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앨범

제목일꾼으로 세움받는 분들께 드리는 선물2024-05-29 18:28
작성자 Level 10

복음(福音)은 사람에게 생명(生命)을 제공합니다.
이웃들에게 복음의 극히 일부만을 제공하지 마십시오. 그들에게 단순한 기쁨, 단순한 평강, 단순한 안식, 단순한 안전만을 제공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에게 그들이 가진 생애보다 더 풍요한 주시기 위해, 사랑 안에서 풍성한 생애를 주시기 위해, 그리고 그들을 위해 구원의 풍성함을 주며 세상의 구속과 완화를 위한 큰 사역을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을 전하십시오. 복음만이 몸과 혼과 영, 전인을 사로잡아 그의 본성의 각 부분에 복음의 실천과 상급을 줄 수 있습니다.

많은 현대 복음들은 인간 본성의 일부분에만 관심(觀心)을 기울입니다. 그것들은 평강을 제공하고, 생명은 제공하지 않으며, 믿음은 제공하고 사랑은 제공하지 않고, 칭의는 제공하지만 중생은 제공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종교에서부터 다시 타락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종교는 그들을 진정으로 붙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본성 전체가 그런 종교 안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 종교는 이전 생애보다 더 깊고 더 기쁜 생애를 제공하지 못합니다. 분명히 더 풍성한 사랑만이 세상의 사랑과 경쟁하여 승리할 수 있습니다.

풍성하게 사랑하는 것은 풍성하게 사는 것이요, 영원히 사랑하는 것은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은 사랑과 뗄 수 없는 관계로 결속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내일을 살기 원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영원히 살기를 원합니다. 왜 당신은 내일에도 살기 원합니까? 그 이유는 누군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며, 또한 당신이 내일(來日)보기 원하는 사람이 있으며, 같이 있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을 베풀어 줄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 이외에 우리가 계속 살아야 할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도 사랑할 상대가 없을 때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그가 친구가 있고, 그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살아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를 사랑하는 만큼의 사랑만 있어도 그는 생명을 부지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없애고 생활과의 접촉을 끊어 버린다면 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입니다.

영생(永生)은 또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자신의 정의였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사랑은 영원해야만 합니다. 바로 사랑이신 하나님이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적 분석은 사랑은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결코 떨어지지 않고, 생명 역시 사랑이 잇는 한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울이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철학입니다. 그것이 사물의 본성에 있어서 사랑이 최고의 것인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사물의 본성에 있어서 사랑은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죽을 때 얻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사랑으로 살고 있지 않는 한 우리가 죽을 때는 그것을 더욱 얻기 어려운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사랑을 하지도, 받지도 못하면서 늙어 가는 것보다 더 비참한 운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구원받지 못했다는 뜻은 중생 받지 못한 상태로서 사랑하지도 못하고 사랑 받지도 못한 가운데 산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았다는 뜻은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이미 거(居)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끝을 맺겠습니다.

여러분들 중 몇 사람이 다음 석달 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고린도전서 13장을 저와 함께 읽으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그렇게 했는데 그의 전 생애가 변화되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세상에서 최고의 것을 위한 것입니다. 당신은 특히 완전한 성품을 묘사하고 있는 구절들을 매일 읽음으로써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이 요소들을 당신의 생애의 것으로 만드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하는 모든 것은 영원할 것입니다. 그것은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간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잠자는 중에 성자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 지정된 조건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기도와 묵상과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마치 우리들의 몸과 정신의 방향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준비와 보살핌이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이 한 가지 일에 관심을 집중시켜 보십시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초월적인 성품과 당신의 성품을 교체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당신의 생애를 되돌아 볼 때, 특별한 순간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생을 의미 있게 살았다고 생각되는 순간들이 떠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들은 바로 당신이 사랑의 정신으로 일한 순간들입니다. 과거를 회상해 볼 때, 생애의 모든 일시적인 쾌락(快樂)을 초월하여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눈에 띄지 않은 친절을 베풀거나, 말하기에는 너무도 사소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당신 느낌에도 영생을 살았다고 느껴지게 하는 그런 일들을 실천할 수 있었던 그 최고의 순간들이 특출하게 떠오를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창조(創造)한 아름다운 것들을 거의 모두 보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계획한 거의 모든 쾌락도 즐겼습니다.

그러나 제가 저의 생을 되돌아 볼 때, 지나간 전 생애 가운데서 너댓번의 짧은 경험이 잊을 수 없는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경험들은 미약한 모방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나의 작은사랑의 행위에 반영될 때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사람의 생애를 영원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생애의 다른 모든 것은 잠정적인 것입니다. 다른 모든 좋은 것은 환상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알지 못하고, 또 알 수도 없는 사랑의 행위, 그것은 결코 폐하여지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은 보좌에 앉으신 분이 양과 염소를 갈라놓는 심판 날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사람을 심판하는 기준은 “우리가 어떻게 믿었느냐”가 아니고 “우리가 어떻게 사랑했느냐”입니다. 종교의 심판은 즉 종교의 최종 심판은 종교성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랑에 대해서입니다. 저는 위대한 날에 있을 종교의 최종 심판은 종교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최종 심판은 내가 한 일, 내가 믿음 일, 내가 성취한 일이 아니요, 내가 삶 가운데서 어떻게 사랑을 실천했느냐 입니다. 그 두려운 심판에서 맡은 일을 잘못한 죄들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실천하지 않는 것, 즉 태만죄(怠慢罪)로 인해 심판 받게 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을 베풀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신을 부인하는 것이요, 우리가 그를 알지 못한다는 증거이며, 그 분이 우리를 위해 헛되이 산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생각에 아무 것도 제시해 주시지 않았고, 우리의 모든 삶에 아무런 감동도 주시지 않았으며, 세상을 향한 그의 사랑에 붙들린바 되도록 그에게 한번도 가까이 나아가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뜻은 ;
“나는 내 자신을 위해 살았고,
내 자신을 위해 생각했으며,
내 자신만을 위해
다른 사람은 아무도 생각지 않고,
마치 예수님이 결코 살지 않았었던 것처럼.
마치 예수님이 결코 죽지 않았었던 것처럼.”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인자 앞에 모여들 것입니다. 성육하신 분 앞에서 우리들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 광경 자체, 그 모습 자체가 우리 각자를 조용히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고 도와주었던 사람들이 거기 있게 될 것입니다. 혹은 무시당하거나 경멸 당한 무리들이 거기 있게 될 것입니다. 다른 증인을 소환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 없는 것 이외의 다른 죄목이 필요치 않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듣게 될 그날의 말씀은 신학의 소리가 아니라 생활의 소리일 것이며, 교회나 성도들의 소리가 아니라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들의 소리이며, 신조와 교리들의 소리가 아니라 거처와 의복에 관한 소리이며, 성경과 기도 책의 소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봉사한 냉수 한 그릇의 소리일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세상의 필요를 더 충당하고 있는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그 일이 예속되도록 살아갑시다. 사람들이 종교가 무엇이며, 하나님이 누구이며, 그리스도가 누구이며. 그리스도가 어디 계신지를 약간 더 알게 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그리스도가 누구이십니까? 배고픈 자를 먹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고, 병자를 방문한 분입니다.

그리스도가 어디 계십니까? 누구든지 이 소자를 내 이름으로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마 18:5)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입니까?

사랑을 베푸는 모든 이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낳습니다.


이강덕 10-04-24 18:06
  귀한 메시지가 우리 일군으로 세움 받는 지체들의 육비에 세워지기를 기대합니다.
승리하는 사역자들이 도리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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