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제목읽는다는 것2024-06-11 09:47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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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지은이 강영안
ㆍ출판사 IVP
ㆍ작성일 2020-08-24 14:31:48

 

강영안 교수의 “읽는다는 것”(IVP 간)을 읽고


“이해를 한다는 것은 그 사태, 그 주제 가운데서 스스로를 이해한다는 것이다.”(p,189)

저자가 철학자 한스 케오르크 가다머의 말을 인용한 문장을 읽다가 무릎을 쳤다. 왜? 책 읽기라는 순례(평자는 독서를 순례라고 표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책을 읽다보면 어마어마한 거룩의 경지에 들어서기에 말이다.)의 가장 위대한 목적지가 ‘나를 이해하는 일’이라는 그의 말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크리스천 철학자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저자는 너무 탁월한 독서론을 저서에서 펼친다. 특히 저자가 말하려는 읽기의 정점은 독특하게 성경(성서)이다. 성경 읽기에 대한 집요한 그의 길라잡이 역할은 너무 천박해진 기독교계에 있는 일체의 사람들이 꼭 한 번 귀담아 들어야 할 시금석의 역할을 해주는 수작이기에 소개하고 싶어졌다.
제일 먼저 나누고 싶은 담론은 저자가 성경 읽기에 있어서 크리스천들이 읽고 해석하는 두 가지의 루트 즉 ‘객관적 성경 읽기’와 ‘주관적 성경 읽기’ 중 취사선택해야 할 경우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인가에 대한 의미 있는 저자의 성찰이다. 그는 이렇게 답을 제시한다.
“인격적 읽기”이어야 한다. 이 어휘는 전자와 후자 모두를 융합한 단어다.
인격적 읽기의 대표적인 주인공으로 디트리히 본회퍼를 소개한다. 히틀러의 광기에 휘둘림을 당하던 독일교회가 너무 무능력하던 그 시절, 본회퍼를 아끼는 라인홀드 니버를 비롯한 친구들이 위기에 있는 그를 미국으로 초청하고, 미국에 도착한 그를 다시는 독일로 돌아기지 못하도록 여러 시도들을 한다. 미국에서 정착만이 그를 보호하는 일이었기에 말이다. 그의 천재적이자 지성적인 신학의 기여가 중단되지 않도록 어떻게 하든 본회퍼를 붙잡으려는 치열한 노력들을 미국의 지성들이 전개한 셈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들이 아는 것처럼 그는 미국에서 안전한 신학교수의 직을 포기하고 죽음이 기다리는 독일로 다시 돌아갔고, 나치즘에 대항하다가 결국 히틀러에 의해 너무나도 아까운 죽음을 당한다.
바로 이 격동의 치열한 과정에서 본회퍼가 읽은 디모데후서 4:9절, 21절은 그의 인격적 성서 읽기의 주제가 되었다고 저자는 평한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9절)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21절 1f)

이 말씀을 읽은 본회퍼는 라인홀드 니버에게 이런 편지를 쓴다.

“미국으로 건너온 것은 나의 실수였습니다. 나는 민족사의 이 힘든 시기를 독일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겪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시대의 시련을 나의 민족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나는 전후 독일에서 그리스도교적인 삶을 복구하는 일에 참여할 권리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p,200)

저자는 이런 일화를 소개하며 본회퍼의 디모데후서 4장 읽기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본회퍼의 성경 읽기는 독일과 독일교회가 처한 현실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자신의 소명과 책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성경 말씀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의 삶을 그대로 내어놓는 방식의 읽기였다.”(p,202)

오늘 한국교회에 필요한 성경읽기는 저자가 일갈한 인격적 성경 읽기라는 말에 평자는 100% 동의한다.

“일상이 곧 광야”라고 말한다.(p,250)

이 또한 선명한 통찰이다. 내 일상이 광야라면 곧 고난과 축복이 함께 내재된 곳이 일상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 광야라는 일상에서 올곧고 바른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면 반드시 성경을 읽되 인격적으로 읽어야 한다.  바른 성경 읽기 혹은 인격적 성경 읽기라는 화두에 접근하면서 평자는 저자가 소개한 칼 바르트의 고언을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성경의 내용은 하나님에 관한 인간의 바른 생각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바른 생각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에 관하여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를 말해주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는지 말해주며,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어떻게 찾을지를 말해 주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길을 어떻게 찾아 발견했는지를 말해준다.”(p,240)

엄청난 성찰이다.

저자는 이 책의 앞부분에서 책 읽는 방법 특히 성경을 읽는 방법에 대하여 ‘렉시오디비나’ 라는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독서 방법에 대하여 소개한다. (2장) 더불어 읽기에 대한 철학적 해석의 방법론도 제시한다. (5장) 더 많은 지적 욕구가 발동한 글벗이라면 반드시 이 부분도 섭렵하기를 권하고 싶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이 말했던 흔적을 뒤적거리며 찾아냈다.

“누가 사람이냐? 하느님의의 꿈과 계획을 함께 품고 해산의 고통을 겪는 존재, 세계를 권하고 땅과 하늘을 화해시키는 하나님의 꿈, 그 분의 참된 형상이며 그 분의 지혜, 정의, 그리고 사랑을 반영하는 인류에 대한 그분의 꿈을 함께 꾸는 존재다. 하느님의 꿈은 그분만의 꿈일 수 없다. 그 꿈은 계속되는 창조의 드라마에서 한 배역을 담당한 인간이 함께 꾸어야 하는 꿈이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 “누가 사람이냐”, 이현주 역, 한국기독교연구소,p,151.)

이 위대한 드라마를 써가는 자가 헤셀의 말대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의 방법이자 통로인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당위이자, 의무이다. 중요한 것은 그냥 읽어서는 안 된다. 잘 읽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걷고 싶어 하는 동선(動線)이니까.
 

코로나 19는 평자를 서재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동인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