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4월 28일 주간 사역2024-04-23 16:58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당신에게 교회는 어떤 의미인가?  

 
경배와 찬양 (WORSHOP)

● 찬송가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이상적인 교회
● 본문 : 사도행전 11:9-26
1) 사도행전 1:8을 읽어보자.
⓵ 안디옥 교회는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가?
⓶ 안디옥 교회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2) 사도행전 1:8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들을 통해 안디옥 교회에 나타난 교훈을 보자.
⓵ 수리아 안디옥 교회를 탄생시킨 “몇 사람”을 통해 알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20절)
⓶ “주의 손이 함께 하는 교회”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21절)  

3) 적용하기

⓵ 설교자가 주고자 한 오늘의 영적 메시지는 무엇인가?
⓶ 교회에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만 드러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⓷ 교회에 주님의 능력(손)이 함께 하시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역하기 (WORK)
주간 중보기도

1) 창립 10주년 기념 주일을 위하여 
2) 5월 사역을 위하여 (어린이주일, 어버이주일, 교    사주일, 전교인 야외예배 등등)
3) 환우들을 위해
4) 지역 셀이 섬기는 태신자 구원을 위하여
5) 피선교지를 위해
6) 담임목사의 목양을 위해   


셀 사역

1) 셀 원들의 범사 파악하여 중보하기
2) 공 예배 참석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기
3) 태신자 명단 매 시간마다 불러 기도하기
4) 학생과 청년들 위해 기도하기
5) 담임목사 사역 위해 기도하기
  

 
설교요약 (SUMMARY)
제목: 이상적인 교회
본문: 사도행전 11:19-26   

서론)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아시시의 성자였던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입니다. 그는 어느 날 깊이 십자가를 묵상하며 바라보는 데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프란체스코야, 내 집을 좀 고쳐다오. 너도 알다시피 다 망가졌단다.” 그런데 이 음성을 들은 프란체스코가 십자가의 눈물과 한숨 사이사이에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의 상처에 입을 맞추며 불렀던 노래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나의 교회야, 나의 교회야, 네가 아무리 못 생겼어도 너는 언제나 내 교회지” (손석춘, ‘기자와 목사의 두 바보 이야기’, P,342) 저는 설교 제목을 ‘이상적인 교회’라고 정하고 10주년 창립 기념주일 설교 원고를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이 어떻습니까? ‘이상적인 교회’가 아니라 ‘못생긴 교회’ 가 더 솔직하게 와 닿지 않습니까? 공영방송이나 종합편성 채널이 하루가 멀다 하고 교회의 일탈, 목사의 비리, 신자의 신자답지 못함을 경쟁하듯이 신바람 나서 방영하는 세태가 지금 바로 여기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못생긴 교회’가 오늘날 교회의 자화상에 더 걸 맞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기에서인지 모르지만 저는 오늘 창립 10주년 기념 주일을 맞이하여 ‘이상적인 교회’ 라고 고집했습니다. 왜? 고루하고 지난한 여정이기는 하겠지만 반드시 이루어야 할 교회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해서 우리 교회의 제 2기 사역시기라고 볼 수 있는 창립 10주년 기념주일 본문을 중심으로 어떻게 해야 이상적인 교회가 될 수 있을까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안디옥 교회의 탄생 보고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약 480km나 떨어진 곳으로 복음을 들고 나간 사람들은 유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이 말을 다시 고쳐 말한다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정수를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은 선민이었던 유대인만이라고 굳건히 믿었던 자들입니다. 해서 그들은 복음을 들고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까지 가는 것은 좋았지만 온전한 복음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알지 못하던 반쪽 자리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델인 안디옥 교회는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을까요? 본문 20절에 있습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이 구절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구브로 (지중해에 위치한 키프로스)와 북아프리카의 거점 도시였던 구레네 출신의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수리아 안디옥으로 사역지를 옮겼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안디옥으로 사역을 옮긴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자들과는 사뭇 다른 복음의 행보를 갖게 됩니다. 이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살고 있었던 유대인들 만에게 국한되어 있었던 편협한 시각이 아닌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라는 사도행전 1:8절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적절한 복음의 능력을 전하던 자들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합니다.
  이렇게 가장 적확한 복음의 위력인 사도행전 1:8절을 실천한 자들에 주목한 이유가 저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이들을 지칭한 누가의 표현 때문입니다. 수리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이방인들에게까지 편만하게 전하여 가장 이상적인 이방 교회의 모델인 수리아 안디옥 교회를 탄생시킨 자들이 누구였습니까? ‘몇 사람’입니다. 역시 불특정한 사람들 중에 누군가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기록했다는 점은 대단히 시사 하는 교훈이 큽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대목에서 이상적인 교회가 갖추어야 할 너무나 중요한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교훈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1) 이상적인 교회는 하나님의 이름 외에 어떤 이름도 높여지지 않는 교회입니다.
  누가가 왜 본문에서 이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몇 사람이라는 보편적인 대명사로 표현했을까? 그것은 분명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신 예수 한 분이시며 그 누구도 영광의 자리에 사람의 이름을 올려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신학과 교회론적인 입장에서 고백을 글에 담은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배워야 하는 교훈이 있습니다. 주 예수는 흥하는 교회, 나는 절대로 지워지는 교회. 이것이 이상적인 교회이고. 바람직한 교회이며, 우리 세인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교회이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느헤미야 3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32절을 자세히 읽어보면 성벽 재건을 위해 온 마음을 다해 힘을 합쳤던 동역자 75명의 이름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75명의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정작 이 사역의 주인공이자 리더였던 느헤미야 자신의 이름은 빠져 있습니다. 역사가는 이 놀라운 역사의 기록에서 느헤미야의 이름을 왜 뺐습니까? 역사가는 느헤미야가 높여지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 역사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셨지만 느헤미야가 아니라는 것을 후대의 자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4:5-7절입니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눈에 들어오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넘겨 준 것이므로’ 사탄이 사람들에게 넘겨주며 유혹하는 것은 높아지는 권위와 영광입니다. 경계해야 하는 일입니다. 내가 높아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낮아지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내가 지은 거짓된 교회이며 모래 위에 지은 집에 불과합니다.

