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30일 주일 오전 설교 (느헤미야 강해 12)
본문: 느헤미야 4:15-23 제목: 우리는
서론)
부교역자로 부산 서면교회에서 11개월을 사역했습니다. 당시 저를 비롯한 네 명의 전담 사역자가 감당해야 했던 주된 사역은 심방이었습니다. 섬기던 담임목사의 목회 철학이 심방에 목을 건 사역이었기에 화, 목요일은 언제나 맡은 교구의 결석자나 유고자, 특이한 일을 경험한 신자들을 심방해야 했습니다. 수요일과 금요일 오전 직원 예배 시간에는 전 날 사역했던 피 심방 대상자들의 심방 사역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습니다. 담임목사께서 부교역자들이 심방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에 대한 점검의 자료였기 때문입니다. 단 전제는 12가정 심방이 미니멈이었습니다. 반드시 하루에 12가정 이상을 심방해야 했고 만에 하나 미달되면 담임목사께 적지 않은 야단을 맞아야 하는 고된 하루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고달픈 목회의 과정에서 심방이 무엇인지를 배웠고, 사역자가 얼마나 육체적으로 곤비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던 공부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9세 나이에 하루에 12가정 이상을 방문하며 사역해야 했던 그때의 기억은 제게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쓰라린 기억입니다. 심방을 다녀 온 날, 집에 들어가면 곧바로 쓰러져 양말과 넥타이를 아내가 풀어준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옷을 벗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지는 경우도 허다해 신혼 초에 아내가 적지 않은 고생을 해야 했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인 23절에 기록되어 있는 구절은 제게 의미가 남다릅니다. “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
본론)
성벽재건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던 느헤미야 공동체 지체들이 왜 옷을 벗지 않았을까요? 물론 30여 년 전의 저와 같은 경우는 아닙니다. 하지만 23절에 기록된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느헤미야 공동체가 옷을 벗지 않은 이유는 더 비장한 영적 의미가 담겨 있어 설교자인 저나 듣는 여러분에게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해 줍니다. 오늘 본문 여행을 떠나 보십시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신경질적으로 싫어해서 절대로 성벽 건설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결기한 산발랏, 도비야, 게셈의 아라비아 사람들, 아스돗 사람들은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유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저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내부분열 및 심리적인 자중지란에 빠졌던 유다 백성들의 패배감을 일소시키고, 다시 성벽 재건에 박차를 가하도록 느헤미야는 적절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위기를 극복해 나아갔다고 지난 주일설교를 통해 나누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제시한 리더십 중에 하나는 성벽 재건은 재건대로 진행하되, 영적인 긴장감을 놓지 않고 무력에 대한 방비를 소홀히 여기지 않았던 점이었음도 살폈습니다. 지난 주일설교에서 보았던 13절을 다시 한 번 복기하겠습니다.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성벽을 재건하는 막중한 사명을 진행하고 있었던 어간이라 이렇게 군사적인 준비를 하는 것이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느헤미야는 이 이중의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느헤미야가 행했던 군사적 대비 태세의 구체적 행보를 소개하는 본문입니다. 15절입니다. “우리의 대적이 우리가 그들의 의도를 눈치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일하였는데” 산발랏 일당들이 호시탐탐 유다를 무력으로 공격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았으나 예상하지 못한 벽에 부딪쳤음을 암시하는 보고입니다. 산발랏 일당은 무력 개입을 시사했지만, 무력을 개입한다는 것은 전제할 때 지배국인 바사의 권력부에 소문이 들어가지 않는 범위에서 진행해야 하는 곤혹함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느헤미야가 진행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은 아닥사스다의 윤허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적인 사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느헤미야 2:7-8절을 봅니다.