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할머니 댁에 가면 뒷간 앞 수돗가에 녹이 슨 펌프가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이라 쉽게 보진 못하는 것이지만 어린 마음에 그 펌프에서 나오는 물이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마른 펌프에 물 한 바가지를 부어 넣고 손잡이를 아래로 쭉 내렸다 올렸다 펌프질을 하면 물 한방울 보이지 않았던 펌프의 입에서 콸콸콸 쏟아져 내리는 시원한 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자주 사용하지 않던 펌프에서 물을 길어 내려면 물이 차 오를 때까지 물을 붓고 몇 번의 펌프질을 해야 하는 것처럼 물이 채워져 있지 않던 펌프가 마치 제 자신 같았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펌프질을 해 대듯 예전에 이영미 집사님께서 홈페이지 사랑방에 ‘◯◯◯ 널 뛰듯’바쁘게 움직이셨다는 그 표현이 지금 딱 제 맘이었습니다.
물을 싹싹 핧아 펌프에 넣는 마음으로 책을 보고 찾고 읽고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내게 없는 것이 목사님께 있지?’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목양실 문을 열어 보니 성경책이 종류대로, 주석책이 종류대로, 하여간 종류대로 였습니다.
목양실의 서재가 마치 창세기의 천지창조의 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보고 싶은 책을 한권 두권 보다가 책을 들고 나왔습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여기 보물창고 였잖아!’
사무실 문을 닫고 나오면서 대나무 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외친 사람처럼 외치고 싶은 충동이 났습니다.
“목사님 방은 보물창고다!”
그런데 진짜 보물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목사님께서 안 계신 열흘 동안 염려치 않으시도록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시며 사역하는 세인의 식구들입니다.
피곤함 가운데도 차량을 운행하시고, 평상시엔 잘 드리지 못했던 새벽기도의 자리를 사수하며, 중보기도에 힘쓰고, 모이기에 최선을 다하시려는 세인의 지체들이 그렇게 목사님께서 아끼시는 보물이라는 사실을 체감하였습니다. 진짜 보물은 바로 우리 세인의 지체들이십니다.
“목사님, 방의 보물은 티 않나게 잘보고 제자리에 꽂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진짜 보물은 귀신도 손 못타게 안전하게 잘 있습니다. 어서 옵소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