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교우가 추석 명절이라고 타지에 있는 아들과 함께 선물 꾸러미 하나를 들고 방문했습니다. 서재에 앉아 잠시 교제를 하는데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어머님 돌아가시고 나서 신랑이 명절이 되면 멍하니 하늘만 봐요. 어머님 살아계셨을 때 신랑이 어떻게 어머니를 사랑하고 효도했는지 목사님이 너무 아시잖아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지 명절이 되면 뭔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해져 있는 걸 보면 요즈음은 불쌍해 보여요. 어머님 계실 때는 안 그랬거든요.” 지체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100%가 아니라 1,000% 공감이 되었습니다. 5년 전에 양가에서 홀로 남아 계셨던 장모님마저 소천하시고 나니 말 그대로 고아가 되었습니다. 이후부터 명절이 되면 왠지 모르게 빈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서 한동안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것을 알기에 지체가 말한 남편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되고도 남습니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추석 명절을 연휴를 보내고 있습니다. 추석이 토요일인 관계로 부모님들이 계시지 않아 마땅히 갈 데도 없지만, 연휴 기간 동안 부모님들이 모셔져 있는 현충원과 호국원을 다녀왔고 나머지 시간은 독서와 주일 준비로 소일했습니다. 지난 주간에 출판 관계로 서울로 올라갔다가 정말로 오랜 만에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모셔져 있는 현충원에 들려 인사를 드렸고, 목요일에는 이천 호국원을 방문해 꽃 한 다발 드리며 아버님과 어머님께 명절 인사를 드리고 왔습니다. 흔히 말하기를 엄마는 마음의 고향이라고 하는데 부모님들이 모셔져 있는 납골당에 방문해서 그리운 부모님들을 만나고 오니 한 결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지난 번 누님이 고희를 맞이해서 형제들이 인천에서 함께 모여 축하자리를 만들었기에 정말 오랜 만에 고향을 다녀왔습니다. 고향을 다녀올 때마다 느끼는 감회지만 고향을 떠난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아버님과 어머님이 계시지 않는 고향이라서 그런지 이제는 너무 낯설기만 합니다. 그래서 이번 명절에는 주일을 핑계로 집에 머물면서 마음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족하기로 했습니다. 아주 가끔 어떤 이들이 부모님들로 인해 마음 고생하는 것이 너무 크다고 볼 멘 소리를 할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그렇게 볼 멘 소리를 할 수 있는 부모님이 살아계셔서 부럽다고. 고향은 매우 낯설어졌지만 내 마음의 고향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애절해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신학하기 이전인 아주 오래 전에 많이 불렀던 한 대중가수의 노래 제목이 제 마음과도 같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어머님의 자리는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입니다. 고향을 찾아가고 찾아와 함께 사랑을 나눈 세인 공동체에 속한 모든 가족들이 행복하기를 화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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