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며칠 잠을 설쳤습니다. 동네에서 짖어대는 개소리가 너무 심한 탓이었습니다. 그것도 늦은 밤과 새벽 사이에 짖어대는 울음소리가 극에 달해 더위로 인해 창문을 닫고 잘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저로서는 속수무책 당해야 했습니다. 개들이 왜 짖어대는지에 대한 선 지식이 없는 문외한 저로서는 그냥 밤새 짖어대는 개소리에 밤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대단히 유감스러운 것은 그렇게 짖어대는 개들을 방치하고 있는 견주(犬主)의 태도입니다. 이웃들이 당해야 하는 정신적인 피해가 산술적으로 계산하지 못할 만큼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견주가 계속 며칠 동안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은 매우 불쾌하고 유감천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초여름에는 방치되고 있는 들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매우 신경을 날카롭게 하더니, 고양이들이 조금 자자해지자 여름 한복판에는 개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서 수면권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웬일인지 어제, 오늘은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저처럼 소음 공해로 인해 심하게 고통 받는 누군가가 민원을 넣은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조용해진 것은 마냥 신기하고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말부터, 복병이 또 등장했습니다. 매미 소리입니다. 도시에 살고 있는 제가 마치 농촌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매미 소리들이 우렁찹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나름의 녹지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아 생긴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고양이, 개에 이어 이번에는 매미가 단잠을 앗아가 버리는 소음 공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뉴스를 보지 않으려고 한지 벌써 수개월을 지나고 있습니다. 열거한 동물의 소음 공해도 만만치 않은데, 정권을 잡은 사람들에게서 들리는 소음은 견딜 수 없는 썩는 냄새가 진동하기에 더더욱 그렇게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고, 서로가 서로를 질시하고, 어제의 동무가 오늘의 적으로 변하며, 무엇보다도 저들의 입을 통해서 내뱉어지는 소리 하나하나가 모두 소음공해이기에 기피하려 했습니다. 삼 주전부터, 한희철 목사의 묵상 노트를 가지고 조금은 진보적이고 지성적인 묵상을 시작했습니다. 사역을 시작하면서, 작은 소리를 들으려고 집중했습니다. 목사는 대중적인 메시지를 만들어내야 하고, 보편적인 목소리를 내야하기에, 자칫 잘못하면 간과할 수 있는 작은 목소리에 집중하다보니 큰소리를 더 많이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밤마다 들리는 동물들의 울음소리도 공해 중의 공해이지만, 작은 소리를 함몰해가는 큰소리는 정말로 경계해야 할 소음이자 적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이 찬양의 가사가 마음을 적십니다.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