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제목목사, 그리고 목사직2024-06-11 09:52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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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지은이 이재철
ㆍ출판사 홍성사
ㆍ작성일 2021-02-25 08:26:19

 

이재철 목사의 “목사, 그리고 목사직”을 읽고 (홍성사 간, 2020)


싱어게인 우승자인 이승윤의 아버지로 이제는 대중에게 더 잘 알려진 셈이 된 저자는 적어도 필자에게 있어서 보수적 목회의 스펙트럼이라는 한 축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이미 너무 잘 알려진 멘토다. 수십 년 전, 저자는 필자에게 나를 멘토 삼지 말라고 사석에서 말씀했지만, 분명, 저자는 필자에게 있어서 선배이자, 멘토다.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서 임직을 하려는 대상자들은 반드시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 쓴 새신자, 성숙자, 사명자 반을 이수해야 한다. 적어도 ‘그리스도인 되기’라는 명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 교재보다 더 좋은 교재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목회를 마치고 현장에서 내려오는 날까지 이 사역은 중단되지 않을 거다.
作心했다.
다른 표현보다는 이 책을 통해 저자가 행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가장 적확하게 묘사한 동사는 없는 듯하다. 필자가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주지하는 자는 이미 다 알 듯이 저자는 현직에 있는 동안 많은 고통을 당했던 이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본인이 속해 있었던 교단에서 파직, 출교되는(?) 아픔을 고스란히 경험한 목회자다. 그가 파직당한 이유를 변호하라는 임무를 나에게 맡긴다면 이 지면에서 필자는 논문도 쓸 의향이 있다. 하지만, 저자의 존재 자체가 무너지고 쓰러져 내동댕이쳐진 한국교회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증거 그 자체인데, 무슨 다른 변증이 필요할까 싶다.
필자도 한국교회의 한 교단에 속해 있는 현직 목사이기에 저자가 본 책에서 던진 7가지 질문에 대해 답해야 하는 당위의 현장에 있다. 하지만 대단히 슬프게도 저자의 일곱 가지 질문에 고개 쳐들고 떳떳하게 답할 수 있는 건더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몹시 아프고 부끄러웠다. 저자가 던진 7가지의 질문은 그가 현장 목회자 시절, 수많은 핍박의 중심에 있었던 자였기에 진정성을 갖고 싸워야 했던 현장 목회의 이력이자 복기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비장하다.
作心했다.
다시 이 단어를 쓰는 것은 저자가 단어 그대로 작정하고 결심한 뒤에 이 땅의 목사들에게 던진 사자후요, 한국의 비텐베르그 선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왜 목사로 살고 있는가?
나는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두 목회자의 표상인 아론인가? 모세인가?
나는 목사 이전에 전도인인가?
나는 얼마나 자발적으로 고독한가?
나는 나의 목회를 소위 더 큰 목회를 위한 징검다리로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얼마나 인간을 알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있는가? 

본서를 읽고 나면 두 종류의 독자들로 갈라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왜? 이 책은 호불호를 가르는 책이기 때문이다. 선택은 독자들의 몫이기는 하지만 필자는 상당수 많은 독자들이 책을 던지며, 내 팽개치는 부류들의 훨씬 더 많은 것이라고 믿기에 참담하다. 아프지만, 저자의 글을 읽은 뒤에, 통회하는 목사들이 많아질 수 있다면 이 땅의 내 사랑하는 교회는 결코 비관적이지 않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별 기대감이 없다.
오순절 이후, 베드로의 첫 설교를 듣고 “What shall we do?”로 땅을 쳤던 3,000명보다,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Are you good at it?’를 외치며 돌들 던졌던 3,000명이 더 많을 것 같기에 말이다. 저자의 책 안으로 들어가 보면 저자의 글 한 문장, 한 문장이 아프다. 인정하고 싶지 않고,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글이라고 저자를 공격하고 싶지만, 속내는 쓰릴 것이 분명하다. 자유롭거나 예외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저자가 던진 7가지의 질문을 질문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고 다른 단어를 쓰고 싶다.
독설(毒舌)이다. 아프지만 적확한 단어다.
저자의 첫 번째 질문에 답하는 자는 한국교회의 희망이다. 장담하거니와 하나님은 지금 바로 그 당신 때문에 심판을 유보하고 계신다. 마지막 7번째의 답에 진정성을 갖고 답하는 목사가 이 땅에 적지만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해서 하나님은 7번째 질문에 진솔하게 답하며 사는 바로 그들 때문에 한국교회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기대하고 계신다. 동시에 숨을 돌리고 계시리라 믿고 싶다.
필자가 출간한 책 세 권의 참고도서를 찾아보았다. 제일 많이 각주에 인용한 목회자가 김기석과 이재철이다. 전자는 진보적 스펙트럼에서, 후자는 보수적 스펙트럼에서 필자를 목사로 버티게 해준 선생님이자, 선배이자, 글벗이자, 신앙의 길벗이다. 이렇게 말하면 믿을까 싶지만, 믿거나 말거나 목사의 로브를 벗고 싶었을 때가 수도 없이 많았다. 수모와 치욕을 당하면서 목사로 사는 것을 포기하기 위해 로브를 벗기로 마음먹었을 때, 어느 때는 호통으로, 또 어느 때는 잔잔한 안아줌으로 지금까지 필자를 어줍지 않아도 목사로 살게 해 준 선배들이 전후자의 목회자들이다.
나는 오늘 본서의 있는 내용을 하나도 인용하지 않고, 다가온 독서 후기를 남겼다. 내가 그동안 해온 버릇의 서평쓰기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만족하려 한다. 왜? 저자의 글을 하나도 버릴 게 없기 때문이다. 친한 지인이 나에게 이런 농을 던진 적이 있다.
“이강덕 목사는 대한민국 제 1의 김기석빠(?)”라고.
근데 말이다. 난 오늘은 이재철빠(?)로 남고 싶다. 거창에 계신 저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건강의 은혜가 머물기를 화살기도 한다. 왜? 대단히 이기적이다. 저자가 건강해야, 나도 조금 더 목사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난 이승윤의 아버지 이재철은 잘 모른다. 내가 아는 이재철은 거침없이 나를 버리라고 은퇴예배의 고별 설교를 통해 선포한 목회자의 멘토인 길벗 이재철 목사다. 

참 오랜만에 2시간 30분 만에 책 한권과 여행했다. 2시간 30분 동안 움직일 수 없었고, 딴 생각을 1도 할 수 없었다. 포로 되었기 때문이다. 붉으락푸르락 했다. 하지만 한 가지, 너무 행복했다. 아직도 같은 하늘에 바라볼 선배가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