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되기, 너무 잘했다.
출신교회에서 자라날 때, 고향 교회 선배 누님(지금은 은퇴 전도사)이 성가대에서 사역하던 내게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강덕이가 성가대를 서는 것은 은혜다.” 이렇게 말했던 선배가 훗날 우리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가 이러면서 놀렸습니다. “이 목사, 찬양을 들어보니 옛날에 비해 용 됐다.” (ㅎㅎ) 전도사가 목사까지 된 후배를 디스 할 수 없어서 립 서비스를 해준 말이었습니다. 주일 예배 시간에 다시 찬양 사역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용기와 응원을 주기 위해 10일 주일은 목사들이 특별찬양을 하기로 했습니다. 해서 부전공으로 성악을 전공한 부목사의 도움을 받아 엘리야의 말처럼 열심이 특심하게 준비했습니다. 아주 가끔 단독으로 찬양을 하면 반주자에게 야단맞기가 일쑤였기에 이번에는 꾀를 내어 MR의 도움을 얻어 찬양을 준비하기로 하고 몇 번의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연습 한 결과,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목사가 되기 정말 잘했다.” 행여나 평신도로 교회를 섬기며 신앙생활을 했다면 나는 백발백중 성가대 사역을 했을 터이고, 지레 짐작으로 지휘자에게 여러 차례 혼쭐이 났을 것이며, 다른 성가대원들에게 적지 않은 민폐를 끼쳤을 것이 자명하기에 하나님이 목사의 길로 인도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천만 다행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그러려고 의도적으로 한 것은 결코 아닌데, 사역자로 헌신하여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 세상 친구들과 어울려 불렀던 노래가 트로트다 보니 거기에 아예 길들여져 있는 나는 무슨 찬양을 해도 트로트 찬양을 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들리나 봅니다. 특히 아내와 반주자는 찬양도 트로트 기법으로 부른다고 핀잔을 주는 통에 기가 많이 죽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청개구리와 같은 객기 때문에 찬양 부르기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드문 예이기는 하지만 트로트 찬양기법에 은혜를 받았다는 몇몇의 사람들의 용기에 기세등등하여 무식하다면 용감하다고 찬양 부르기를 즐겨하는 욕심을 부려본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시 옷깃을 여미며 겸손해질 때는 역시 찬양할 때입니다. 역시 찬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이 고백이 절절하게 토로되는 게 진심입니다. 목사 되기, 너무 잘했다. 심정적으로 이 고백이 나오는 게 사실인데, 그래도 찬양은 중단할 수 없습니다. 찬양을 통해 몰수이 몰려오는 영적 감동은 빼앗길 수 없는 위로부터 쏟아지는 주군의 은혜이기에 말입니다. 오늘 찬양은 더 더욱.
왜 나를 깊은 어둠속에/홀로 두시는지/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광야 광야에 서 있네 (중략) 내 자아가 산산이 깨지고/높아지려 했던 내 꿈도/주님 앞에 내려놓고/오직 주님 뜻만 이루어지기를/나를 통해 주님만 드러나시기를/광야를 지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