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2018년 12월 30일 주간 사역2024-04-23 16:55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2018년 나에게 임한 가장 큰 은혜는?  

 
경배와 찬양 (WORSHOP)
●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  복음성가: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 플랜 A
● 본문 : 갈라디아서 1:13-17
1) 바울이 회심하기 이전의 정체성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⓵ 본문 13-14절을 참고
⓶ 사도행전 22:3-5절 참고  

2) 오늘 설교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플랜 A는 무엇이었는가?
⓵ 15절 전반절 참고 -
⓶ 15절 후반절-16절 전반절 참고  

3) 적용하기
⓵ 플랜 A에 따른 은혜에 대하여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할 사명은? : 본문 16절 전반절을 참고
⓶ 로마서 8:30-34절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고 감사하는 성찰의 시간을 갖자. 
⓷ 2018년 한 해 동안 함께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되돌아보며 2019년을 계획하자.  

 
사역하기 (WORK)

● 주간 중보 제목

1) 송구영신 예배가 은혜롭도록
2) 제 11회 사무총회가 아름다운 사역이 될 수 있도록
3) 2019년 한해가 간증이 있는 나날이 될 수 있도록
4) 주어지는 2019년의 일체의 사역과 섬김에 순종하는 선이 이루어지도록
5) 환우들과 대학 진학의 문을 열어야 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6) 담임목사의 사역을 위하여 


● 셀 사역하기

1) 서로 덕담하며 격려하기
2) 2019년 편성 셀에 순종하기
3) 2018년 섬겼던 피선교지를 위해 한 번 기도하기
4) 송구영신 독려하기 – 가족 전체가 함께 하는 예배
5) 섬겨주었던 셀 리더와 인턴을 위해 합심 기도하고 축복하기
5) 파스타로 교제하기   
  

