이 끝나가고 있는 것에 대한 허무함과 참담함을 작가는 이순신의 정서를 차용하여 이렇게 표했다.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언제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김훈, “공터에서”, 해냄 간, p,352)
내가 김훈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는 언제나 비주류에 대한 글 터치를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남루함이 좋아서 말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거의 실망시키지 않았다. ‘연필로 쓰기’를 읽었다. 저자와 필자는 약 10년 정도 세월의 부대낌으로 떨어져 있는데도 내 어릴 때 경험했던 일과 그리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연대감 때문에 왠지 행복했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글 맥을 따라가다 보니 이런 토해냄이 연속되었다.
“그래, 그랬다. 맞아. 그때는 그랬어!”
잠간 긴장한 것은 3부에 그린 근래에 벌어진 정치적 이슈에 대한 문학적 해석 때문에. 왜 이렇게 김훈답지 않게 별로지! 하지만 그럼에도 1부와 2부에서 만난 김훈은 내가 짝사랑하던 글쟁이의 모습을 보여주어 참 다행이다. 필자에게 엽기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밥과 똥’(pp,37-65)은 정말 김훈다웠다. 한국적 투박함에 눈물이 날 정도로 공감했다. 조금 모험을 걸자. 목사로 살면서 이런 글에 박수를 치다니 말이 되냐? 고 타박하겠지만 ‘눈을 치우며’(pp,305-317) 담긴 너무나 통속적인 글이 난 왜 이리 통쾌한지 모르겠다.
“아, **, 서울 공대를 톱으로 나온 녀석들이 못대가리 하나 못 박고, 닭 모가지를 못 비틀어. 아, 제미, 로스쿨 톱으로 나온 놈들이 펜치를 못 쥐고 도라이버를 못 돌려. 이게 사람이냐 오랑우탄이냐. 몸은 다 썩은 놈들이 어떻게 밤일을 해서 새끼를 낳는지.”(pp,309-310)
필자가 성남의 모란봉 시장에서 만난 행수로 보이는 이 장사꾼의 호들갑에 박수를 쳤다고 했다. 그 연설에 감동해서 당장 삽 한 자루를 샀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연설에 감동 받은 이유를 이렇게 부연했다.
“젊은이들이 컴퓨터와 스마트폰만을 들여다보고 살아서 도무지 연장을 쓸 줄 모르는 동물로 퇴화했으며, 살아 있는 몸의 기능을 상실했고, 인간성 영역이 쪼그라드는 현실을 그는 문명 비평적으로 개탄했다.” (p,309) 이번 저자의 글은 앞부분에 많은 밑줄을 그었다. 그럼에도 뒷부분의 글에도 예를 표해보기로 한다.
“아이들이 다 커서 제 밥벌이 하니까 돈을 달라고 하지 않고, 집에 돈 벌어다 주지 않아도 되니까 이게 늙음의 복이다.”(p,459) 한 구절 더 보자.
“늙어서 닥치는 모든 비정상이 곧 정상이다.”(p,460)
저자가 분명 위로받자고 한 말인데 필자는 너무 슬펐다. 지난 주간, 절친 한 명이 100세에도 왕성한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표현을 SNS 올렸다. 놀랍다 그 열정이. 헌데 필자는 결코 아니다. 절대로 100세까지 살고 싶지 않다. 100세까지 사는 게 저주지 복이겠는가!
작가가 막 이런 생각을 하게 해 준다. 그래서 김훈이 난 너무 좋다. 이제 그의 나이 70세다. 글을 길게 쓸 기력이 없다고 토로한 그에게 독자로서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100세까지 치매에 걸리지 말고 나에게 계속 글 읽는 기쁨을 주기를 말이다. 속내가 보였다. 그러려면 필자도 90까지는 살아야 하는데.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