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사역

제목4월 14일 주간사역2024-04-23 16:58
작성자 Level 10


얼음 깨기 (WELCOME)
차별받은 경험을 나누어보자.  

 
경배와 찬양 (WORSHOP)
찬송가 420장 – 너 성결키 위해 
 복음성가: 나의 안에 거하라  

 
말씀읽기와 적용 (WORD)
● 제목 : 그리스도의 것이라면
● 본문 : 갈라디아서 3:26-29
2)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⓵ 27절을 읽어보자.
⓶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3) 적용하기
⓵ 설교자가 주고자 한 오늘의 영적 메시지는 무엇인가?
⓶ 우리는 차별 없는 대우를 받은 자로서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 어떻게 구별된 삶을 살 것인가?
⓷ 구별된 삶을 위해 기도하자.  

 
사역하기 (WORK)
사역

1) 특별 집회를 상고하고 사역에 누락되지 않도록 미리 스케줄 점검시키기
2) 4월 한 달 사역 내용대로 잘 실천하여 부활의 기쁨을 전하는 주인공 되기
3) 춘계 대심방 사역 준비하고 중보하기
4) 사순절 피정에 소홀하지 않기 

주간 중보기도

1) 고난주간 저녁 집회가 승리할 수 있도록 
2) 춘계 대 심방 사역이 승리할 수 있도록
3) 4월의 사역을 위해 (고난주간 특별 집회, 부활절    예배, 제 10주년 창립 기념주일 예배 등등)
4) 군에 있는 아들들을 위해 (김진현, 이장규, 신요한)
5) 지역 셀이 섬기는 태신자 구원을 위하여
  

 
설교요약 (SUMMARY)
본문: 갈라디아서 3:26-29
제목: 그리스도의 것이라면
  서론)
  제가 참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이 구절을 영어성경의 고전인 RSV는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including yourselves who are called to belong to Jesus Christ.” 번역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고 일컬음을 당하는 너희들 스스로” 제가 이 구절을 좋아하는 이유는 ‘속해 있다’는 구절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소속은 어디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는 자들입니다.
  지난주간에 산척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마침 심방대원이 우정제권사여서 친정어머니께서 머물고 계시는 산척 집을 경유하게 되었습니다. 찬송가 370장을 찬양을 했습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그런데 찬송을 부르던 중에 갑자기 어머님 권사님께서 우 권사님의 손을 살며시 붙들고 포개셨습니다. 그리고 울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자 우 권사님도 어머니의 손을 붙들고 함께 울며 찬양했습니다. 그 날 두 분이 붙는 손, 그리고 함께 감사의 울음으로 드린 찬양을 부르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녀지간의 사랑을 뛰어 넘어 이게, 진짜 교회고, 이게 성도의 모습이구나 하는 감동을. 왜 그렇습니까? 모녀지간에 피를 나눈 혈육의 정 플러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영적인 보혈의 피까지 함께 공유한 성도가 누릴수 있는 최고의 삶을 그날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예수의 것이라고 인침 받은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본론)
  1) 어떤 경우에도 누구를 차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28절을 읽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바울은 당시 정황으로 볼 때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파격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1세기 역사가 요세푸스의 전언에 의하면 주후 1세기 유대인들이 갖고 있었던 3대 감사 기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⓵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 ⓶ 노예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 ⓷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 사정이 이런 데도 바울이 28절을 선포했다는 것은 역적 중에 역적임을 시인한 것입니다. 왜요? 바울은 일종의 모든 차별을 배격했기 때문입니다.
 왜 바울은 차별주의에 대하여 이렇게 단호하게 배격하였을까요? 본문 28절을 다시 복습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부터 일체의 구별을 배격해야 함을 바울은 역설합니다. 왜? 그 분 안에서는 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유대인도, 이방인도, 종도, 자유인도, 여자도, 남자도 믿음을 갖고 있으면 구원 받은 백성이 된다는 말이기도 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다양한 종류의 일체의 사람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다른 표현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 마지막 29절에서 이렇게 단호하게 선포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그렇습니다. 바울이 말하고 싶어 했던 최종 결론의 용어가 등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면 다 하나다.” 이제 이렇게 단호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인정받은 우리들은 어떤 종류의 차별도 배제해야 하고 거부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성서의 한 면들을 기록한 기자들 역시 상당히 가부장적인 냄새가 납니다. 구약 성서는 말할 것도 없고 신약성서도 이 점에 있어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신학적 입장입니다. 우리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에 직면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제시된 여러 시대의 정황은 각종 차별함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여성과 남성, 노예와 주인, 고용자와 피고용자, 귀족과 평민 등등 성경의 시대마다 차별은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차별이 분명했던 성경 시대에 차별주의를 아주 단호하게 한 마디로 척결하는 선포를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선언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그리스도의 것인 저와 여러분은 일체의 차별과 맞서야 합니다. 
  2)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27절을 다시 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다는 것은 이제는 옷 신분에 맞게 살아야 함을 권고한 것입니다. 옷은 그 사람의 위상과 신분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면 그 분의 옷을 입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후로는 예수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마땅합니다.
  조금만 실제적으로 발언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인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굳이 조금 더 강한 표현을 쓰자면 성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조금은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불편해도 그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레위기 11:45절입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여기에 두 번이나 기록된 ‘거룩’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카도쉬’는 폼 잡는 외형적 거룩이 아닙니다.
박사학위 가운 입고 나와 강단에 서는 값싼 거룩이 아닙니다. 금식을 떠벌이기 위해 초라하게 보였던 제사장들의 내세움도 아닙니다. 찬양을 할 때 감성을 터치하여 인위적으로 사람을 울리는 그런 모양새의 거룩도 아닙니다. 히브리어 ‘카도쉬’ 즉 ‘거룩’은 ‘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의 것입니까? 그렇다면 주류에서 분리되십시오. 하나님 없는 번영의 자리에서 벗어나십시오. 값싼 싸구려 복음에 열광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머물러 서십시오. 나에게 엎드리기만 하면 이 모든 천하에 속한 영광과 부귀를 네게 줄 것이라는 소리를 예수의 이름으로 떠나가라고 선포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이요, 구별이요, 성별됨입니다.

  결론)
  오늘은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종려주일이자 고난주일입니다. 지난 다섯 주에 걸친 사순절 기간 동안 어떻게 사셨습니까?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야! 라는 정체성을 갖고 사셨습니까?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반드시 정직하게 답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구별된 삶을 사셨습니까? 세속의 영광과 분리되기 위해 노력하셨습니까? 김기석 목사가 ‘가시는 길 따라 나서다’에서 이렇게 갈파한 글을 읽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은 교회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가? 혹은 얼마나 많은 이를 돕는가? 가 아니라 그 모든 일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는가? 입니다. 근본이 서면 나머지는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p,133) 적어도 우리 세인 지체들은 그리스도의 것이기에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일체의 것들을 행하는 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이 행함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구별 됨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