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목사로 30여 년 이상을 살면서, 불뚝 버릇이 하나 생겼습니다. 몇 몇 대화를 나누다가 도저히 생각을 같이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면 뒤로 도망치는 습관입니다. 몇 분 몇 초도 아까운데 지치게 만드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속상해서입니다. 반면, 나를 타격하고, 나에게 강펀치를 날리지만 내게 선한 영혼의 울림을 던지는 누군가를 만나면 외로워서 그런지 그에게 더 집착하게 되는 또 다른 습관도 만들어졌습니다. 후자가 바로 한희철 목사입니다. 단독목회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30년 동안, 매 주일 ‘목양터의 이야기 마당’이라는 지면을 만들어 소소하고 촌스러운 글을 남겨 왔습니다. 무모하지만 이 도전을 시작하게 동기 부여를 하게 해 준 동역자가 한희철 목사였습니다. 30대 초반, ‘내가 선 이곳은’, ‘하나님은 머슴도 안 살아봤나?’ 등등 그의 목양일기를 만나면서 나와는 1년 연배가 있는 그가 남긴 글처럼, 나도 무언가를 남겨야 되지 않을까 하는 거룩한 욕심이 바로 ‘목양터 이야기 마당’이었습니다. 그리고 3년 전 출간한 졸저 ‘시골목사의 목양심서’(동연 간)가 그 결과물입니다. 결국 단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한희철 목사는 내게는 정서상 글벗이자, 영적인 스펙트럼으로 보면 영혼의 길벗이기도 합니다. 7월부터 그가 집필한 ‘물은 여기에 있다’라는 제하의 묵상 노트를 공유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그와 함께 ‘다바르’ 사모하기의 보폭을 맞추고 있는데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금요일에는 창세기 13:10절을 붙들었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이 말씀을 붙든 이유는 ‘같았더라’에 필이 꽂혔기 때문입니다. ‘같았다’ (be like)는 ‘이다’(be)가 아니기에 묵상 제목을 소돔은 소돔이지, 소돔을 여호와의 동산 같은 것으로 몰고 가는 유사(pseudo)품에 속지 않는 신앙인이 되고 싶음을 묵상하며 행복한 영적 감동에 젖어 보았습니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말씀 묵상처럼 행복한 사역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교우들과 함께 나누고 있는 ‘생명의 삶’은 ‘생명의 삶’대로 충분한 은혜를 주지만, 평신도들과 달리 목회자인 저는 또 다른 하나의 묵상할만한 가치의 묵상집이 옆에 있어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한희철 목사의 깊은 영성이 녹아져 있고,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기를 종용하는 여러 큐티 노트들이 난무해 있는 오늘, ‘물은 여기에 있다’를 만난 저는 또 다른 행복 여행 중입니다. 이 묵상 집으로 여행하는 제 천로역정의 노정도 행복하지만, 한희철 목사가 매일 남겨놓은 꽃물(말씀 새기기), 마중물(말씀 묵상), 두레박(질문하기), 나비물(말씀 실천하기), 하늘바라기(중보기도)에서 금과옥조를 발견하는 영적 희열은 놀랍습니다. 이 감동의 글을 남겨준 한희철 목사가 건강하기를 화살기도 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