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제목[수요 예배] 문을 닫으시니라2024-03-08 17:10
작성자 Level 10

2021년 8월 25일 수요 저녁 기도회 (창세기 서른네 번째 강해)

 

본문창세기 7:13-16

제목문을 닫으시니라

 

백석대학교의 송병현 교수는 본인의 엑스포지멘터리 창세기 주석에서 창세기라는 책이 4종류의 편집자들에 의해 작성된 문서임을 알려줍니다.

벨 하우젠이라는 학자가 제일 먼저 언급한 문서 비평의 산물이기도 한 데 그 4종류의 편집문서를 송 교수는 물론 학자들은 J,E,D,P 라고 부르기로 약속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열거한 4종류의 편집 문서 중에 가장 늦게 참여한 P문서 즉 제사장 문서입니다.

마지막 문서인 P문서는 주전 550-450년대에 이스라엘의 초대 제사장이었던 아론 계열의 제사장 여럿에 의해 집필되고 개정되었으며훗날 율법학자 에스라가 오경에 도입했다.” (송병현엑스포지멘터리 창세기“, 국제제자훈련원, p,26.)

송 교수의 의견에 동의한다면 이런 추론이 가능합니다.

문서가 편집될 당시의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국가적 상황으로 인해 적지 않은 멘붕 상태였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잘 아시는 것처럼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시기가 주전 587년입니다.

그리고 바벨론 포로시기를 끝내고 유다의 포로들이 부분적으로나마 고국으로 돌아온 해가 고레스 원년이니까 주전 538년이었고이후 제 스룹바벨 성전의 재건이 주전 516년에동시에 느헤미야에 의해서 주도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주전 445년이 완성되었던 것을 상기한다면 P문서가 편집될 당시의 이스라엘 공동체는 대단히 엄청난 격변의 시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에스라느헤미야라는 책을 역대기 역사서라고 분류하는 데 역대기 역사서를 기록한 역사학자들의 목표는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정체성 회복이 최고의 화두였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모세 오경의 편집자들 중에 P문서의 편집자들 역시 선조의 기록을 모집하며 편집한 가장 중요한 테마가 이스라엘 정체성의 회복이었을 것은 그러므로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누구인가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이것이 최고의 관심이었습니다.

P문서 편집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선민 공동체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싶었으며 이로 인해 노아의 홍수 기사도 이 맥락에서 접근하고 싶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본문 13-15절을 봅니다.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이 구절은 하나님이 명하신 하명에 노아가 그대로 순종했다는 증거입니다.

J기자의 언급과 P기자의 언급이 공히 같습니다.

창세기 6:22절입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J문서)

창세기 7:5절입니다.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P문서)

이제 노아가 할 일은 끝났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본문 16절에서 보고합니다.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주목할 문장은 이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이와 관련한 여러 주석을 살피다가 이희학 교수의 주석이 제 마음에 족했습니다.

노아가 만든 테바의 문을 닫으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셨다고 보고한 대목을 이 교수가 이렇게 주해했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 홍수 사건의 주관자이심을 강하게 암시하려는 목적을 지닌다노아의 영웅적인 행위나 자신이 소유한 특별한 지식을 통해 구원 받은 자가 아니라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의해 구원을 받은 자이다홍수에 의한 심판도 하나님이 하신 것이고노아와 그의 가족의 구원도 하나님이 직접 주도하셨다는 것이다본문에서 홍수 사건은 철저히 하나님의 주도 하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희학, “인간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 행동-창세기 1-11장의 신학”, 대한기독교서회, 229-230.)

테바의 문을 닫아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관점으로 주석한 이 교수의 해석은 짜릿하기까지 했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임하자 이런 영적 감동이 제게 임했습니다.

 

1) 다시 각인합시다나의 나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사야 43:1-3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우리가 잘 알듯이 제 이사야(40-55장을 저술)는 제 1이사야(1-39장을 저술)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이전 설교를 통해 말씀드린 적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제 이사야는 유다 멸망 이전의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활동하면서 패역한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합니다.

반면 제 이사야는 바벨론을 배경으로 활동하면서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회복시킬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 천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사야 43장은 제 이사야의 메시지이기에 희망의 노래일 것입니다.

특히 43:2절은 압권입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사실 따지고 보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70년의 피식민지 백성으로 살았던 유다 포로 공동체가 70년이라는 포로기 시대에 무엇이 변했거나참회했거나 돌이켰다는 특별한 증거들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년이라는 기한이 차자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적 통치와 사랑을 베푸셔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십니다.

유다 공동체는 아무 것도 행한 것이 없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주심과 일하심의 결과가 포로 귀환이었습니다.