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아닥사스다가 허락한 것이 바로 예루살렘 성벽 재건 사업이었습니다. 이렇게 분명한 바사 왕의 정책 결정 사업인 성벽 재건을 방해하기 위해 병력을 동원하는 무력이 사용된다면 이것은 바사 왕에 대한 반역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일이었기에 대규모 병력을 파병하여 전쟁을 일으킬 수 없는 사정이 산발랏 일당에게 있었습니다. 또 하나의 복병은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일이었습니다. 무엇이었을까요? 본문 16-18절을 읽겠습니다. “그 때로부터 내 수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16절에 기록된 ‘수하 사람’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나하르’는 ‘젊은이’ 혹은 ‘소년’이라는 의미의 단어인데 본문의 맥락으로 볼 때 ‘수하 사람’은 총독으로 일하던 느헤미야의 행정적인 일을 돕던 비서진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또한 ‘민장’이라고 번역된 ‘사르’는 일반적으로 관리를 지칭하지만 여기에서는 ‘무장한 군대 지휘관’을 의미합니다. 주목할 것은 ‘수하 사람’, ‘민장’의 공통분모가 젊은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이들의 연령 분포도가 젊은 층이었기에 느헤미야는 이들에게 갑옷을 입히고 창과 칼과 방패를 쥐게 하였는데 아마도 이것은 이들에게 느헤미야가 그들을 정예 군사로 멤버화 시켰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적들의 공격에 대해 민감하게 준비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어지는 본문 19-20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 공사는 크고 넓으므로 우리가 성에서 떨어져 거리가 먼즉 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19절에 나오는 ‘귀족’과 ‘민장’이 있습니다. ‘귀족’을 뜻하는 히브리어 ‘호르’와 ‘민장’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16절의 민장인 ‘사르’가 아니라 ‘사간’입니다. ‘사간’은 지방에서 일하는 관리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19절에 기록된 사람들은 중앙정부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방에 살고 있던 리딩 그룹이라는 말입니다. 이들은 이런 이유로 ‘사간’은 느헤미야와는 거리적으로 멀어 소통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해서 느헤미야가 이들에게 맡긴 미션은 나팔수의 소리를 더 민감하게 듣는 일을 맡겼습니다. 조선시대에 적용하자면 봉수대를 관리하는 관리자 정도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사명은 보잘 것이 없는 일이 아니라 대단히 중차대한 일이었습니다. 만에 하나 산발랏 일당이 무모하게 전쟁을 일으키면 나팔수가 부르는 나팔 소리를 전국에 있는 ‘호르’와 ‘사간’들이 서로 연결하여 힘을 한데 모으는 정말 중요한 역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외적인 전쟁 준비에 만전을 기했던 지도자가 느헤미야였습니다. 느헤미야의 치밀한 전쟁 억지 프로젝트의 압권은 본문 21-23절이 보고합니다. “우리가 이같이 공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으며 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말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일하리라 하고 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 이 구절을 접하다보면 느헤미야의 리더십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적지 않은 감동에 젖어들게 합니다. 어떤 면인지를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번역으로 그 감동에 젖어 보십시다. “우리는 동틀 때부터 별이 뜰 때까지 일했고, 우리 가운데 반은 창을 들고 일했다. 나는 또 백성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밤에는 각 사람이 조수들과 함께 예루살렘 안에 머무르며 보초를 서고, 낮에는 일하십시오.’ 나와 내 형제와 내 일꾼과 나를 지원하는 보초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옷을 입은 채 잠자리에 들었고, 물을 뜨러 갈 때에도 손에서 창을 놓지 않았다.” 유진 피터슨이 기록한 이 문장을 보는데 목회 현장에서 30년 이상을 살아온 목사로서의 뒤안길이 생각나서 그랬는지 울컥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목회자는 아니었지만,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 공동체를 맡아 성벽을 재건하고 있는 한 지도자로서 갖고 있는 절절함과 애틋함과 단호함 등등의 정서들이 복합적으로 내게 밀려들어 복받쳐 오르는 감동의 물결로 인해 설교를 준비하면서 순간 가슴으로 울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혹시나 모를 전쟁의 기운에 대해 손 놓고 있지 않고 치열하게 준비했습니다. 이런 치열함 속에서 느헤미야 자신도 그 치열함 속으로 들어갑니다. 