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단

제목[목사님컬럼] 이젠 귀뚜라미가 웁니다.2024-04-19 10:07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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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 폭우가 내리고 난 뒤부터 매미 소리가 잦아들었습니다아니조금 더 정직하게 말하면 소리가 많이 약해졌습니다대신 귀뚜라미 소리가 귓전을 울리기 시작했습니다가을의 전령이 찾아온 것이겠지요지난 여름 내내개 짖는 소리매미 소리 그리고 돌 깎는 소리로 인해 소음공해가 심각했는데 귀뚜라미 소리는 일련의 소리들에 비하면 정겹기까지 합니다.

8월 15일이 지난 후부터 제천은 아침저녁 바람이 한결 차가워졌습니다시간이 갈수록 조금 더 바람이 차가워지겠지요.

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 단단한 몸통 위에 사람아사람아 단풍든다아아노랗게 단풍든다.”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 病 중에서)

기형도가 읊조린 이 시어(詩語)를 나 또한 주절거린 지가 이미 오래되었지만 왠지 이 시인의 낙조(落照)가 금년에는 더 더욱 성큼 제게 다가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나이를 살고 있기에 시인이 더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어제도 폭우가 한 차례 지나쳤습니다금년 봄너무 비가 오지 않아 힘들었습니다기후 재앙이 피부로 심각하게 느껴질 정도로 염려했던 봄이었는데여름 내내 너무 많이 내린 비로 인해 이제는 그만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는 간사한 기도를 하고 있으니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초라한 존재인지 또 다시 절감하고 있습니다.

서재 창문 밖으로 보이는 세명대학교 산자락 밑 능선으로 옅은 구름이 내려앉아 한 폭의 수채화가 연상될 정도로 신비롭습니다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아프다는 것을 뺀다면 참 근사한 일이라는 소회를 저 또한 동의합니다젊은 시절아무리 말로 설명을 하고부연을 해도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선명하게 보이니 말입니다내 몰골이 노랗게 단풍이 들고 있지만절망하지 않는 것은 붉은 세월이 푸른 세월로 승화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이번 주간은 제가 교회를 떠나 일주일간 다른 공간에 있을 예정입니다한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가 교회를 비우면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더군다나 아픈 교우들이 있기에 더 그렇습니다몇 주 전에 제 일정을 알고 있는 서울에 거주하는 지인 권사님이 제게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목사님정말로 그렇게 하시기 어렵겠지만한 주간만 모든 걸 다 잊고 사모님하고 온전히 쉬다가 오셨으면 좋겠습니다목사님은 기계가 아니잖아요지난 시간치열했던 그 치열함은 잠시 내려놓으시고 그냥 쉬셨다가 오셔요부탁입니다.”

타 교회 성도의 사랑 어린 조언에 감사했습니다휴가처에도 귀뚜라미가 울겠지요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듣고 오겠습니다프란체스코는 될 수 없겠지만그래도 그 울음소리를 통해 또 다른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이루어지기를 저 또한 소망해 봅니다이번 한 주간우리 교우들이 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