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깨기 (WELCOME)경배와 찬양 (WORSHOP) ●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 복음성가: 마라나타 | 말씀읽기와 적용 (WORD)● 제목 : 다시 주존심(主尊心)으로 ● 본문 : 로마서 1:1-4 1) 주존심의 기초는 무엇인가요? ⓵ 바울의 경우 -유대교적인 종교적, 문화적 배경: -정치적인 구도: ⓶ 베드로의 경우 -주와 그리스도라는 호칭의 위험성 |
2) 주존심이란 무엇인가요? ⓵ 바울의 자기소개를 통해 설명해봅시다. ⓶ 마가복음 10:43-45을 통해 설명해봅시다. |
3) 적용하기 ⓵ 설교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⓶ 깨달은 것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 사역하기 (WORK)주간 중보기도
1) 송구영신예배에 은혜가 충만하도록 2) 1월 5일 12회 사무총회가 은혜롭도록 3) 임직자 선거가 은혜로운 제비뽑기가 되도록 4) 1월 사역 전체가 승리하도록 5) 다음 세대가 2020년 승리하도록 6) 담임목사의 목양을 위하여
셀 사역
1) 공 예배 준수하기 2) 셀 원들의 범사 파악하여 중보하기 3) 셀 예배 책임감을 갖고 진정성이 있게 드리기 4) 리더와 인턴을 위해 중보하기 5) 송구영신 예배 적극 참여하기 6) 담임목사의 사역을 위해 기도하기 | 설교요약 (SUMMARY) 설교 요약 제목: 다시 주존심(主尊心)으로 본문: 로마서 1:1-4
서론)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主尊心이 있는 교회’라는 표어를 내걸고 달려왔습니다. 저는 主尊心이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철저한 로드십을 인정하는 마음이라고 1월 첫 주에 교우들에게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주존심은 로드십에서 출발한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입니다. 그렇게 달려온 2019년의 52주째 되는 오늘 송년주일에 어떤 말씀으로 대미를 장식할까를 묵상하다가 ‘다시 주존심으로’ 라는 제목으로 2019년 설교를 마감하기로 했습니다. 왜? 결국 이 마음은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 지녀야 하는 성도의 자존감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회심 이후 바로 이 마음으로 생명을 걸고 믿음의 경주를 감당한 바울을 무대의 정중앙에 올림으로 함께 은혜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본론) 로마서는 엄청난 능력을 소유한 책입니다. 로마서가 이런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 서신이라는 증거를 바울이 편지를 보내면서 선언한 1절 내용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본문 1절에서 저는 바울만이 갖고 있는 주존심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을 읽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1) 주존심의 기초는 예수가 주님이시고 그리스도이심에 목을 거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예수님을 호칭한 단어에서 그것을 발견합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잘 아시는 것처럼 구약성경에서 약속된 ‘메시아’라는 히브리어의 헬라식 번역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예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고, 나사렛에 자라난 역사적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바울은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붙인 것입니다. 구약에서 기름부음을 받는 존재는 세 종류가 있었습니다.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예수에게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붙인 의미는 예수는 이 세 가지의 직을 다 갖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유대교적인 종교적, 문화적 배경에서 이 세 가지는 대단히 중요한 권위입니다. 유대인들이 인정하는 삼중직의 권위를 갖고 있는 존재는 오직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역사적인 인물에게 그리스도라는 말을 붙인다는 것은 참담한 일이요, 신앙적으로는 대단히 위험한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치적인 구도에서도 어떤 의미로 보면 목을 거는 행위였습니다. 로마제국이 막강한 권세로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통치하던 시대에 그리스도는 곧 로마의 황제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황제 이외의 다른 존재에게 그리스도라는 왕의 의미를 붙인다는 것은 그 이름을 호칭한 자는 물론 그 이름이 적용된 자 모두가 반역자가 되는 것이고, 결국 그는 목숨을 유지할 수 없기에 말입니다. 베드로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6:16절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했습니다. 동시에 그리스도라고 겸손히 아뢰었습니다. 그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이 한 구절에는 대단히 중요한 신학적인 팩트가 숨겨져 있습니다. 주와 그리스도라는 호칭의 위험성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헤롯 필립이 이스라엘 북방 헬몬 산 근처에 해발 약 2,400미터의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 도시는 원래 작은 마을이었는데 헤롯 필립이 로마의 황제에게 자신의 충성도를 보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빌립보라는 도시 이름 앞에 가이샤라가 붙어 있는 것입니다. 피 식민의 도시에 가이샤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① 가이사의 위용에 걸맞은 대도시여야 했습니다. ② 도시의 한 복판에 로마 황제를 위한 신전이 있어야 했습니다. ③ 황제의 위상에 맞는 해발이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야 했습니다. 결국 가이사라는 이름은 세속적인 도시의 절정이라는 말이 됩니다. 바로 이곳에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신 질문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고백은 목을 건 선언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큐리오스)는 로마의 가이사 뿐인 시대였습니다. ‘그리스도’는 로마의 황제에게만 붙일 수 있는 호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호칭을 예수께 드린 것입니다. 주존심이 무엇입니까?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도시에서 행한 베드로의 고백이 주존심입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고백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 주존심입니다. 이 주존심 위에 예수께서 세우신 것이 교회입니다. 마태복음 16:18절을 읽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시몬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세우신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교회였습니다. (I will build my church.) 주존심은 예수만이 그리스도이시고 주님인 것을 믿는 기초입니다. 우리 세인 교회는 또 여전히 늘 그리고 항상 이 주존심으로 세워져 가는 2020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2) 나는 그 분의 철저한 노예임을 인정하는 것이 주존심입니다. 본문 1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은 본서를 시작하면서 발신자인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어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신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일체의 단체나 개인에게 적어도 자신을 밝히는 어필의 순간에 해야 하는 것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기 피력이 상식일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1절은 대단히 의아한 자기소개를 보고해 줍니다. 바울은 자신의 신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당연히 생각해야 단어는 ‘종’입니다. 주후 1세기 로마에는 약 6,000만 명의 노예들이 존재했습니다. 바울이 표현한 ‘종’이라고 번역된 ‘둘로스’는 문자적인 의미가 ‘노예’입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주인들에게 억압받던 물건이었고, 부속물에 불과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자신을 어필해도 될까 말까 한 자기 소개서에 바울은 자신을 인간인데 인간 같지 않은 물건이라고 소개합니다. 바울이 바보입니까? 바울은 결코 바보가 아닙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자기를 종이라고 표현했을까요? 그는 이렇게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종은 종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주존심을 가진 성도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주존감은 내가 주님의 철저한 노예라는 정체성을 갖는 것에 기초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시고 주님으로 수없이 표현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주님은 당신을 스스로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3-45) 종으로 오신 예수님은 주의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는 저와 여러분에게 단 한 마디도 입을 열지 못하게 하는 비수를 던지셨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비극은 종놈이 주님의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다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잘못 배워도 너무나 잘못 배운 것입니다.
결론) 복음이 무엇입니까? 본문 2-4절에서 이렇게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선포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복음은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고, 성결의 능력으로 부활하신 하나님이 아들이신 예수가 주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주존심이 무엇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목숨 걸고 증언하며 사수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세인 교회 교우 여러분! 2019년 이렇게 출발했습니다. 주존심이 있는 교회를 만들자고. 2020년이 다음 주부터 시작됩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주존심으로 여전히 무장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기를 목숨 걸고 반대하는 시대에서 예수만이 그리스도이시며 주님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끝까지 사수하는 2020년이 또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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