조금도 빈틈을 주지 않는 철저한 경계 속에서 느헤미야도 같이 옷을 벗지 않고 예루살렘 성읍을 파수하는 장면은 가히 감동적입니다. 바로 이 감동을 주는 클라이맥스는 한 단어에 기인해 있습니다. ‘우리는’이라는 1인칭 복수 대명사입니다. 소형근 박사의 주석 한 부분을 소개합니다. “느헤미야는 4장 전체에서 자주 반복하고 있는 1인칭 복수형 ‘우리’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1,4,6,9,10,11,12,15,19,20,21,22)를 무려 12번에 걸쳐 사용한다. ‘우리(WE)’라는 용어는 느헤미야와 유다 사람들의 일체감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느헤미야 전체에서 4장에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소형근, “느헤미야-연세신학백주년기념주석”, 대한기독교서회, p,70.) 느헤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옷을 벗지 않고 있을 때, 같이 옷을 벗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동틀 때부터 별이 뜰 때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일할 때 그 현장에서 같이 동고동락했습니다. ‘우리’라는 단어는 동역, 동참, 연대라는 대단히 중요한 신학적 함의를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지난 대 심방 사역을 통해 느낀 점이 있습니다. 개척 멤버들은 대체적으로 ‘우리’라는 단어에 익숙합니다. 그 이유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개척 이후, 세인 교회 교우로 등록하여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교우들은 ‘우리’라는 단어에 아직은 서툴러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권면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후발주자로 세인 공동체에 입교한 교우들이 섬기고 있는 교회, 이 교회가 아니라 우리 교회이며, 내 교회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와 현장을 위해 기도하는 이강덕 목사는 세인교회 목사가 아니라 우리 목사이며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의 내 목사입니다. 그것을 고백하고 선포하는 것이 연대이며 동역의식이며 함께 함의 내공입니다. 오늘 느헤미야 11번째 강해의 레마를 이렇게 받겠습니다.
※ 교회 공동체는 우리 공동체가 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함께 했던 음식 바자회 개장 예배를 통해서 교우들과 함께 읽었던 구절이 사도행전 2:44-47절 말씀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성령 받아 하나가 된 초대교회 공동체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구절 자체 안에 ‘우리’라는 단어는 단 한 글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종합하면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성령 받은 교우들로 이루어진 초대교회는 그들 개개인에게 ‘우리 교회’였다. ‘우리’라는 이 단어 안에 있는 자에게 이기주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배태주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차별주의는 발을 딛지 못합니다. 상대주의는 기생하지 못합니다. 나는 세인교회가 여러분들이 고백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결론)
이제 저는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제가 대학교 시절에 자주 불렀던 가스펠 송이 있습니다. 외국곡인데 곡에 윤복희 권사께서 가사를 붙여 1980년대에 많이 불렀던 가스펠 하나를 소개함으로 설교를 맺고자 합니다. 가사가 길지만 가사의 내용을 음미하며 은혜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나 외로움도 견뎌 나가겠소 바보란 소릴 들어도 좋소 나를 비웃는 그 비웃음들을 주의 사랑으로 받아주겠소 이 모든 것이 힘들다는 것을 주님은 나에게 알려줬소 주님의 사랑은 너무나 넓고 크오 그래서 나는 살아가겠소
우리 모두 손을 내밀어서 넘어진 형제 일으켜주세 사람이 살면 한 번 사는 것 걸음 멈추고 생각해보세 시냇물이 강으로 흘러서 저 바다와 하나가 되듯이 우리는 주안에서 하나가 돼야 하오 우리는 하나가 돼야 하오
자 우리 모두 손에 손을 잡고 저 험한 벌판을 걸어서 가세 가다 보면 폭풍도 지나고 캄캄한 밤도 지나갈 거요 높은 산을 올라갈 때도 있고 푸른 초원도 지나갈 거요 서로를 위하고 우리가 사랑하면 모든 것을 이겨나갈 거요
지금까지 내가 한 말들은 배워서 한 말들이 아니오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쁜 것은 말 안 해도 우리는 알지 않소 오죽하면 나 같은 바보가 여러분들께 호소하겠소 우리는 하나요 주님과 나도 하나 우리는 하나가 돼야 하오
자 옆에 있는 형제 손을 잡고 우리 모두 노래합시다 서로 보며 인사도 나누고 우리 모두 함께 일어납시다 우리 모두 발을 구릅시다 이렇게 모든 것이 맞을 때 우리는 주안에서 하나가 돼야 하오 우리는 하나가 돼야 하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