모름지기 성도라면 가져야 하는 절대 불변의 정체성이 있어야 합니다.

내 신앙의 문을 여닫는 분이 주님이시라는 정체성입니다.

이 고백을 하는 자가 이 토로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0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내 인생 여정에서 내가 사는 동안에 내 문을 내가 닫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닫으시면 안전합니다.

요한계시록 3:7-8절에 보면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시는 칭찬에서 요한에게 이르셨던 메시지가 다음과 같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위로의 위로를 받습니다.

다윗의 열쇠를 갖고 계신 주님의 고유 권한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교회의 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십니다.

반면 주님이 닫으시면 열 자가 없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님의 교회는 주님만이 주인이시라는 강력한 천명입니다.

바울이 선포했습니다.

에베소서 1:22-23절입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그렇습니다.

테바의 운명은 주께 달려 있습니다.

테바는 무동력 선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테바 안에 있는 노아와 식솔들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절망입니까?

그럴 리가 있습니까?

도리어 감사의 감사 조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테바의 문을 주님이 닫으셨기에 주님은 반드시 테바의 문을 열도록 하실 것이며문이 닫혀 있는 동안 그 어떤 어려움도 주님이 살피고 계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평신도 시절찬송가 373장을 맨 처음 보았을 때 고개를 갸우뚱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2절 가사 때문이었습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평신도 시절전혀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신학적 의도를 1도 몰랐을 때 억지로 하나님께 항의했던 것이 이 대목입니다.

하나님풍랑이 있는데 어떻게 더 빨리 갑니까말이 됩니까지체되지요지체.”

그러나 신학을 하고하나님의 속성과 일하심을 공부하고 나서야 이 가사를 만든 톰 레이드 목사의 신앙고백이 얼마나 감동으로 다가오는지 절감했습니다.

테바는 풍랑이 임할 때잘못하면 난파될 수 있는 무동력 선이었습니다.

테바는 잘못하다가는 암초에도 걸릴 수 있고바위에 부딪칠 수도 있고절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무동력 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 속에서도 테바는 40일의 여정을 안전하게 항해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테바의 문을 닫으신 주님께서 풍랑도 테바를 건드리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문을 닫으셨다는 것은 단순히 문을 닫으신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문을 닫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테바를 책임지신다는 전적인 언약의 실천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승선한 내 심령의 교회를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믿음으로 온전하게 설 수 있는 교우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오늘 본문 설교를 통하여 마지막 레마를 받겠습니다.

 

2)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뒤에서 응원하시는 유일한 도움이십니다.

 

16절 본문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이 구절을 보면서 또 하나 제게 레마로 다가온 은혜가 있습니다.

테바의 문이 열려 있을 때노아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하명을 실천했습니다.

동물의 암수 하나까지 완벽하게 들어갔는지를 노아는 집중해서 보았습니다.

이윽고 하명의 사명이 완수된 것을 노아는 확인했습니다.

노아가 그 다음에 무엇을 하려고 했을까요?

본인 스스로가 마지막으로 테바 안에 들어가서 문을 닫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렇지 않음을 설명합니다.

노아의 뒤에 계셨던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기자는 전율할 만큼 기가 막힌 기록을 16절에 남겨 놓았습니다.

이제는 노아를 하나님이 직접 들여보내신 것입니다.

영어성경 NASV (NEW AMERICAN STANDARD VERSION)의 기록이 제게는 감동의 극치로 다가왔습니다."And those entered, male and female of all flesh entered, as God had commended him: and the Lord closed it behind him."

들어간 것들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암컷과 수컷이었다곧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갔다그러자 여호와께서는 노아 뒤에 계시다가 테바를 닫으셨다.”

제가 이 구절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이 이유 때문입니다.

개역개정판 번역대로 그를 들여보내고와 NASV의 번역대로 하나님이 노아 뒤에 계셨다.” 때문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노아를 지켜보고 계셨다는 말입니다.

뒷짐 지고 계시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감찰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를 들여보냈다는 구절에서 신명기 1:31절의 말씀과 동시에 연상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노아를 테바 안으로 들여보내셨을까?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그렇지 않겠습니까?

노아야수고했다그를 번쩍 안으셔서 테바 안으로 들여보내셨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시편 121:5-7절에서 노래한 시인의 노래는 정답입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뒤에서 응원하시는 유일한 도움이십니다.

저는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복음성가의 가사를 오늘 설교의 마무리로 고백하며 읊조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평안히 길을 갈 때 보이지 않아도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 때면

다가와 손 내미시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때때로 뒤돌아보면 여전히 계신 주

잔잔한 미소로 바라보시며

나를 재촉하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이 찬양의 고백대로 사시면서 승리하는 세인 교우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