 
설교요약 (SUMMARY)
본문: 갈라디아서 1:13-17
제목: 플랜 A

오늘 본문의 메시지를 바울이 강하게 역설한 이유의 배경에는 자신의 사도권을 가지고 시비를 걸고 있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인 거짓 교사들은 물론 그들의 말에 현혹되어 바울을 의심하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던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쌍으로 겨냥한 작심발언이자 항변이라는 배경을 갖고 있음을 알게 해 줍니다.
13-14절을 읽어봅니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바울은 먼저 자신이 회심하기 이전의 상태를 술회합니다. 그는 제일 먼저 자신도 유대교인이었음을 밝힙니다. 이 과거 정체성에 대한 드러냄은 다분히 지금 갈라디아 교회를 유린하고 있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을 겨냥한 발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바울은 본인이 그냥 유대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던 자였음을 고백합니다.
교회를 심히 박해한 이유는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었기 때문이고, 조상의 전통들을 지나치게 신뢰하여 그 전통을 파괴하는 자들에 대하여 분개했기 때문임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2:3-5절을 소개합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누가는 사도행전 9장과 22장 그리고 26장에서 바울이 회심했던 다메섹 간증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세 곳에서 공히 그의 출신 성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가말리엘이라는 당시 율법교사로 최고의 반열에 서 있었던 자의 수하에서 공부하던 철저한 바리새인임을 밝힙니다, 동시에 그는 그냥 유대교를 신봉하던 평범한 유대교인이 아니라 당시 유대교를 흔들고 있었던 신흥종교처럼 보였던 예수 공동체에 속해 있는 자들을 발본색원하여 척결하는 선봉에 섰던 자임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바울이 회심하기 이전의 종교적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대교적인 열심을 갖고 있었던 자기가 어떤 사람으로 변화되었는지를 본문에서 이어 간증합니다. 이어지는 본문 15-16절 전반절입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다메섹 회심 사건이었습니다.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자들을 색출하고 체포하여 예루살렘으로 압송할 수 있는 권리까지 부여받은 사울이 다메섹에 거의 이르렀을 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건을 우리 독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하여 그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 받았음도 우리는 익히 사도행전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신학화하여 표현한 내용이 바로 조금 전에 읽어드린 15-16절 전반절의 본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바울을 그의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하신 예정으로, 동시에 그를 사도로 부르신 소명의 근거로 제시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택하셨습니다. 택함과 동시에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로 예정하시기까지 한 것입니다. 이상을 통한 이해를 전제할 때 오늘 설교의 은혜가 있습니다.
※ 바울을 예정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플랜 A는 오늘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플랜 A라는 교훈입니다.
그렇다면 플랜 A는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1)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인 은혜로 당신과 나를 지명하신 것입니다.
15절 전반절을 다시 봅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이 구절에 등장하는 헬라어 ‘아포리조’는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이런 뜻입니다. 큰 운동장에 금을 그어 놓고 특별하게 한 쪽에 따로 세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표준 새번역 성경에는 이렇게 15절 전반절을 번역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나를 모태로부터 따로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SET OFF’ 즉 구별하여 따로 떼어 놓으신 것입니다.  목회를 하는 동안 현장에서 예정론이라는 신학 사상에 대하여 논할 때면 저는 언제나 비판적이었습니다. 인간의 이성적 틀로 해석할 때 예정론은 어떤 의미로 볼 때 상당히 이기적인 신학사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정론을 인간의 측면이 아닌 캘빈의 원래 의도한 대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측면으로 해석할 때 너무나 큰 은혜요 감동의 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해서 저는 오늘 설교를 인간적인 면에서 해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큰 틀에서 해석한 것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외형적인 조건이나 삶의 조각조각을 들추어 내 볼 때 하나님으로부터 지명당할 그 무언가를 갖고 있는 존재가 결코 아닙니다. 언젠가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아브라함들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만한 자격이 있었습니까? 천만에 말씀입니다. 그는 하등의 조건을 구비한 자가 아닙니다. 도리어 외형적 삶의 틀로 비추어 보면 믿음의 조상은 고사하고 믿음의 반열에서조차 탈락되기 십상인 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하나님이 지명하신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까? 수백 번 강조했지만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비교해 볼 때 저와 여러 은 어떻습니까? 여기에 대한 답으로 쓰이는 우리나라 말은 참 많습니다. 오십보백보입니다. 도찐개찐입니다. 초록이 동색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의 구원을 받게 된 것, 지명당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 때문입니다.플랜 A는 주권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지명당한 것입니다. 이것을 일찍이 신탁으로 받았던 제 2 이사야는 이렇게 예고하였던 것입니다. 이사야 41:8-9절입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이것이 은혜로 다가오는 자는 플랜 A의 주인공인 것입니다. 2018년 한 해, 이 은혜의 도가니 안에 저와 여러분이 있었다는 것에 정녕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2) 플랜 A의 두 번째 은혜는 부르신 뒤에 나와 함께 일하자고 하신 것입니다.

본문 15절 후반절부터 16절 전반절을 봅니다.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바울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은혜로 나를 부르셨기에 자신은 부름 받은 자라는 분명한 소명의식을 천명했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 부름 받은 자에서 만족하지 않고 주께서 함께 일하자고 겹겹의 소명을 주셨다는 강력한 소명의식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내 사도권을 갖고 시시비비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사도권을 저울질함으로서 나를 난도질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인간적인 외형으로 자신을 내세울 것이 없었습니다.
바울의 영적 자존감이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성경적 내증이 있습니다. 로마서 8:30-34절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그렇습니다. 주님이 나를 부르신 것은 나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나를 대적하는 자가 있으면 이기게 하십니다. 나를 송사하는 자가 있으면 나에게 죄 없다고 변호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가만히 보면 저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교우들의 면면을 보더라도 하나님의 이 은혜에서 빗겨나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구원 받은 것도 기적이지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도 또 다른 기적입니다. 본문 16절을 다시 봅니다.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이 구절에서 저에게 다가온 감동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기뻐하셨을 때에’입니다. 주군이신 예수께서 언제 기뻐하셨습니까? 바울이 이방인들의 사도로 부름을 받고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울의 입을 통해 증거 될 때 주님은 기뻐하셨다고 바울은 술회하고 있습니다. 부르시고 같이 일하자고 하신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바울이 그렇게 살아냈을 때 주님은 기뻐하셨다는 말이 아닙니까? 플랜 A는 주님이 나를 위해 세우신 가장 완벽한 계획입니다. 혹시나 실패할까 하여 세운 플랜 B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위해 세우신 나를 부르시고 나에게 같이 일하자고 청하신 주님의 그 뜻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입니다. 그렇게 응답하여 그 분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든 교우들이 플랜 A에 합당하게 반응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세인 지체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