  2)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간섭하시는 교회입니다.
  본문 21절을 읽습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우리는 이 본문을 읽을 때 더 매력이 가는 구절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그러나 착각하지 마십시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해서 그것이 다 교회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로 이상적인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내용은 앞 절입니다. ‘주의 손이 함께 하는 교회’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다가 이 구절을 아주 의미 있게 번역한 성경을 보았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입니다. “주님의 능력이 그들과 함께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 돌아왔다.” ‘손’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 ‘케일’을 ‘손’이라는 문자적인 의미로 번역하지 않고 상징적인 의미인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교회 홈페이지 갤러리에 김문숙 집사가 게재한 사진이 하나 올라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그림을 올린 김 집사님이 이렇게 사족을 하나 달아 놓았습니다. “한명복 권사님이 목사님을 만나 함께 훈련받은 책들” 왠지 이 그림을 보다가 마음이 쨘 해졌습니다. 왜? 지난 10년 동안 이 책들을 읽고 훈련을 받으면서 얼마나 들들 볶였을까를 생각하니 말입니다. 어디 이 볶임이 한명복 권사님 한 분뿐이겠습니까? 우리 교회 대다수의 지체들이 다 같은 형국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쨘 한 마음을 다스리고 소박한 바람을 가져 보았습니다. 이 간섭함이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기회들로 접목되기를 기대하는 마음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간섭하십니다. 어떻게 간섭하십니까? 주의 손으로 우리를 덮어주십니다. 주의 손으로 우리 교회를 덮어 주십니다. 그렇게 숨어계신 듯하지만 결코 숨어 계시지 않고 능동적으로 우리들을 돌보시며 간섭해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간섭하심은 어떤 위기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시는 능력이며 힘의 원천이기에 우리 세인교회에 이런 만지심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
  저는 이제 창립 10주년 기념주일 설교를 맺겠습니다. 책에서 읽은 한 글을 소개하며 말씀을 맺겠습니다. 르리어 네이롤 모리스(Lelia Naylor Morris) 라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불행히도 50세에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하여 52세가 되는 해 완전히 실명하였습니다. 주변에 있는 지인들이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많이 힘이 드시지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모리스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영원하신 팔이 저를 붙들고 계시는데요." 이렇게 담대하게 신앙을 고백한 그녀는 자신의 신앙고백을 곡에 담아 이렇게 찬송하였습니다. (찬송가 406장 1절)
  사랑하는 세인 지체 여러분! 우리는 지난 10년 함께 달려왔습니다. 울고 웃으며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또 이렇게 달려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만이 높여지는 교회로. 하나님의 손이 덮으시는 교회로. 그리하여 이 땅에 세워진 교회들 중에 정말로 모두가 함께 벤치마킹할 수 있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이상적인 교회로 서 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